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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파기지국은 1996년 전기통신기본법에 근거해 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과 수도권 13개 통신회사가 설립한 공용무선기지국 건설 및 관리업체다. 건물, 토지, 전원설비, 전용회선, 철탑 등 부대시설을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경쟁사가 없다. 설립 당시 최대주주도 과거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이었다.
한국전파기지국이 2002년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는 신흥정보통신으로 바뀌었다. 국가통신기지국 관리업무가 사기업에 이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흥정보통신은 장병권 대표 및 특수관계자가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사다.
장병권 대표는 사기 및 배임, 주가조작 등과 관련해 사법처벌을 받은 인물이다. 장 대표는 2012년 11월~2013년 8월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홈캐스트 인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간 담보 없이 연대보증을 서도록 지시, 66억 4000만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2014년 구속기소됐다. 또 계열사 명의로 추가대출을 받기 위해 한국전파기지국이 연대보증을 제공한 것처럼 대출약정서와 근보증서, 이사회결의서 등 관련서류를 위조, 제2금융권에서 100억 원의 사기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장 대표는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았으며, 이어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형집행 중 2016년 12월 가석방됐다.
가석방된 지 4개월 만인 2017년 4월에는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다. 장 대표는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통신장비업체 홈캐스트가 바이오산업에 진출한다는 호재성 정보를 흘려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26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2월 장 대표에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현재 장 대표는 보석으로 석방돼 항소심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파기지국의 미등기임원 부회장직에도 올라 있다. 한국전파기지국 관계자는 “장 대표는 미등기 부회장일 뿐 대표이사가 아니다”라며 “이미 사법 처벌을 받았다. 물러날 이유가 있느냐”고 주장했다. 신흥정보통신 관계자는 “장 대표는 현재 몸이 좋지 않아 요양 중“이라며 ”누나인 장 아무개 대표와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있으며, 장병권 대표는 실절적인 경영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경영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임금을 받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부회장이 돌아와 일을 하지 않으면서 보수를 받아가는 것은 배임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문제제기하지 않는 이사회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흥정보통신은 장석하 회장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비상장사이지만, 한국전파기지국은 상장사로 주주들이 장병권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실제 한국전파기지국은 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과 통신회사들이 출자해 설립한 회사였던 만큼 KT(7.39%)와 SK텔레콤(4.4%), LG유플러스(3.51%) 이동통신3사가 한국전파기지국 지분을 각각 보유하면서 등기이사를 파견하는 등 경영에 참여, 공동관리체제를 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6년 8월 KT는 한국전파기지국 보유지분 7.39%(39만 720주) 전량을 매각했다. 동시에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경영참가목적 없음’ 확인서까지 작성했다. 이어 SK텔레콤도 보유지분을 매각했다. 현재 LG유플러스만 한국전파기지국 지분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T가 보유하던 주식은 장병권 대표와 부친 장석하 한국전파기지국 회장, 계열사 옥산전기통신이 나눠 매입했다. 현재 한국전파기지국의 최대주주는 지분 31.03%(1640만 주)를 갖고 있는 장석하 회장이다. 아들 장병권 대표는 지분 18.92%(1000만 주)를 보유해 뒤를 이었다. 상장 당시 최대주주였던 신흥정보통신의 지분을 장 회장 부자가 꾸준히 매입, 지난 2009년 10월 직접 최대주주가 됐다.
비록 지분은 매각했지만 KT는 한국전파기지국에 시설공사 등 외주사업을 계속 맡겨왔다. 지난 1월에도 KT는 ‘2018년 지하철 5G 무선망 공사’에 대해 한국전파기지국과 계약했다. 계약금은 361억 원 규모로, 이는 한국전파기지국의 2017년 개별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대비 43.46%에 해당한다. 무선기지국을 통신3사가 함께 쓰는 터라 다른 통신사들도 한국전파기지국과 계약하고 있다. 한국전파기지국의 지난해 매출액은 659억 원, 영업이익은 21억 원이다.
한국전파기지국은 신흥정보통신에 다시 공사 등 하도급을 맡겼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전파기지국과 신흥정보통신 간 거래액은 해마다 다르지만 150억~500억 원을 이어왔다. 통신3사와 한국전파기지국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고 있는 신흥정보통신은 그 이익을 배당으로 활용한다. 신흥정보통신은 수년째 이익잉여금 30억 원을 확보, 100% 배당을 실시했다. 2017년의 경우 매출액은 359억 원이지만, 영업손실은 8639만 원을 기록해 영업적자를 봤지만 그럼에도 장병권 대표 및 특수관계자는 30억 원의 이익잉여금을 배당으로 받아갔다. 다만 지난해에는 배당을 50%만 했다.
5G시스템, 국가철도망, 자율주행,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및 유지 등으로 전국의 무선기지국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황창규 회장 등 경영진은 왜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결정을 내렸을까. KT 관계자는 “이동통신 3사가 한국전파기지국이 아닌 각사의 자회사를 통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략이 바뀌면서 한국전파기지국 사업 물량이 줄어 영업이익이 급감했다”며 “이에 지분을 보유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돼 전량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추가 용역 발주를 끊는다고 해도 기존에 구축된 공영무선기지국은 계속 사용하면서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공동관리체제를 포기한 것은 사실상 공영무선기지국에 대한 공공적 통제권한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KT와 한국전파기지국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자 정치권에서도 둘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