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A매치 주간. 생애 처음으로 A대표팀에 소집된 이강인과 백승호.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한국 축구의 미래’라 불리는 이강인(발렌시아 CF)과 백승호(지로나 FC)의 A매치 데뷔가 불발됐다.
이강인과 백승호는 3월 22일과 26일 두 차례 평가전(볼리비아, 콜롬비아)을 앞두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다. 생애 첫 A대표팀 소집이었다. 자연스레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은 이강인과 백승호의 A매치 데뷔 여부에 쏠렸다.
하지만 두 선수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강인은 두 경기 모두 교체 명단에 포함됐고, 백승호는 26일 열린 콜롬비아전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두 유망주를 실전에서 기용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 미래’의 A매치 데뷔를 기다리던 축구팬들은 다소 맥이 풀렸다. “평가전이 아니면, 언제 실험을 하느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 ‘플랜 A 시스템 구축이 먼저?’, 축구인들이 예상한 벤투 감독의 의중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 사진=연합뉴스
A매치 평가전에 나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 가능한 교체카드는 총 6장이다. 하지만 대표팀은 두 차례 평가전에서 경기당 3장의 교체카드를 쓰는 데 그쳤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마치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처럼 ‘총력전’을 펼쳤다. 벤투 감독의 용병술 역시 중요 대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평가전 상대였던 볼리비아와 콜롬비아가 교체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과 대비되는 양상이었다.
벤투 감독이 ‘총력전’을 펼치면서, 자연스레 실험의 기회는 줄었다. 축구팬들이 기다리던 젊은 피, 이강인과 백승호의 A매치 데뷔 역시 무산됐다. 벤투 감독이 국민들의 기대를 모를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과감하게 자신의 소신을 관철했다. 그렇다면 벤투 감독의 소신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축구계 복수 관계자들은 “아직 벤투 감독이 ‘플랜 A’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축구 지도자 A 씨는 “벤투 감독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벤투 감독은 ‘아직 한국 대표팀의 플랜 A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듯하다”고 전했다.
A 씨는 “‘2019 AFC 아시안컵’까지만 해도 벤투 감독은 손흥민을 2선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했다. 그리고 이번 두 차례 평가전에서 비로소 손흥민을 전방 공격진에 배치했다. 그리고 손흥민이 ‘벤투호’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벤투 감독 입장에선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전술을 운용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A 씨는 “어찌됐든 ‘손흥민 활용법’이 대표팀 전술의 핵심 키워드인 것은 분명하다. 손흥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벤투 감독의 ‘플랜 A’ 완성은 가시권에 접어들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축구인 B 씨는 “벤투 감독이 자신의 ‘플랜 A’를 완성한 시점 이후엔 충분히 젊은 유망주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중앙 미드필더인 황인범 자리에 이강인, 측면 미드필더 이청용 자리에 이승우,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 자리에 백승호를 기용하는 식이다. 이런 실험은 벤투 감독이 자신의 ‘시스템’을 정착시킨 이후 빈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벤투호의 선수 기용을 바라보는 축구인들의 시선은 대동소이했다. “벤투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완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벤투 감독은 확실히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축구 대표팀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팬들이 원하는 방향과 대치되는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이강인, 백승호, 이승우 등을 기용하는 데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두 눈으로 유망주들의 경기력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쉬워.”
발렌시아 CF 구단 역사상 최연소 1군 데뷔에 성공한 이강인. 사진=연합뉴스
축구인들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의중을 이해하면서도, “아쉽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축구계 복수 관계자는 “유럽 현지에서 주목받는 한국 유망주들이 국가대표팀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축구 지도자 A 씨는 “26일 콜롬비아전 같은 평가전에서 ‘과감한 실험을 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A 씨는 “평가전에서의 실험은 밑질 게 없다. 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유망주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회의 장을 마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라고 말했다.
A 씨는 “선수가 좋은 결과를 냈을 경우 벤투 감독은 ‘과감한 유망주 기용의 성공’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어린 선수들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상윤 전 MBC SPORTS+ 해설위원의 의견 역시 다른 축구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위원은 “이강인이나 이승우, 백승호 같은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인 건 사실이다. 벤투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자신의 색깔을 가져가야하는 것 역시 정답”이라고 전했다.
이 위원은 “벤투 감독이 이강인이나 백승호를 여론에 떠밀려서 선발한 건 아니라고 본다. 선수를 기용하는 건 감독의 몫”이라면서 “하지만 나 역시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소집한 유망주를 한번은 선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굉장히 조심스럽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어 이 위원은 “이강인, 백승호 같은 어린 유망주들을 TV 매체를 통해서만 봤다. 이런 선수들이 한국 대표팀에서 어떤 축구를 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비록 이번 A매치 주간에 두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아직 시간은 많다. 두 선수가 A매치에 데뷔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강인과 백승호의 A매치 데뷔전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두 유망주의 잠재력은 여전하다. 추후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따라 이강인과 백승호는 ‘대표팀 즉시 전력감’으로 발돋움할 자질을 갖춘 선수들이다.
26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을 마친 벤투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소집훈련을 통해 이강인과 백승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두 선수가 소속팀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 잘 체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렌시아 CF(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역사상 최연소로 1군 무대를 밟은 이강인.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거쳐 지로나 FC(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백승호. 두 선수에게 이번 국가대표팀 소집은 큰 동기부여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두 유망주가 소속팀에서 활약을 통해 벤투 감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