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 논문도 무심사로 받아주는 국내외 부실 학술단체
HSST는 한국판 와셋(지난해 화제가 된 터키의 학회로 대표적인 부실학회)으로 불린다. 지난해 9월 한 언론매체를 통해 이 단체의 수장인 A 교수가 HSST를 비롯해 총 7개(현재 6개)의 학술단체를 문어발식으로 운영하며 수익사업을 벌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 이후 A 교수는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HSST는 부실학회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학계에서 HSST가 부실학회로 불리는 까닭은 일정 금액만 내면 쉽게 논문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학회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연회비 20만 원 상당의 SS급 회원은 무심사 논문 게재가 가능하다. 그 외 일반 회원도 6만 원에서 16만 원만 내면 HSST가 주최하는 국제 학술대회 참석이 가능했다.
이렇게 발표된 논문은 HSST 학술지인 ‘예술인문사회 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에 실린다. 8~10장 내외의 논문은 25만 원에서 50만 원. 그 이상은 장당 2만 원에서 8만 원까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다시 말해 최소 50만 원으로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논문을 등재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과정을 거쳐 KCI에 등재된 고등학생의 논문만 최소 6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기연’이라는 가명으로 가짜 논문을 보내자 참석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이 단체는 가짜 논문이 실릴 학술지 목록도 함께 보냈다 사진=최희주 기자
B 학회와 C 학회 등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학회에 참가하는 고등학교도 있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이 고등학교 학생 4명의 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제는 두 학회가 부실학회로 보인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은 B 학회와 C 학회 두 단체에 논문 게재 의지를 알렸다. 논문생성기로 만든 가짜 논문과 함께 오는 5월 홍콩과 7월 체코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B 학회로부터 참석이 가능하다는 답장이 왔다. 참석을 확정하고 싶으면 온라인 결제를 하라는 말도 함께였다. 이후 C 학회에서도 보낸 논문을 확인했다는 답장이 도착했다.
# 논문 권하는 학교
돈만 내면 논문을 실을 수 있는 시스템을 적극 이용한 것은 다름아닌 학교였다. 고3 재학생이 10명 남짓인 D 학교는 2018년 2월과 3월에만 총 6건의 논문을 HSST에 게재했다. 이 가운데에는 매달, 즉 2회 이상 논문을 투고한 학생도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D 학교의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이다. 대안학교인 D 학교는 정규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 대신 학생들에게 매 학기 두 편의 논문을 작성하게 했다. 일반 대학원생도 작성하기 힘든 논문을 1년에 네 편이나 작성하는 셈이었다. 이렇게 작성된 논문으로 국내외 학술대회를 돌며 스펙을 쌓았다. D 학교에 다니다 유학길에 오른 한 학생은 “배경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반 중고등학생이 쓰기 어려운 논문을 쫓기듯 써야 했다. 시간 안에 논문을 내야 하니 상당 부분 지도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학생들이 작성한 논문은 선형분수함수나 슈뢰딩거 방정식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D 학교는 자체적으로 논문대회를 열기도 했다. D 학교의 또 다른 학생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국제 청소년 연구자 논문대회’도 열었다. 여러 학교 학생이 참가하지만 당연히 본교 학생들의 수상 비율이 높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회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D 학교의 ‘국제 청소년 연구자 논문대회’ 공식 홈페이지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논문의 입시화가 비단 D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딸이 대학원생들이 대필한 논문으로 서울 유명 대학에 입학했음이 밝혀졌고, 지난해에는 한 사립대 교수가 자녀를 논문의 공저자로 올려 이를 대입에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그 끝에는 대학이 있었다. 부실학회니 뭐니 해도 ‘학술지 논문 게재’라는 스펙을 갖춘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HSST, 해외 B 학회, C 학회 등 부실학회에 논문을 투고한 학생 18명 중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생을 제외한 17명 중 12명이 울산과학기술원과 뉴욕 주립대 등 국내외 유명 사립대학에 진학했다. 대부분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했다.
고교 재학 당시 학술대회에 논문을 투고한 한 학생은 “해외 대회에 나가 상을 받으면 아무래도 교내 수상 이력보다 훨씬 그럴 듯해 보인다. ‘해외 학회’라는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학회인지는 다들 모른다”고 말했다. 결국 학회의 질보다는 수상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학계에서는 부실학회 명단을 공식적으로 작성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 연구재단은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 예방 가이드’를 내놓았다.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연구자 스스로 학회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하라’다.
정부 역시 부실학회에 대해 스스로 예방하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무엇이 가짜고 진짜인지 구분 짓기는 어렵다. 연구자가 참석하려는 학회가 어떤 학회인지 사전에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