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 표현은 ‘블레임 룩’(blame look)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부정적인 사건이나 스캔들에 휘말린 이들의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을 뜻한다. 불법을 저지른 혐의를 받은 스타들은 경찰이나 검찰에 출두해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 이때 그들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표정 등은 공항패션을 능가하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최근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버닝썬 사태’와 관련해 이미 가수 승리, 정준영, 최종훈 등이 포토라인에 섰다. 과연 그들은 어떤 블레임 룩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었을까.
# 승리부터 정준영까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나?
승리, 정준영, 최종훈 세 사람 중 도드라진 의상 차이를 보인 이는 정준영이다. 그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자 촬영 중이던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접고 지난 3월 12일 급거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언론에 포착된 그는 하얀색 후드티에 백팩을 메고 있었다. 무엇보다 헤어스타일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깨에 낳을 만큼 장발인 그는 이를 묶지 않은 채 모자를 눌러썼다. 거뭇거뭇한 수염을 드러낸 채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공항을 빠져나가던 그의 모습에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모자를 깊게 써 눈을 가리려 했지만 얼굴 아래로 들어오는 렌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는 정준영, 승리, 최준영. 고성준 기자
며칠 후 경찰에 정식 출두한 정준영은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맸다. 한층 단정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그의 긴 머리칼을 질타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반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출두했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미용실 갈 정신이 있었냐”고 그 역시 질타했을 것이라고 네티즌은 입을 모은다.
정준영과 승리, 최종훈의 가장 큰 복장 차이는 넥타이다. 승리와 최종훈이 넥타이를 매고 포토라인에 선 반면 정준영은 노타이 차림이었다. 이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한 입장차만큼 확연한 차이였다.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에 대한 물증이 이미 드러난 정준영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입장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것은 이런 정준영의 자포자기 심정을 대변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반면 승리와 최종훈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승리는 첫 출두 시 비교적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목 끝까지 끌어올린 넥타이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벗을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 3월 17일 경찰에 출두한 최종훈은 20시간이 넘는 밤샘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는 매고 있던 넥타이를 푼 모습이었다. 긴 조사에 지친 모습인 동시에 최초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할 때와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신창원. 사진 제공 = 광주매일
한 연예계 관계자는 “공항패션은 협찬사들의 요청으로 철저히 계산에 따라 의상과 액세서리를 갖추고 취재진 앞에 서는 반면 블레임 룩은 그리 체계적으로 준비하지는 않는 편”이라며 “다만 경출 출석은 통상 부정적 사건에 연루됐을 때 이뤄지기 때문에 최대한 단정한 패턴에 튀지 않는 색상을 선택해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블레임 룩, 언제 등장했나?
블레임 룩이라는 개념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학력 위조 사건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큐레이터 신정아 씨에 관한 보도 때 이 표현이 처음 쓰였다. 당시 그는 D 사의 재킷과 B 사의 청바지를 착용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당사자 임에도 당시 신 씨가 입었던 의상이 백화점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1999년 탈옥수 신창원 사건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그가 입은 무지개무늬가 새겨진 티셔츠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0년에는 로비스트 린다김이 법정에 출두할 당시 착용한 선글라스가 ‘린다김 선글라스’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블레임 룩’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부정적인 사건에 얽힌 이들의 복장이 오히려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 블레임 룩이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최순실이 검찰에 출석해 입장하는 과정에서 그가 신고 온 명품 신발이 벗겨져 나뒹구는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딸인 정유라가 입은 패딩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일반 심리학에서 이는 ‘양가감정’으로 일컬어진다. 두 가지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죄를 지은 대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면서도 정작 그가 가진 특혜로 인해 소유하게 된 고급 물품들에 대해서는 부러움과 궁금증을 갖는다는 의미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