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리딩뱅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한금융과 KB금융, 올해 초 지주사로 전환된 우리은행, 기업은행이 일제히 주주총회를 열었다. 금융권 슈퍼 주총데이로 불린 이날, 신한금융은 진옥동 신한은행장을 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하고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이윤재 전 대통령 재정경제비서관, 허용학 퍼스트브릿지스트레티지 최고경영자,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감사위원으로는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윤재·성재호 사외이사가 선임됐다.
올해 금융사 주주총회에서는 사외이사들의 회전문 인사와 선임이 논란이 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 NH농협중앙회. 박은숙 기자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신한지주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지난해 신한금융지주는 자산, 시가총액, 주가 등 모든 부문에서 리딩뱅크를 탈환해 경영 전반에서 대한민국 퍼스트이자 넘버원 금융그룹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며 “1등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일류 신한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같은 날 KB금융도 주총을 열고 사외이사로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스튜어트 솔로몬(Stuart B. Solomon) 전 메트라이프생명 회장,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재선임했다. 새로 추천받은 김경호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최종 선임됐다. 감사위원회 위원으로는 선우석호 전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 정구환 변호사, 박재하 선임연구위원이 재선임됐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주총에서 올해 전략적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과감한 인수합병을 실행해 그룹 포트폴리오를 견고하게 다지겠다”며 “생명보험 분야를 더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지주사로 전환된 후 처음 열린 주총에서 오정식 상임감사위원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 제185기 재무제표 승인,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건 등이 원안대로 가결했다.
기업은행은 신충식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김세직 서울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노동조합이 추천한 노동이사 선임 건은 불발됐다. 지난달 말 노조는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하지만 기업은행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르면 이사회 운영위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사측에 추천하면 은행장이 이를 금융위원회에 제청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할 제도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도 금융권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KB금융 노조는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려다 자진 철회했다. 백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지향에서 KB금융의 계열사인 KB손해보험에 법률자문·소송을 수행한 사실이 있어 이해 상충 문제가 불거져서다. 산업은행 노조도 사외이사 추천을 추진하고 있지만 같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무산되면서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지주사 사외이사가 은행으로, 은행 사외이사가 지주사로 자리만 옮기는 사례가 많았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금융그룹 전경. 고성준 기자
하나금융지주에서도 이정원 전 KEB하나은행 사외이사가 새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해에는 4년 동안 사외이사를 지냈던 김인배 사외이사가 하나은행으로 이동하고 하나은행의 사외이사였던 허윤 사외이사가 하나금융지주로 이동하기도 했다. 올해 재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차은영 사외이사는 2005년부터 5년 동안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맡다가 2017년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고영일 하나은행 사외이사도 하나카드 사외이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하나은행으로 옮겼다.
신한금융지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선임된 김화남 사외이사는 1999년부터 3년 동안 신한금융투자 사외이사를,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신한생명 사외이사를 지냈다. 최경록 사외이사도 2010년부터 5년 동안 신한생명 사외이사였다가 지난해부터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올해 주요 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는 새로운 사외이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금융지주를 제외하면 사외이사 교체 폭도 크지 않다.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사외이사 44명 가운데 27명의 임기가 끝나지만 대부분 재선임됐다. 신한금융지주에서 그나마 4명의 새 사외이사가 합류했고,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에서는 1명이 새로 선임되는 데 그쳤다. 자칫 독립성이 훼손되면서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인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인사권을 쥐고 있어 요건 등을 더욱 까다롭게 살필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권 특성상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인재풀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