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왜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싶을까.
비에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빗은 그소녀
반짝이던 눈망울이 내마음에 되살아나네. (생략)“
1200만 관객을 동원한 2017년 국내 최다 관객 동원 영화 <택시운전사> 시작 부분 주인공 김만섭(송강호 분)이 택시를 몰고 한강 다리를 건너갈 때 나왔던 그 노래. 가왕 조용필 원곡의 <단발머리>의 가사다.
<단발머리>가 수록된 조용필 1집 앨범 자켓.
지금도 필자에게 <단발머리>는 두 가지 이유로 각인돼 있다. 하나는 굴곡 짙던 현대사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이다. <단발머리>가 히트하던 1980년 봄 필자는 철부지 꼬꼬마였다. 이 노래를 부른 가왕 조용필의 가성을 흉내 내겠다며 되지도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 시절 <택시운전사>에서 묘사된 것처럼 TV와 신문에서 폭도들의 폭동이라고 매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 조용필이 4년의 공백을 깨고 1979년에 출시한 <조용필 1집>은 트로트 일색이었던 가요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혁명이었다. 이 앨법에 실린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고 절규하는 발라드 <창밖의 여자>나 경쾌한 신디사이저 연주가 흥겨운 뉴웨이브 <‘단발머리>는 군사정권의 폭압으로 암울했던 그 시절 국민들에게 하나의 청량제였다.
<단발머리>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가요사에서 ‘팔세토’(가성) 창법을 섞어 노래해 메가 히트를 기록한 첫 곡이라는 점이다.
팔세토는 성대가 접촉하지 않고 떨어진 상태의 성대 주변에서 울리는 소리를 말한다. 중요한 것은 호흡의 도움 없다면 그저 바람 빠지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흡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후두를 내려 연구개를 울리고 소리를 낸다면 가성이라도 공명이 가득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팔세토 창법은 이 원리로 노래를 부르는 방법이다.
성악에서는 훈련된 가성으로 여성 소프라노나 알토 음역을 원음으로 부르는 파트를 ‘카운터테너’라고 한다. 카운터테너는 과거 변성기 이전의 보이 소프라노를 거세해 여성의 음역을 유지하게 했던 ‘카스트라토’와는 달리 가성을 통해 여성의 고음을 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카스트라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여성 음역을 소화해 내 ’카운터테너‘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마법의 성> 리메이크로 유명한 정세훈이 그렇다.
조용필이 국내 가요사에 팔세토 창법을 도입한 시초였다면 팝음악은 훨씬 전이다. 팔세토 창법의 대가 반열에 오른 가수는 1970년대를 관통했던 디스코의 상징인 3형제 밴드 <비지스>의 맏형이자 리드보컬인 배리 깁을 꼽을 수 있다.
원래 발라드 밴드였던 비지스는 가볍고 경쾌한 댄스 리듬인 디스코의 열풍이 휩쓸면서 디스코로 장르를 바꾸었고 이게 주효해 197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 잡았다. 리드 보컬인 배리 깁의 팔세토 창법은 디스코 리듬 탓에 다소 경박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비할 데 없이 투명하고 깨끗하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비지스의 팔세토 창법의 진가를 확인하려면 빌보드 차트 1위곡들인 <Night Fever>, <Stayin’ Alive>, <Too Much Heaven>, <Tragedy>. <Love You Inside Out> 을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국내로 돌아와 조용필이 실험한 팔세토 창법은 국내에서 조관우로 이어져 만개했다. 조관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팔세토 창법의 대가다.
인간문화재이자 명창인 조통달의 아들인 조관우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으로 대변되는 국악의 정서를 자신의 노래에 녹여내고 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저며 오는 아련함에 사로잡힌다. <늪>, <영원>, 정훈희 원곡의 <꽃밭에서> 리메이크를 들어보자.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