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됐지만,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는 불확실하다. 부동산 투기와 탈세, 취업비리 등의 의혹으로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울 뿐더러, 다주택을 소유한 후보자는 국민들의 정서와 많이 어긋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으로부터 다주택 보유에 대한 질의를 듣고 있다. 2019.3.25. 박은숙 기자.
# 눈물 나는 자식 사랑
후보자들의 자격 검증에 있어서 자주 언급된 것은 증여세였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4800만 원의 연구비를 사용해 7차례에 걸쳐 미국에 출장을 갔다. 하필 장소는 두 자녀가 재학 중인 샌디에이고와 로체스터, 보스턴이었고 시기도 마침 유학 중이던 2013~2018년에 집중됐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은 미국의 대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이중국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박 후보자는 “현재 아들은 복수국적자다. 병역의무 이행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제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태어났을 땐 한국 호적법과 국적법에 여성차별이 있었다. 모계승계가 불가능해 저희 아이는 한국 국적을 승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자는 이어 “당시 제 남편이 미국 시민권자다보니 아버지 국적인 미국 시민권을 받은 것”이라며 “18세가 되면 홍준표 전 의원님이 발의한 법에 따라 병역 의무가 생기고, 한국에서 군대 갈 생각이 없으면 국적 이탈신고를 하지만, 제 아이는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후보자로 지정될 당시, 2주택 1분양권으로 3채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청문회 직전 집을 딸과 사위에게 나눠서 증여했다. 아파트 공시가격이 올라가며 다주택자들은 매도보다는 증여를 통해 절세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때문에 최 후보자가 보유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증여하는 방식으로 편법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의 딸들이 수억 원대의 예금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증여세 6500만 원을 뒤늦게 납부해 논란에 휘말렸다. ‘자녀에 대한 누적 증여액이 5000만 원을 넘으면 증여’라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박양우 후보자는 “가족경제공동체처럼 살아와서 그런 사실을 몰랐다. 청문회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 개념이 전혀 없었다. 죄송하다”고 했다.
# 청와대는 ‘1인 1주택’ 외치는데 후보자는 다주택자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다주택자였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실거주 목적 주택을 제외하고 집을 처분하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최 후보자는 이런 청와대 기조와 엇갈린 모습이었다. 최 후보자는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과 서울 잠실동 아파트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분당에 있는 아파트도 후보자 지명 직전 장녀 부부에게 증여해 ‘꼼수 증여’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최 후보자는 현 정부의 과제를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며, 정치권 안팎에선 청와대가 ‘다음 후보자 물색에 나섰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시세차익’ 논란에 휘말렸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은 “분양받은 강남 고급 아파트 입주 1년 만에 17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봤고, 용산공원 인근에 분양권을 받고 거기서 시세차익 약 16억 원 정도 된다는 보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2014년 대지를 매입해 소유권을 이전하게 되는데, 2년 후에 건폐율과 용적율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용산 4구역 정비계획변경안이 통과되며 가치가 올라간 부분이 있다”며 “후보자가 지역구 의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 후보자의 지역구는 서울 용산구다. 진 후보자는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며 “시세차익을 많이 봤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 정서상 참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 ‘자격 검증’과 ‘망신주기’ 사이
박영선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위한 자료제출을 두고 여야는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야당은 개인 신상 보호 등을 이유로 2252건의 요구 자료 중 145건을 거절한 박 후보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윤한홍 한국당 의원은 “박 후보자가 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자료를 요청했지만, 박 후보자 측은 “유방암 수술 관련 자료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다. 제가 윤 의원에게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느냐’라고 하면 어떻겠나”라고 반문했다.
민주당도 방어에 나섰다. 이훈 민주당 의원은 “유방암 수술 기록, 병원이 왜 궁금한가”라고 따져 물었고, 위성곤 의원도 “혼인관계 증명서, 실제 결혼날짜 및 혼인신고일자, 초혼 및 재혼 포함, 후보자 유방암 수술 받은 일시 및 병원이름. 이게 후보자 인사검증이랑 무슨 상관있느냐”라고 반박했다.
단순 실수로 인한 해프닝도 있었다. 자료 제출 미비를 항의하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을 향해 박 후보자는 “이 의원이 지적한 정책 자료는 이 의원에게 보내는 이메일 주소에 오타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설명했고, 이 의원은 “그냥 사과만 하라. 사실이 다른 이야기다”라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9.3.27. 박은숙 기자.
# 김학의 청문회가 된 박영선 청문회
“우리(야당 청문위원)가 후보자에게 청문회를 당하는 거냐? 태도가 잘못됐다.” (이언주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은 박영선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학의 사건 당시, 박 후보자는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법사위원장실로 따로 불러 제보 받은 (김학의) CD를 꺼내 보이며 ‘매우 심각하다’며 차관 임명을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역공한 것이다.
이를 본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27일 라디오를 통해 “박영선 청문회가 황교안 청문회로 바뀌겠더라”며 “(박 후보자가) 김학의 사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서 완전히 되치기 한판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 후보자의 제시로 황 대표의 연관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보통 청문회가 시작되면 후보자들은 치부를 드러내고 청와대는 궁지에 내몰리는데, 박 후보자의 강경한 태도로 공수가 바뀐 모습이다.
황 대표는 3월 2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학의 사건을 언급하며 “보고받는 위치에 있던 저에게 책임지라고 하는데, 정작 사건을 담당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선 왜 한마디도 안 하고 있냐”라고 항변했다.
이 외에도 박 후보자 측은 2013년 3월 13일(김학의 전 차관 임명 이틀 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만나 식사를 했다는 당시 일정표를 공개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그 날에 박 후보자와 오찬을 한 기억이 없다”고 상반되게 주장했다. 박 후보자의 청문회는 두 사람의 진실공방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25일부터 3일간 인사청문회가 진행됐지만, 29일 현재까지 채택된 청문보고서는 없다.
민주당도 후보자 7인 모두 통과시키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보시기에 부족한 후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이 3월 27일 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을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 몇몇 의원들은 “몇 명의 경우, 도덕적 결함이 크다”라고 후보자들을 향해 비판했다. 한편, 한국당도 7명 전원을 낙마시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김학용 한국당 의원은 3월 29일 라디오 방송에서 “7명을 다 날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최정호‧조동호 후보자에 대해선 정의당과 민주평화당까지 반대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들의 청문회 통과 여부에 대해선 민주당 내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영선 후보자에 대해선 ‘어차피 낙마할 바에 차라리 한국당 공격’ 전략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