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으로 전락한 박철상 씨 첫 재판이 대구 서부지방법원에서 28일 열렸다. 박 씨 최대 피해자를 ‘일요신문’이 만나 사기 과정 등 얘기를 들었다.
―박철상 씨를 어떻게 만났나.
“한 선배가 ‘경북대 출신의 나이도 어린 400억 원 자산가가 대구에 있다’고 소개를 해줬다. 궁금해서 페이스북에 찾아보니 박 씨가 본인의 소개나 인터뷰 기사를 올려두는 등 활발하게 페이스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정우 교수가 자신의 멘토라는 점도 자주 올렸다. 나도 기부를 꽤 많이 하고 있어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보험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끔 자산가들을 불러 강연도 열고 있다. 그래서 ‘기회 되면 얼굴 봅시다’고 간단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박 씨가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났다’, ‘얼마를 기부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나 사진 등을 메시지로 보내줬다. 몇 달 뒤 ‘선배님 집 근처 왔는데 얼굴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고 메시지가 와서 카페에서 만나게 됐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처음 집 근처 카페에서 2시간 반 정도 만났다. 기사에 났던 내용을 많이 얘기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주식 계좌를 만들어줬고 투자를 시작하게 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서울대를 못 가고 대구에서 가장 좋은 경북대를 수석으로 들어갔다’, ‘주식에 투자하고 군대 갔다 왔더니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그래서 장기 투자에 눈 떴다’ 등을 말했다. 얼굴이 선해보이고 말도 겸손하게 했다. 특히 ‘선배님 기부도 하신다고 하셨는데 저처럼 재단을 만드세요. 재단을 만들어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를 하세요. 저는 인적사항과 소개서를 읽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지급합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린 사람이 대단하다’는 존경심과 함께 ‘자산을 늘리기보다는 기부를 저렇게 많이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투자는 어떻게 하게 됐나.
“그때 만난 이후에 박 씨는 꼭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구에서 가장 좋은 주상복합인 ‘트럼프월드’를 일종의 후광효과로 삼은 것 같다. 패턴은 비슷하다. 집으로 불러 ‘청와대 가서 밥 먹은 얘기’, ‘총리실에서 밥 먹자고 연락이 온 이야기’, ‘각종 미디어에 출연하거나 출연 요청 받은 이야기’ 등을 했다. 박철상 씨는 묻지도 않았는데 ‘외롭지만 큰 집에 혼자 사는 이유가 있다. 내가 곧 철학을 더 배우러 해외 유학을 간다. 그럼 이 집이 빌 텐데 그때 부모님께 여기 와서 살라고 해야겠다. 안 그러면 부모님이 ‘네가 번 돈에 손 벌리지 않겠다’는 주의라서 절대 들어와 살지 않을 것 같다’며 ‘부모님 혼자 외로우실 테니까 이모나 친척도 근처에 집을 얻어줄 계획이다’고 했다. 그러다 몇 번 더 만나고 주식시장이 출렁일 때 ‘요즘 주식 힘들다’고 하니까 고민을 많이 하는 것처럼 표정을 지었다. 박 씨는 ‘선배님 제가 이런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주식은 개인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찾아와서 돈을 맡겨 굴려달라는 부자도 많지만 다 거절한다. 그런 사람 돈을 불려주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선배님처럼 좋은 사람이라면 제가 오래는 못 굴려드려도 유학갈 때까지는 맡아두겠다’고 말했다. 대가가 얼마나 되냐고 묻자 ‘대가도 필요 없다. 내가 가진 자산이 태평양이라면 선배님 자산은 거기에 물 한 잔 붓는 수준이다. 더 신경 쓸 필요도 없다’며 대가도 사양했다. 오히려 수익률이 얼마라고 말했으면 사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박 씨는 ‘돈은 앞으로 제가 책임지겠다. 선배님은 투자나 수익은 신경쓰지 마시고 재단 만드셔서 사람들 어떻게 도울지만 집중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넘어간 것 같다.”
―패턴이 비슷하다는 말이 뭔가.
“다른 피해자들과 통화해보면 박철상 씨 사기 수법 패턴이 비슷하다. 먼저 인삿말로 ‘얼굴 한번 봅시다’고 하면 꼭 찾아와서 만난다. 다음번 만날 때는 박 씨가 바쁘다고 집으로 와달라고 한다. 지난번에 직접 찾아와줬으니까 고마워서 박 씨 집인 트럼프월드에 방문하게 된다. 박 씨는 처음에는 상대방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렇게 약점을 파악한다. 내 경우에는 기부를 많이 한다고 했기 때문에 기부를 테마로 잡았던 걸로 보인다. 이후 자기 자랑을 한다. 기부금을 내는 경우야 많지만 장학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는 아예 스케일이 다르고 그렇게 의심을 없앤다. 이후 주식 얘기가 나오면 돈을 맡아주겠다고 하는 방식이다.”
―주식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었나.
“주식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말을 아낀다. 그때는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지식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장기투자 해야 한다’는 등 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한다. 정작 박 씨는 ‘절대 주식 관련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듣지 않는다. 재테크나 자기계발 책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주식을 배웠냐’고 하면 ‘혼자 독학했다’면서 갑자기 서양철학사를 이야기한다. 서양 철학에서 주식을 배웠기 때문에 독일이나 미국으로 철학을 더 배우러 유학을 간다고 한다. 이 부분도 다른 피해자들도 대부분 들었던 패턴이다.”
―13억 원이면 엄청난 고액이다.
“전부 내 돈은 아니다. 그렇게 홀린 듯 맡기겠다고 하니까 곧바로 ‘위수탁계약서’를 가져왔다. 그걸 보면 처음 맡아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대구 B 학교 교장이나 교수 등 저명 인사 돈을 맡고 있다고 했다. 2017년 1월 그렇게 내 재산 4억 원을 박 씨 계좌로 넣었다. 보험영업을 하면서 나에게 돈을 맡겼던 고객 돈도 5억 원, 4억 원 두 차례 더 넣게 됐다. 그렇게 13억 원이 됐다.”
―돈을 맡기고 난 다음에는 어땠나.
“돈을 맡기기 전까지는 연락도 자주 오고 만나기도 쉬웠다. 그런데 처음 4억 원을 맡기고 나니까 ‘홍콩 펀드에서 일하고 있어 한국에 없다’, ‘장학재단 운영 때문에 바쁘다’는 등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한 달 뒤 추가로 5억 원을 맡긴다고 하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다시 뜸해지다 두 달 뒤 4억 원을 맡긴다고 할 때 만났다. 돈을 추가로 맡긴다는 의사를 보이면 연락을 자주하고 만나기도 하지만 이후에는 본인이 기부한 기사나 강연 링크를 보내기만 했다. 그때 그 기부가 내 돈으로 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기라는 생각은 언제 했나.
“주식을 얘기할 때였다. 바이오나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등이 뜨거나 가라앉는다는 주식 흐름 얘기를 하면 그런 개별 테마는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요즘 트럼프 당선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다’ 등 큰 이야기만 한다. 그럴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다 2017년 8월 신준경 씨가 저격을 한 이후 ‘선배님 소식 들으셨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소식인지 몰라서 검색해보니 난리가 났더라. 13억 원이 다 내 돈도 아니고 서늘했다. 보험영업은 평판으로 먹고 사는데 겁도 났다. 돈을 돌려달라고 하니까 1주일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1주일 뒤 돈을 받았나.
“전혀 받지 못했다.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때도 내 돈으로 경북대 교수들 돈만 갚고 있었고 난리 피우는 사람들 돈은 조금씩 돌려줬다. 가만히 있던 나만 바보가 됐다. 2주가 지나자 정말 피가 마르기 시작했다. 보험영업으로 꽤 고액 연봉을 받긴 하지만 9억 원을 도대체 어떻게 갚나. 처음에는 5억 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가 2억 원으로 말이 바뀌기도 했다. ‘집이라도 팔라’고 했더니 ‘트럼프월드는 월세’라고 대답해 주저 앉을 뻔했다. 유학 가면 부모님을 들일 거라는 말이 다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나중에는 ‘내가 기부한 게 얼만데 곧 투자해준다는 교수들 만나서 돈 받으면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미루다 2017년 8월 주말 전날 밤에 전화로 ‘정말 돈을 안 돌려주면 진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철상 씨는 ‘받기로 한 돈이 안 들어와서 한 푼도 줄 수 없게 됐다’고 대답했다. ‘그럼 진짜 나 죽는다’고 호소했다. 9억 원 빚을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밤 늦게 전화가 자꾸 오면 의심할까봐 전화기를 꺼뒀다. 거의 날을 샜다. 휴대전화 생각도 안 나고 있다가 아버님 병문안을 가자고 해서 갔다. 그런데 병실에 같이 있던 아내 전화로 경찰이 ‘A 씨가 자살을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전화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 장난전화였나.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누가 신고한 거냐 묻자 ‘박철상 씨가 신고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바로 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받았는데 아무 말도 안하더라. 나도 어이없어서 아무 말도 안했다. 그렇게 통화 상태로 말을 안하고 있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신고를 했냐’고 따져 물었다. 박 씨는 당황하며 말을 떨면서 ‘A 선배님 맞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알고 보니 거의 1시간쯤 후 신고 전화를 했고 경찰이 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락처를 찾아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죽을 것 같다’는 말에 신고를 했다는데 왜 1시간쯤 지나고 나서야 신고를 했을까. 그것도 ‘자살할 것 같다’는 것도 아니고 ‘자살했다’고. 두 번째는 박 씨는 어쩌면 내가 죽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당시는 내가 그에게 맡긴 건 아무도 모를 때였고, 나만 죽으면 13억 원은 영원히 묻히는 거였다.”
―그런데 추가로 9000만 원을 더 빌려줬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된 건가.
“박 씨가 ‘선배님 지금까지는 장학재단 운영하느라 한눈을 팔아서 그렇지 이제부터는 정말 주식 투자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수익이 난 화면도 캡처해서 보내줬다. 돈을 더 빌려주면 수익을 내고 수익낸 걸 토대로 다른 교수 등 저명인사에게 투자를 받아 갚겠다고 했다. 그렇게 남에게 빌려서까지 1000만 원, 3000만 원, 50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빌려준 돈으로 주식에서 수익난 화면을 보여줬다. 알고보니 9000만 원으로 주식 사고 화면을 캡처한 뒤 도로 팔았고 그 돈으로 주변에서 난동 피운 사람들 돈 갚아주는 데 썼다. 부족한 돈은 미수를 써서 주식을 매입하고 캡처해서 보내줬던 거다. 그러면서도 ‘수익이 잘 나고 있다. 1년이면 다 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실상은 본인이 쓰기도 하고, 남 돈도 갚아주고 주식 투자는 실패하고 돈이 점점 없어져 갔다.”
―언제 고소를 했나.
“어쨌건 내 얼굴 보고 투자한 고객 돈이기 때문에 1년 4개월 동안 9억 원의 이자나 원금 등을 갚아줬다. 그러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카드론을 받아서 갚아주는데 이렇게 더는 지속할 수 없다고 느꼈다. 지난해 12월 결국 가족에게 말하고 고소를 했다. 9억 원을 맡긴 고객들은 유사수신으로 나를 고소했다. 고객들에게 ‘나도 박철상에게 속았다. 하지만 기다려주면 최대한 갚겠다’고 하자 많은 고객이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며 고소를 취하해주는 분도 많았다. 현재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인상에 남는 게 있다면.
“박 씨에게 속은 사람들 중 아무도 고소하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다. 최근 4명이 더 고소했다고 한다. 다들 나처럼 바보같이 속고 있거나, 교장, 교수 등 교육계 종사하고 있어 명예 때문에 고소를 꺼린 것 같다. 박 씨는 검사에게도 ‘다 기부했고 단 돈 10원도 나를 위해 쓴 게 없다’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검사가 가족에게 보낸 돈, 본인이 쓴 돈 등을 짚어주면서 ‘이건 본인을 위해 쓴 게 아닌가요’라고 묻자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박 씨는 기부라도 했다고 아직도 두둔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박 씨는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선의’, ‘기부’, ‘장학재단’으로 포장된 그 가면을 벗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박철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400억을 벌진 않았지만 18억 원 이상을 기부한 ‘청년 기부왕’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는 ‘기부왕’이란 기사가 넘쳐난다. 지금은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이것만 지나가면 다시 옛날처럼 기부왕으로 ‘우리의 멋진 슈퍼스타’로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또 박 씨를 욕하면 ‘그러면 너는 1000만 원이라도 기부한 적 있냐’는 말이 돌아온다. ‘나는 없다’고 하면 ‘그럼 욕하지 마라’고 한다. 다 드러나야 선한 이미지, 기부천사 이미지가 깨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