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저녁 개최된 ‘3.31 도강 횃불제’에서 만세삼창을 하는 참석자들.
[양평=일요신문] 김현술 기자 = 1919년 4월 3일 강상, 강하, 양서, 고읍(옥천) 등 4개면민 4천명의 만세운동이 시작된 날을 기념하는 재현행사인 ‘3.31 도강 횃불제’가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회장 변도상) 주최, 광복회 양평지회(회장 윤광선)와 양평군 후원으로 성대하게 거행됐다.
31일 저녁 강상, 강하면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양평나루를 걸쳐 양평군청까지 행진한 이날 ‘도강 횃불제’는 1919년 4월 3일 양평 최대규모의 연합시위를 오늘에 재현했다.
이날 행사는 정동균 군수와 정병국 국회의원,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 광복회 양평지회 회원, 강상, 강하, 양서, 옥천면장 및 면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했다,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 변도상 회장은 “1919년 3월 31일 밤 11시 강하면사무소 앞에는 30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치고 강을 건넜다”면서, “그리고 다음 날인 4월 1일에는 양서면에서 새벽 4시에 2000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2일에도 1,000여명의 만세소리는 이어졌고 마침내 4월 3일 강상, 강하, 양서, 고읍(옥천) 등 4개 면민 4천명이 참가한 양평 최대 연합시위가 일어났다.”며, ‘3.31 도강 횃불제’의 의의를 설명했다.
변 회장은 이어 “3월 31일 도강 횃불제는 나흘간의 최대 연합시위가 시작된 날”이라면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양평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잇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강 후 기념촬영.
앞서 양평에서는 1919년 3월 10일 문호리 첫 만세시위를 필두로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 시위, 3월 24일 강상면 교평리 만세시위, 3월 30일 용문면 광탄리 만세시위가 있었으며, 4월 3일 연합시위 이후 4월 7일 3천명의 양동면민 시위와 3,000명의 지평 곡수장터 시위가 이어졌다.
정동균 양평군수는 “전국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연합시위를 했던 우리 양평 선조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우리 후세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유공자 가족 및 주민들과 함께 양근나루터에서 군청 앞까지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에 동참했다.
이날 행사는 저녁 7시 20분 양평나루터 햇불 도강과 양평군청 앞까지 100인 햇불단 행진에 이어 ‘3.31 도강 횃불제’ 의의 설명, 당시 3.31 도강 햇불제 주도인물 소개, 양평독립운동가 94인 호명과 만장기 입장, 독립선언서 낭독, 3.1절 노래 제창 순으로 저녁 9시까지 진행됐다.
한편,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는 ‘양평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해 9월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을 초청, 양평3.1운동 100주년 마중사업 초청강연회를 시작으로 장원석 몽양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박준현 국가보훈처 연구원 초청강연회, ‘3.1혁명으로 하나 된 양평의 근대’ 포럼을 이어갔다.
3월 1일 오전 9시 30분 3.1절 기념식(군민회관)과 94인 만장퍼레이드, 만세퍼포먼스, 기념물 설치미술전을 개최한 후 이날 3월 31일 햇불을 들고 강을 건너오는 도강 행사와 함께 양평군청까지 걸어오는 행사를 개최하면서 ‘양평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마무리 했다.
도강 후 횃불을 들고 양평군청으로 향하는 참석자들.
햇불 도강 재현 장면.
정동균 양평군수가 햇불 도강을 재현하고 있다.
햇불을 들고 행진하는 참석자들.
양평군청 앞에 집결한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3.31 도강 횃불제’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는 양평3.1운동기념사업회 변도상 회장
광복회 양평지회 윤광선 회장이 3.31 도강 햇불제 주도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정동균 양평군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김학제 강상면장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한상현 양서면장.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최인성 옥천면장.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정병국 국회의원
3.1절 노래를 제창하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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