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작년에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를 도입했을 때부터 대한항공이 그 첫 타깃이 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조 회장 딸들과 부인의 갑질 논란은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번에 국민연금의 조양호 퇴출에 합세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이번 조치에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국민연금의 관치적 지배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기금운용위원회와, 주주권행사여부를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있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고, 위원장은 공단의 이사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다. 선진국에서 연금운용은 전적으로 민간 영역이다.
이런 구조에서 의사결정에 청와대나 장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대한항공을 손봐야 한다는 얘기를 누차 직간접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투자를 하든 경영참여를 하든 수익성과 안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전문성이다.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정치성이 끼어든다면 십중팔구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은 현 정부 들어 수익률 저하로 고전하고 있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이 비효율적인 투자와 기금관리 소홀로 인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는 매우 예외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그러나 칼자루를 쥐면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국민연금이 그런 유혹에 빠지는 날 그것은 또 하나의 적폐가 된다.
국민연금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편을 드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외국의 투기펀드들은 단기수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관심은 주가상승과 고율배당 등에 집중돼 있다. 이들은 대한항공의 경영실적이 지금보다 나빠지면 경영자를 퇴출시킨 국민연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세력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반성이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세상임을 명심할 일이다. 특히 유의할 것은 폐쇄적인 경영이 기업에 독이 된다는 점이다.
조 회장이 주주 64.1%의 지지를 받고도 경영권을 빼앗긴 것은 20년 전 이사 선임 방식을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바꾼 특별정관 때문이었다.
대다수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과반수 의결보다 이사선임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도입한 이 정관으로 인해 ‘3분의 2 찬성’을 못 얻어 경영권을 빼앗긴 대한항공 사건은 폐쇄적인 경영이 제 발등을 찍은 사례로 기업사에 기록될 것이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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