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것은 배우 개인에 대한 부분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였다. 대만은 물론 홍콩과 중국의 연예계엔 예전부터 성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는 현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여기엔 범죄 조직이 관련되기도 했다. 그리고 업계의 거물들은 주로 여배우들을 타깃으로 삼아 육체를 요구했으며, 어떨 땐 돈이 개입되기도 했다. 2013년에 터진 사건은 전형적이었다. 중국 드라마 ‘신 홍루몽’에 출연하는 여배우 대부분이 성 상납을 요구받았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것. 장관급인 중국의 철도부장은 어느 사업가에게 돈을 받고 특혜를 주었는데, 그 사업가가 자신이 투자하는 드라마의 여배우들을 철도부장과 연결시킨 것이다. 정치계와 연예계의 은밀한 만남에 대한 루머는 많았지만, 철도부장 사건만큼 확실한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 중화권의 성 상납 및 몸값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고, 린즈링의 이름은 또 다시 대표 주자처럼 언급되었다.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충칭 당서기와 관계를 맺었다는 일부 보도에 장즈이가 소송을 걸었고, 홍콩의 신인 배우 류리 역시 성매매 관련 폭로가 있었다. 이때마다 린즈링의 이름이 언급되었지만, 정작 본인과 소속사는 무대응 원칙으로 밀고 나갔다. 하지만 2015년에 터진 일은 공식 성명서를 내지 않을 수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2015년 10월 27일, 대만 당국은 매춘 관련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다. 단속 대상 중 한 명이 바로 다이준이. 지난주에 언급했던, 200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린즈링과 VIP의 만남을 주선하려다 실패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이때 다이준이의 집에서 경찰은 노트 한 권을 압수하는데, 거기엔 38명의 연예인과 18명의 고객 이름이 있었다. 연예인 38명은 지명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이 가운데 A 클래스는 4명으로 한 건에 25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경찰은 배우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대중은 당장 린즈링을 떠올렸다. 예전부터 다이준이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에 린즈링은 결국 성명서를 발표해, 인신공격을 일삼는 잘못된 보도와 여론에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언론의 잘못된 기사에 대해선 즉각 고소할 것이며, 린즈링은 이 모든 잡음과 무관하게 예정했던 일정을 수행할 거라고 했다. 대중도 조금은 달라졌다. 린즈링이 리스트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돈 잘 버는 스타인 그녀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상식파도 있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했다.
다이준이의 노트는 위험하면서도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다이준이는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호주, 미국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해왔다. 그런데 이때 ‘넥스트 매거진’이라는 타블로이드에서 어떤 경로인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입수했고, 그렇게 이니셜 게임은 시작된다. 모델 출신의 L, 아이돌 드라마에 출연한 S, 영화배우로 시작해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는 C, 모델로 시작해 드라마로 진출한 Y 등이 밝혀졌다.
역시 이니셜이지만 고객들의 정체도 드러났다. 대만의 IT 업계 거물 K, 중국 스타와 결혼한 자수성가한 부자 H, 홍콩의 거물이며 다소 뚱뚱한 체형의 L 등등. 고객들은 상당수 중화권의 부호들과 재벌 2세들이었으며, 간혹 영화 제작자도 있었다. 문제는 다이준이가 그들의 성적 취향을 낱낱이 기록했고, 그 내용은 타블로이드의 좋은 소스가 되었다는 점이다. 마카오 카지노와 홍콩 영화업계의 거물이라 일컬어지는 C의 취미는 다소 고약했다. 그는 여성의 발가락을 깨무는 걸 좋아했다. 한편 연기와 노래를 겸하는 홍콩의 중견 스타 K는 정확히 3일에 한 명씩 다이준이에게 연락해 여성을 찾는 루틴을 보여주었다. 금융계 거물인 T는 유난히 거유 스타일을 좋아했다. 역시 금융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W는 각선미 좋고 다리가 긴 스타일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짠돌이’ 스타일로 하룻밤에 두 번 이상 관계를 가졌다. 엔터테인먼트 막후의 실세 중 한 명인 S는 깨무는 버릇이 있었는데 종종 여성들이 피를 흘리기도 했다.
끔찍한 기록도 있었다. 중국 본토로 원정을 간 한 여성은 고객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 모두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황급히 도망쳤다고 한다. 각성제나 비아그라를 이용해 욕망 충족을 극대화시키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 다이준이의 노트는 성폭력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넥스트 매거진’은 38명의 리스트에 속해 있던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인터뷰이에 의하면, 다이준이는 자신이 린즈링을 거의 키웠다는 식으로 항상 자랑했다고 했다. 이에 린즈링은 “옐로 저널리즘의 무분별한 추측은 개인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며 인격을 모독한다”며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