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공소장을 놓고 법조계가 시끄럽다. 법원 내부에서 검찰의 공소장 형식에 제동을 건 것. “공소장이 심증적으로 유죄라는 예단을 하게 한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공소장 기싸움의 배경이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인 탓에 “법원이 자기 사건에만 예민하게 군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 양승태 재판부가 쏘아올린 ‘공소장’ 문제
“공소사실이 불필요하게 장황한 측면이 있다.”
3월 25일 오전 10시,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1심 재판부가 재판 시작을 알리는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는 작심한 듯 검찰을 향해 물었다. “공소장에 적힌 공소사실이 재판을 진행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띄운 그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소지를 지적하며 공소장 변경 의향이 없는지 물었다.
영장실질심사 당시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공소장 일본주의’란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 제출해야 하고 그밖에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을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법원의 기타 서류 등을 통해 유죄로 예단하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가 인정되면 공소제기가 무효가 돼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는 것이 원칙이다.
박남천 부장판사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검찰에 따져 물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2014년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정지 처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사건을 무리하게 뒤집으려 했다는 공소사실을 콕 짚어 언급한 뒤, “(공소장에) ‘한편 주심 대법관 고영한이~’라고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이 부분과 관련해 고 전 처장은 기소된 것이 없다. 세부적인 공소사실은 기소된 피고인도 있고 안 된 피고인도 있는데 기소되지 않은 피고인의 행위를 이렇게 기재하는 것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법관에게 피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그대로 두는 상태에서 재판을 하는 게 맞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 임종헌도 지원 사격 “공소장으로 유죄 확정”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도 공소장이 문제가 됐다. 이번에 문제 삼은 쪽은 임 전 차장의 변호인. 변호인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소장 일본주의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공소장을 읽다 보면 이미 유죄로 귀결이 된다”며 “검사는 적법한 공소사실을 만들어 다시 기소하면 되는 만큼 재판부가 이 사건을 공소 기각해 절차적 정의를 세워달라”고 강조했다.
검찰 출석 당시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정훈 기자
그러면서 한술 더 떠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도 문제 삼았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로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 심지어 재판하는 판사들도 양승태 사법부가 엄청난 범죄자인 것처럼 인식하게 됐다. 여론에서 이미 괴물 같은 범죄자가 됐다”며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조성과 기소는 수사권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 법원 내부 “과거에도 알았지만, 당해보니 언론 통해 여론 조성”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이 공소장에 일방적인 검찰 판단을 사실관계인 것처럼 적시하고, 이를 언론에 보도되도록 협조해주는 ‘여론 조성’ 때문에 법원이 한방 먹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 고위직 관계자는 “사건 초기부터 보도 흐름을 보니 검찰에서 법원에 불리할 내용들을 하나씩 흘려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어느 순간 지켜보다보니 ‘이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 많은 조직으로 몰아놓더라”고 토로했다.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있었다는 비판인데, 그는 이를 통해 법원 내부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의 역할을 알고 있던 기존 고위직 판사들과,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일선의 판사들 사이에서 괴리가 생기면서 법원 내부가 갈라졌다는 평이다. 30대 중반의 법원 일선 판사 역시 “언론에서 보도가 나오면 우리들끼리도 ‘정말이냐’고 얘기하면서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법원행정처를 잘 모르는 판사들은 언론 보도에 나오는 것을 전부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잘 알고 있는 판사는 검찰의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문제가 안 된다’고 얘기를 하더니 정작 언론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는 다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더라”며 “공소장도 보니 아니라고 다 얘기가 끝난 것도 포함시키는 등 공소장이 얼마나 검찰 입장에서만 입각해 작성해서 법원에 넘기는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지시해서 했지만, 목적이 그게 아닌 것도 ‘~할 목적으로’라며 단정적으로 공소장에 적시하더라”며 “사건 배경까지 검찰의 해석으로 가득 찬 게 공소장이더라”고 덧붙였다.
# 검찰 언플하려 무리한 공소장? “법원 이제와 문제 삼는 것도 문제”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팀은 공소장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앞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지나치게 상세한 공소장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2011년부터 6년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동기나 목적으로 행한 범행이고 지휘체계, 공모관계도 다양하고 (범행이) 은밀히 조직적, 장기적, 반복적으로 이뤄진 성격이 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해 피고인들이 어떤 범행에 가담해 직권을 남용했는지 전후 사정이나 범행동기,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되레 검찰은 “원래 공소장은 그런 것”이라고 항변이다. 재경지역 간부급 검사는 “공소장은 검찰의 수사를 축약해서 정리한 검찰의 결과문”이라며 “당연히 검찰의 입장이 담기는 것이 맞고 ‘죄가 된다’고 믿고 수사한 검사들 입장에서는 그런 ‘유죄 주장’을 객관적인 증거 자료들로 정리하며 설명하는 것인데 법원이 자기 사건이 되니까 예민하게 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언론 대응을 한 적이 있는 중견급 검사 역시 “공소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언론 등에 흘러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검찰은 공소장 작성에 신중을 기한다”며 “언론에 일부 사실을 확인해 주는 방법으로 수사 필요성 등 여론 조성을 하는 것도 우리가 수사를 완성해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황해진 공소장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반응도 일부 나오고 있다. 앞선 사건 관련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이후 공소장의 양이 방대해지고, 수사 결과를 다 포함시켜 ‘우리가 수사를 이만큼 했다’는 것을 다 법원에 보여주는 식의 스타일이 생긴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에 임종헌 전 차장 수사 기록이 국정을 농단했다고 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많다고 하지 않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자연스레 공소장과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보니 스페인에서는 판사가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등,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수사 사실을 법원에 확인해준다거나, 피의자 포토라인 문제, 공소장 일본주의 등 검찰이 기존에 관행적으로 해오던 부분들에 대한 변화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