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과 금융당국은 최근 아시아나항공에 구체적인 자구책을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당장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일은 없겠지만, 시장 신뢰를 회복하려면 사측의 추가 조치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우량 자산 매각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책을 마련해 채권단에 제출할 방침인데 풀어야할 숙제가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삼구 회장이 경영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지만, ‘감사보고서 쇼크’ 후폭풍이 거세다. 사진=임준선 기자
아시아나항공의 ‘감사 쇼크’가 시작된 건 지난 3월 22일이다. 회사는 이날 ‘지난해 흑자를 냈다’는 내용을 공시했다. 그런데 삼일회계법인이 감사의견으로 ‘한정’을 제시했다. 일부 부채와 수익 등에서 감사를 위해 필요한 증거를 회계법인에 제시하지 않아 영업 실적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곧바로 아시아나항공 주식 거래가 금지됐다. 신용평가사들도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BBB-’로, 한 단계만 내려가도 사실상 자금조달이 힘든 투기등급으로 전락하고, 빌린 돈도 조기 상환해야한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에 파장이 일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삼일회계법인의 지적사항을 곧바로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넘겼다. 나흘만인 3월 26일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수익 규모를 손실 처리했고, 삼일회계법인은 다시 ‘적정’ 의견을 냈다. 그리고 다시 이틀 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쇼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는 급한 불을 끄는데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정’ 의견을 받은 이후부터 부채 비율을 조정하기 위해 고의로 재무 정보를 누락하고 제출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의든 실수든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정보 신뢰문제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 신뢰도가 땅으로 떨어진다. 현재 ‘아시아나 쇼크’의 결정적인 이유는 신뢰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떻게 갚아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라며 압박에 나선 것이다. 채권은행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아시아나항공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1년 전 맺은 기존 재무개선 약정이 오는 4월 6일 만료된다. 새 약정을 추진하려면 우선 신뢰부터 회복해야한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 등 금융사에서 빌린 돈보다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이 더 많다.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4000억 원, 반면 회사채·자산유동화증권(ABS)·금융리스부채 등 비금융사에서 빌린 시장성 차입금은 3조 원에 달한다. 여기에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차입금은 1조 3200억 원이다.
이러한 재정사정 탓에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0년 여 간 빚을 내서 빚을 갚거나 연장하는 돌려막기 상황에까지 내몰려 왔다. 흑자를 내더라도 ‘경영위기’라는 꼬리표는 늘 따라 다녔고, 이번 ‘감사보고서 쇼크’로 더 이상 자력갱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비정상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규모”라며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성 차입금은 개인투자자 자금이 많이 포함돼 있다.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 개인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물론 시장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을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가 채권단에 납득할 만한 자구 계획을 제시해야만 곧 만료되는 앞서의 경영개선 약정을 연장해준다는 방침이다. 만일 산은이 연장을 거부하면 아시아나에 대한 시장 신뢰는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에 아시아나의 재무·경영 담당 임직원들은 일요일인 지난 3월 31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을 만족시킬 만한 자구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다음날 아시아나항공 한창수 대표이사는 이날 사내게시판에 올린 담화문을 통해 △추가 자산매각 △비수익노선 정리를 통한 항공기 운영 대수 축소 △조직개편 등 3가지 방안이 담긴 고강도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아시아나항공이 불필요한 군살을 걷어내고, 영업구조 전반을 개선한 뒤 채권단 지원을 받아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특유의 사정’ 탓에 정상화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도 “그러나 아시아나는 그동안 ‘다이어트’를 할 만큼 한 상태다. 더 이상 뺄 수 있는 군살이 없다”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선 최소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한 번에 수혈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지난해 CJ대한통운 지분(940억 원)을 매각하고 광화문 그룹 사옥(4180억원)도 팔았다.
이 때문에 자회사 6곳(금호리조트·에어서울·에어부산·아시아나개발·아시아나에어포트·아시아나IDT)과 골프장, 아시아나타운 등 부동산의 추가 매각설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한계가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앞서의 IB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에어서울 등은 알짜 매물로 분류된다. 이를 매각하면 아시아나항공의 미래 매출 구조가 흔들릴 수 있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더라도 현재로선 높은 금리에 돈을 빌려주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이자 부담은 다시 아시아나항공을 옭아매게 된다”며 “향후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등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회사가 마련할 자구안이 변수가 될텐데,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자산 매각이나 박삼구 회장의 사재 출연 등에 대해 아직까지 정해진 건 없다”며 “재무구조 개선약정 연장뿐만 아니라 경영개선을 위해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