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뺑반’에 ‘윤 총경’이 있다?
이번 사태가 더 폭발력을 갖는 이유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유명 연예인이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빅뱅의 멤버 승리를 비롯해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이 직접적으로 몇몇 경찰 간부와 친분을 맺은 정황이 포착됐고, 정준영은 아예 불법 동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유포하기까지 했다. 그 사이 유독 수면 위로 강하게 솟아오른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윤 총경’. 그들 사이에서는 ‘경찰총장’으로 불렸다는 그 경찰 간부다.
영화 ‘뺑반’ 속 검은 세력과 유착한 윤 총경(염정아 분). 사진=영화 ‘뺑반’ 홍보 스틸컷
당초 이들과의 관계를 부인하던 윤 총경은 함께 식사와 골프 자리를 갖고, 2017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빅뱅의 콘서트 티켓도 선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윤 총경의 아내인 김 아무개 경정도 최종훈이 참여한 말레이시아 공연 티켓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결국 윤 총경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이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됐다.
여기서 ‘윤 총경’이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다. 지난 1월 30일 개봉된 영화 ‘뺑반’에는 윤지현(염정아 분) 내사과장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후배 경찰을 챙기는 정의로운 인물인 듯했으나, 결국 검은 세력과 유착된 인물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를 숨긴 채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은 윤지현 내사과장은 극중 총경으로 승진해 ‘윤 총경’이 된다. 현실 속 윤 총경이 서울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과정으로 재직하다가 이후 총경으로 승진한 것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최근 방송된 드라마 속에서도 버닝썬 게이트의 단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SBS 수목드라마 ‘빅이슈’는 톱스타의 병역 비리와 여배우의 스폰서 스캔들 등을 다뤘다. 또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기차 VIP 객실에서 도박판을 벌이고, 이를 알게 된 아이돌 멤버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보다는 사건을 무마하려 증거가 될 만한 사진을 없애는 방법부터 찾는다. 이는 버닝썬 게이트 발생 직후 무작정 이를 부인하던 현실 속 스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아예 유명 클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극 중 검사 박경선(이하늬 분)은 클럽 라이징문과 경찰서장의 유착 관계를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라이징문의 실제 소유주가 이 클럽이 위치한 지역과 연관이 돼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또한 클럽에 오는 연예인과 재벌 2세들이 마약에 손을 댄다는 것도 현실과 판박이다.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클럽 라이징문. 사진=드라마 ‘열혈사제’ 홈페이지
연예인에 초점이 맞춰지던 버닝썬 사태는 최근 재벌 3세들이 마약 복용 혐의로 잇따라 입건되며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이는 KBS 2TV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와 맞아 떨어진다. 이 드라마는 필로폰 소지 및 투약 혐의로 3년형을 받고 수감된 재벌 2세 이재환(박은석 분)을 통해 재벌가 자제의 일탈과 안하무인 행동을 디테일하게 그렸다.
‘빅이슈’는 자극적인 설정 때문에 지상파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일반적인 정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빅이슈’의 주연을 맡은 배우 주진모는 “우리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내용을 담으며 극한까지 내몰리는 상황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세게 느낄 수 있다”면서 “(사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며) 보는 사람들은 통쾌할 것이다.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 이건 영화인가? 예언서인가?
몇몇 영화나 드라마는 마치 현실 속 사건을 예언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로 치부되던 사건들을 현실 속 뉴스를 통해 접하며 몇몇 영화나 드라마가 새삼 주목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1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영화 ‘베테랑’은 세상을 발 아래로 보는 재벌 2세 조태오(유아인 분)를 통해 ‘갑질 문화’에 경종을 올렸다. 이후 실제로 재벌가 인사들이 주변인들과 부하직원 등에게 갑질을 한 정황이 포착되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조태오가 클럽 안에서 마약을 즐기는 모습 또한 최근 현실 속 재벌 3세들의 모습과 판박이다.
영화 ‘내부자들’은 언론과 정치, 경제 세력의 결탁에 현미경을 들이밀었다. 유력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의 비리가 드러나도 이를 대중에 알리는 과정에서 언론이 여론을 호도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실제 몇몇 유명 언론사의 간부들의 그릇된 행동이 드러나고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공공연하게 쓰이는 계기가 됐다.
이외에도 JTBC 드라마 ‘밀회’는 최순실을 둘러싼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후, 드라마에 등장한 몇몇 인물의 이름과 실제 사건 속 인물이 겹치고 최순실이 자주 다녔다는 특정 클리닉이 이미 드라마 속에서 언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주목받은 바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 작가들은 집필 전 상상력에 기대기보다는 실제 주변 취재를 통해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대본 안에 담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이야기들이 훗날 실제 사건으로 드러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제작 관계자나 대중이 보기에 불편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