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31일 이낙연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제공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비서 성폭행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형 강제 입원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카 마약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반면 이 총리는 다음달 취임 2주년을 맞이하지만 정제된 언행으로 큰 구설에 휘말린 적이 없다. 여권 내에서 이 총리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문제는 이낙연 대망론을 바라보는 친문 진영의 반응이 썩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친문 진영에선 이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가 되면 당내 비문(비문재인)은 물론이고 당을 나갔던 비문 세력과도 연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만큼 당내 친문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총리는 사실 손학규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총리를 임명한 것도 계파 탕평책 차원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 총리 비서실장으로 문 대통령 최측근 배재정 전 의원이 임명되자 친문이 감시역으로 배치한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 총리에 대한 친문 진영의 신뢰는 낮았다.
이 총리는 전남지사 시절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부부를 초청해 만찬을 하는 등 총리 임명 직전까지도 손 대표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총리는 정대철 민주평화당 상임고문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다. 정 고문과는 최근에도 종종 만나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정대철 고문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차기 대선에 이 총리가 나온다면 돕겠다”고 선언했다. 당적이 다른데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미 청와대로부터 연정 제의를 받은 바 있다. 이 총리가 나선다면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연정 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리는 당내 비문 인사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이 총리는 최근 민주당 의원모임 ‘더좋은미래’와 몇 차례 회동했는데 참석한 의원들 면면을 보면 공교롭게도 안희정계, 이재명계, 손학규계 등 대부분 비문인사라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더좋은미래 소속 한 의원은 “우리 모임에서 장관도 나오고 청와대도 많이 갔는데 비문 모임이라는 평가는 억울하다”고 했다. 이 총리가 더좋은미래 소속 의원들과 만난 것이 대권행보 일환이냐는 질문에는 “이 총리와 만났을 때 대권에 대한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는 4선 의원과 도지사를 지냈고 기자생활도 오래 해서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 친문 세력만 등에 업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거다. 이 총리가 대선승리를 위해 바른미래당 내 진보 세력,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아우르는 범여권 연대를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며 “여의도에서 총리한테 밥 한 번 못 얻어먹으면 정치인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총리가 (친박 핵심) 서청원 의원과 식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총리가 처한 상황은 여러모로 고건 전 총리 대망론과 닮았다. 고 전 총리도 한동안 차기 대권 여론조사 선두를 달렸다. 고 전 총리는 대선 승리를 위해 정대철 당시 열린우리당 고문 등과 손잡고 통합신당 정계개편을 시도했는데 이 부분이 친노(친노무현) 진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고건 씨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지지층이 분열됐다. 고 전 총리는 결국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낙연 대망론은 총리 출신이라는 점과 범여권 연대를 추진한다는 점, 키맨으로 정대철 고문이 등장하는 것까지 고건 대망론과 판박이다.
고건 대망론과 마찬가지로 이 총리가 차기 대선을 위해 손 대표나 정대철 고문과 손잡으려 한다면 친문 진영이 제동을 걸 수 있다. 친문 진영과 대립하면 이 총리 역시 지지층 분열로 고 전 총리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총리는 당 안팎 비문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민주당 당직자는 “이 총리는 당내 세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문 진영에 손 내밀 수밖에 없다. 친문, 비문 진영을 오가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숨죽이고 있는 비문 진영은 이낙연 대망론을 무척 반기는 분위기다. 이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가 되면 비문 진영에게 (당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건 전 총리를 내친 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허무하게 정권을 내줬다. 이후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았나. 적폐청산에 몰두해온 친문 세력이 정권을 뺏기면 더 가혹한 보복을 당할 수 있다. 본인들도 잘 알 것”이라면서 “이 총리는 호남 출신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호남 출신 대권주자에 대한 호남인들의 기대가 크다. 친문이 호남 출신 대권주자를 인위적으로 주저 앉혔다는 프레임에 갇히면 누굴 대안으로 내놔도 차기 대권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거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이 총리가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도박에 나선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정대철 “이낙연 총리직 물러나 종로 총선 출마해야” 정대철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이 총리는 정 고문이 새천년민주당 당 대표를 지낼 때 대표 비서실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정 고문은 이 총리가 지난 2014년 전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정 고문은 대표적인 킹메이커이기도 하다. 정 고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다. 정 고문이 생각하는 이낙연 대권플랜을 들어봤다. 정 고문은 “최근에도 종종 이 총리에게 연락이 와 소주 한잔씩 한다”면서 “대선 출마하라고 적극 권유했는데 (이 총리가) 실실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한다. 대선 출마 안하겠다고 하지는 않으니 본인도 (대선 출마) 생각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 고문은 이 총리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내년 총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고문은 “정권 중반기에 한번 총리를 교체하는 것이 관행이니 이 총리가 물러날 때가 됐다. 물러난 후 자연인으로 있으면 국민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조금 빨리 (총리직에서) 물러나서 내년 총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이 총리가 4선을 한 호남에 다시 출마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수도권 출마를 권유했다. 정 고문은 “이왕이면 (정치1번지라 불리는) 종로에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로구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지역구다. 김명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