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이 4월 11일 연출 데뷔작 ‘미성년’을 내놓는다. 연기자로 31년 동안 활동해온 그가 오랜 준비 끝에 내놓은 첫 연출 영화다. 배우가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김윤석은 섬세하면서도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을 보이면서 ‘실력 있는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렸다. 김윤석에 앞서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두 편의 영화를 내놓은 배우 하정우, 자신의 이야기를 극으로 옮겨 주목받은 배우 문소리도 ‘배우감독’ 대열을 이끈다.
# 김윤석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 찾아왔다”
연출 데뷔작 공개를 앞둔 김윤석은 10년 넘도록 상업영화 원톱 주연으로 활약해온 베테랑 배우인데도 “몹시 긴장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개봉을 앞두고 4월 1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만난 김윤석은 여느 신인감독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긴장의 빛이 역력하지만 데뷔작을 통해 그는 배우 그 이상의 실력을 드러낸다. 표현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와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포착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 ‘미성년’ 홍보 스틸 컷
‘미성년’은 부모의 불륜을 목도한 두 소녀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동급생인 이들은 서로의 아빠, 엄마가 부적절한 관계임을 알게 된 뒤 어른들이 미처 해결하려 들지 않는 복잡한 문제에 기꺼이 나서 행동한다. 김윤석은 ‘미성년’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것은 물론 영화에서 우유부단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이는 아빠 역할까지 직접 맡아 연기했다.
‘배우감독’의 역량은 직접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데서 더욱 빛난다. 김윤석은 한 달 동안 4차에 걸쳐 벌인 오디션을 통해 신예 김혜준, 박세진을 발굴한 것은 물론 극 중 이들 엄마 역을 나눠 맡은 염정아와 김소진까지 더해 4명의 여성이 겪는 변화무쌍한 심리와 관계를 세밀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김윤석은 “첫 번째 연출영화는 보통 눈높이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장 비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영화 연출을 원하면서도 적합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는 그는 2014년 12월 대학로 젊은 연극인들이 벌이는 창작극 페스티벌 무대를 찾았다가 우연히 ‘미성년’이란 희곡을 만났다. 기성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워크숍 형태의 공연인 탓에 모든 게 미완의 상태였지만 김윤석은 “어른들이 저지른 일을 아이들이 수습하려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영화로 만들고자 결심했다”고 돌이켰다. 3년여 동안 원작 희곡의 작가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개발한 김윤석은 햇수로 5년 만에 완성작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동료들의 응원도 적극적이다. 염정아는 “그동안 배우로서 경험해 본 적 없는 작업이었다”면서 “김윤석 감독님이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다 보니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면서 진행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이런 작품을 나에게 제안해준 게 감사하고 영광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영화 ‘클로즈 투 유’ 시나리오 리딩 모습.
신인감독 신고식을 치르는 김윤석의 뒤를 이어 배우 정진영과 정우성과 차례로 극영화 데뷔작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모두 연기자로 활발히 활동해오는 과정에서 영화 연출에도 각별한 뜻을 다진 공통점이 있다.
정우성은 액션 사극을 구상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가을께 촬영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지만 기획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정우성은 영화 기획이나 단편영화 연출 경험을 꾸준히 쌓아왔다. 2014년 킬러의 이야기인 단편영화 ‘킬러 앞의 노인’을 연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서 소개해 주목받았고 같은 해 기획과 제작, 주연까지 맡은 멜로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를 내놓기도 했다.
이후 동료배우 이정재와 손잡고 설립한 매니지먼트사 아티스트컴퍼니를 통해서도 영화 기획과 제작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배우를 넘어 영화 제작 전반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정우성은 “그동안 욕심나는 이야기나 그럴싸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기획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다”며 “연출 데뷔작은 사극액션이 될 텐데, 그 장르에서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우성의 감독 데뷔 선언은 최근 활발하게 이뤄지는 배우들의 연출 도전과 맞물려 시선을 붙잡는다. 그와 절친한 동료인 배우 하정우는 가장 과감하게 연출자로 데뷔한 경우다. 2013년 비행기 안에서 톱스타가 겪는 일을 그린 코미디 ‘롤러코스터’를 통해 장편 극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하정우는 이듬해인 2014년 중국 위화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허삼관’을 연출했다. 물론 관객으로부터 만족스러운 평가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왕성한 연기활동과 더불어 연출에도 적극 나서는 그의 행보는 선후배 배우들에게 적지 않은 자극제가 됐다.
영화 ‘허삼관’ 촬영 현장.
배우들이 영화감독으로 나서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하지만 공통적으로 꺼내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김윤석도 마찬가지다. ‘미성년’을 내놓으면서 그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도, 미성숙한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7년 영화 ‘여배우들’의 연출과 주연을 맡은 문소리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문소리 그 자신을 빗댄 자전적인 이야기다. 한국영화에서 여배우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현실적인 문제를 몸소 겪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 주목받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