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 박은숙 기자
당·청이 정권 명운을 걸고 조국 사수 작전을 전개했지만, 한 번의 변곡점만 맞으면 이는 즉각 역풍으로 돌변한다. 변곡점의 핵심은 여권 내부에서 ‘조국 경질론’이 제기될 때다. 현재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조국 경질론을 제기하지만, 만에 하나 여권 내부에서 조국 경질론의 물꼬가 터질 경우 상황은 180도 바뀐다. 이는 여권 균열의 활시위다. 수직적 당·청 관계의 전환을 넘어 여권 내 권력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 딜레마가 분출하는 시점은 ‘총선 공천 국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명분은 조 수석을 버리고 나머지를 살리는 ‘전략적 포기’다. 청문회 정국에선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죽이고 조 수석을 살리는 사석 작전이었다면, 이 국면에선 조 수석을 내치고 나머지는 살리는 작전이다.
2020년 4·13 총선은 당·청 운명을 결정짓는 분수령이다. 만에 하나 총선 공천 국면 전후로 청와대 인사시스템 논란이 재연된다면, 당이 조국 사수 작전을 전개할 이유는 사실상 없어진다. ‘조동호·최정호 불가론’을 펼쳤던 당의 입김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청와대 인사) 검증이 더 철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앞으로 당이 정부와 협의할 때 그런 점을 충분히 정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당·청 관계의 변화를 예고한 대목이다. 현 국면에서 사석 작전은 조국 구하기로 통하지만, 상황에 따라 조 수석 역시 사석 작전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종의 당·청의 정치적 생명연장을 위한 ‘불쏘시개’다. 물밑 기류의 변화는 감지된다. 당 밑바닥에선 조국 책임론이 분출하는 모양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 민정라인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차기 총선에서 조 수석이 부산·경남·울산(PK) 등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국 사수 작전과 총선 역할론을 맞바꾸는 일종의 딜이다. 당도 위험부담을 감수한 만큼, 조 수석도 책임 있는 정치로 답하라는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조국 구하기와 궤를 같이한다.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신임한 계기는 2015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2015년 4·30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비문(비문재인)계는 ‘문재인 퇴진론’을 앞세워 친문(친문재인)계가 장악한 당 최전선을 뒤흔들었다. 문 대통령은 ‘김상곤 혁신위원회’를 승부수로 꺼냈다.
조 수석은 당시 혁신위원회로 당에 참여, 공천 룰 개선과 당헌·당규 전면 개정을 완성했다. 조 수석은 당시 당내 비문계의 구심점이던 안철수 전 의원을 향해 “당을 나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이 검찰의 강력한 저항을 뚫을 수 있는 적임자로 조 수석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이유로는 위험부담이 큰 조국 사수 작전이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조국 카드는 당의 강력한 총선 무기가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는 PK 인사들이 조국 카드를 ‘총선 비밀병기’로 써야 한다고 BH(청와대)에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는 주장과 맞닿아있다. 민주당 내 부산 친문계가 ‘조국 대망론 띄우기’의 뒷배 역할을 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도 민정수석 후 거친 후 ‘초선 정치인→당 대표→대권’ 수순을 밟았다.
문제는 ‘조국 사수 작전’의 실익이다. 문 대통령이 국정 주도권을 쥐는 있는 상황에선 실익이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조 수석이 잘못한 일이 뭐가 있느냐”라고 항변하는 것도 40%대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인 40%대가 무너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조국 논란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이하로 하락한 상황에서 여의도 정치권이 총선 국면으로 전환한다면, 여권의 원심력은 커진다. 당·청 균열도 확장한다. ‘나도 친문이요’ 하던 비주류는 자취를 감춘다. 문 대통령과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대표의 관계 설정도 새 국면을 맞는다. 한 전략가는 “여권 내부에서 조국 책임론이 일기 시작하면, 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속히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전 포인트는 ‘비문계 반란’의 원심력과 주체세력이다. 일단 원심력이 클지는 미지수다. 현재 비주류의 구심점은 장기간 공백 상태다. 새정치연합 시절 친문계와 맞짱 승부를 펼쳤던 비문계 인사들은 대다수 탈당했다. ‘차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없다.
청문회 정국에서 당이 요청한 사수 작전에 대한 뒷말이 무성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권 일각에선 당이 ‘조동호·최정호’ 불가론을 펴기 전 노영민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먼저 움직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 내부에서 인사 실패를 자인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는 만큼, 밑그림만 그리고 뒤로 빠졌다는 얘기다. 당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친문 vs 비문’의 극한 대결보다는 범주류가 분화하는 선에서 여권 권력투쟁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새로운 판을 이끌 주체세력은 문재인 정부 신주류로 부상한 86(80년 학번·60년대 생)그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민주당 우상호·이인영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 출마가 유력한 임 전 실장은 대표적인 신친문이다. 친문 직계와는 결이 다르지만, 주류와 척을 지지도 않는다. 친문 직계를 넘어 임종석계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당내 인사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주류와의 ‘전략적 제휴’에도 능하다. 86그룹이 그간 20여 년간 숙주정치 논란에도 당내 공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장 오는 5월 예정된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는 이인영 의원은 친문 직계들이 만든 ‘부엉이 모임’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더좋은미래도 이 의원의 후원군이다. 이 의원의 당선 여부는 86그룹의 운명과 직결한다. 86그룹은 이해찬 호 출범 이후 ‘중진 물갈이 1순위’로 꼽혔다. 이해찬 발 개혁공천 희생양 1호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이 의원에 대해 “당선 의지가 강하다”라며 “최근 당내 모임에 얼굴을 비추는 횟수로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이 새 원내사령탑에 오른다면, 여권 권력구도는 신친문이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이 의원이 낙선할 경우 친문 직계는 서서히 분화 국면을 맞으면서 각자도생할 전망이다. 이 같은 구도는 신친문계에 ‘꽃놀이패’다. 이기면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지더라도 86그룹보다는 친문 직계의 정치적 타격이 더 크다. 야권 관계자는 “신친문이 전면 부상하면, 세대·세력 교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인적쇄신 경쟁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