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차관 의혹을 재수사하는 수사단의 여환섭 수사단장. 고성준 기자
본지는 지난해 6월 ‘청와대서 특별관리? 김학의 구명로비 실체(지령 1361호)’ 기사에서 박근혜 청와대가 ‘김학의 동영상’ 존재를 알고도 차관 임명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향후 이뤄진 검찰 수사에서 전방위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김 전 차관을 처음으로 겨눴던 몇몇 경찰 간부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그 후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발표, 정치권과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 폭로로 이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결국 검찰 재수사로 이어졌다.
검찰 내부 기류는 단호하다. 김 전 차관 부실 수사 논란을 불식시키지 않으면 검찰 역시 그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검찰 관계자들은 문무일 총장 임기가 오는 7월 끝난다는 점을 감안해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검 고위인사는 “검찰 조직 역시 상처를 입겠지만, 김학의 동영상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권력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수사팀이 박근혜 청와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정부가 김학의 대전고검장의 법무부 차관 임명을 발표한 것은 2013년 3월 13일이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 청와대가 성접대 동영상을 포함한 김 전 차관 의혹들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들이 드러났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4월 2일 국회에 출석해 “경찰이 김학의 전 차관 임명 전 청와대에 ‘첩보에 따라 범죄정보를 수집 중’이라고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민 청장은 “수사팀 관계자들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고도 언급하며 외압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김 전 차관을 검찰총장으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2년 처음 도입된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2013년 2월 7일 김진태 소병철 채동욱, 세 명을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했다. 이들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은 채동욱 전 총장을 임명했다. 채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14기 동기인 김 전 차관이 옷을 벗을 것이란 얘기가 나왔지만 그는 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옮겼다. 김 전 차관은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성접대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만뒀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차관과 윤중천 간 부적절한 관계는 어느 정도 퍼져 있는 상태였다. 김 전 차관의 낯 뜨거운 성관계 동영상 역시 공공연하게 유통됐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 몸담았던 한 친박 원로는 “김 전 차관에게 동영상 진위 여부를 물었지만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던 것으로 안다. 아무런 확인 작업은 없었다. 그러니 차관까지 임명한 것이다. VIP(박근혜 전 대통령)가 직접 챙겼던 인사였다”고 귀띔했다. 현직 부장검사 역시 “2013년 1~2월 가장 화제였던 김 전 차관 동영상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겠느냐”라면서 “그런데도 검찰총장 후보군에 이어 차관으로 발탁되자 그의 정치적 뒷배에 대해 관심이 높았었다”고 전했다.
이는 청와대가 김 전 차관 의혹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정식 내사를 시작한 것은 김 전 차관 임명 뒤이지만 그 전에 관련 내용을 청와대 쪽에 여러 차례 알렸다. 유선은 물론이고 수사팀 관계자가 직접 청와대로 들어가 보고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검찰총장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고위직 인사를 잡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경찰이 상당히 공을 들였던 수사였다. 정권 초기 경찰 실적을 신임 대통령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화근이 됐다. 김 전 차관이 정권과 가깝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실세들이 경찰 의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김 전 차관 인사를 강행한 이유를 두고 수많은 뒷말이 나왔다. 우선 ‘사실 무근’이라고 했던 김 전 차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경찰 고위 관계자도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은 누가 봐도 김 전 차관이었다. 본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윤중천과의 수상한 관계를 입증할 만한 자료도 있었다. 이를 청와대도 알고 있었다”라고 했다. 설령, 김 전 차관이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정무직 발탁을 앞둔 고위 공무원이 부적절한 추문에 연루됐는데도 최소한의 확인 없이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것 자체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참모 3인방 중 한 명이 김 전 차관 인사 및 수사에 깊숙이 관여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정권 출범 후부터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며 최고 실세로 통했다. 국정농단 재판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역할은 박 전 대통령의 ‘눈과 귀’ 그 자체였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 김 전 차관 건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란 추론으로 이어진다. 또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석연찮은 부분들도 자연스레 풀린다.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사정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 전 차관은 청와대 가장 깊숙한 곳에서 ‘특별관리’를 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참모 3인방 중 한 명이 수시로 우리 쪽(민정수석실)에 김 전 차관 수사 상황을 물었고, 별도의 루트를 통해 사건을 보고 받았다. 우리가 사건을 최초 인지한 것보다 더 빨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그에게 계속 ‘업데이트’를 해줬다. 그럴 권한이 전혀 없는 자리였다. 비선이 가동된 셈이었지만 당시 민정라인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참모 3인방이 누구냐. 우리로선 박 전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참모가 김 전 차관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에서 송치된 자료, 피해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 입증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무혐의를 받았다. 2014년 한 여성이 자신을 동영상 속 여성이라며 김 전 차관을 고소, 다시 수사가 시작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 참모는 검찰 수뇌부에 ‘(김 전 차관 사건은) VIP 관심사항’이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고 한다. 사실상 수사에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처럼 김 전 차관을 비호하려 했던 것일까.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차관 친분에 대한 여러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한 친박 원로 인사는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차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친박 인사를 주목해야 한다. 김 전 차관이 다치면 그 인사에까지 불똥이 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최측근 참모까지 움직였다. 김 전 차관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 인사 역시 윤중천 원주 별장 술자리에 몇 번 참석했다고 들었다. 그가 김학의 동영상 사건의 몸통이다. 또 ‘윤중천 리스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동진서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