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하루에 끝나던 압수수색은 이제 이틀은 기본, 길면 사흘에 걸쳐 이뤄진다. ‘디지털 자료’가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다. 피의자의 휴대 전화는 물론, 컴퓨터 자료도 일제히 확보해야 한다. 자료 하나하나마다 동의를 받아 조회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삭제된 자료는 없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기업 범죄는 물론, 개인 사건에서도 삭제된 자료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들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자기 방어 수단이다.
자연스레, 디지털 자료를 살려내고 확보하는 ‘복원 포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 등은 자체적으로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를 2008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 센터의 한 수사관이 증거물에서 혈흔을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디지털포렌식의 원 개념은 PC, 휴대전화, 외부저장 장치 등에 남아있는 데이터 기록을 분석해 법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삭제된 기록’을 찾아내는 데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일선에서 나오는 이유다. 삭제 기록을 찾아내기에 역부족이다. 또 전국에서 올라오는 각종 사건들을 서초동에서 처리해야 한다. 수사팀마다 포렌식센터에 연락해 “우리 사건을 먼저 해달라”고 청탁하는 일이 빈번하다.
법조계 시장도 수사당국 못지않게 포렌식 업체를 찾고 있다. 서울 교대역 인근에 있는 포렌식 업체는 통틀어 수십 곳에 달할 정도다.
민간업체를 통한 자료 확보 및 파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 디지털 장비 1~2개는 500만 원, 복구 등 시간이 걸릴 정도로 양이 많은 경우 1000만 원이 넘는 의뢰 케이스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로펌들은 포렌식 업체를 찾아 “빨리 해달라”고 간청한다고 한다. 의뢰를 해도 1주일 안에 결과를 받기 힘들 정도. 대형 로펌 안에 포렌식 담당 부서를 두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는데, 우스갯소리로 “포렌식 기술 배우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것”이라는 말이 로펌 내에서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 디지털 자료 전성시대, 포렌식 하면 자료도 ‘금방 확보’
검찰과 민간 업체의 포렌식 개념은 사뭇 다르다. 검찰의 포렌식은 삭제된 자료 복구도 있지만,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의 원본성을 훼손하지 않고 데이터가 증거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 크다. 향후 법정에서 ‘훼손되지 않은 자료’임을 입증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반면 로펌이 찾는 포렌식은 삭제된 자료를 복구하거나, 혹은 완전히 파기하는 목적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 몰카 촬영 및 유포 사실이 알려진 가수 정준영 씨 역시 지난 2016년 8월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이른바 ‘황금폰’의 포렌식을 맡겼던 곳에서 관련 자료들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로펌 등에서 의뢰하는 포렌식은 ‘의뢰→분석 및 보고서→파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삭제된 자료도 최근 1년 안팎의 내용들은 모두 복구된다. SNS 대화 기록은 물론, 이메일 내용도 일정 부분 복구가 가능하다. 로펌들도 포렌식 업체를 찾는 이유다.
대형로펌 관계자는 “민사 재판은 물론, 형사 재판에서도 유리할 수 있는 증거와 불리할 수 있는 증거를 모두 확보해서 사건에 증거로 활용해야 한다”며 “이제는 휴대폰 안에 단순 전화나 문자 기록은 물론, GPS 등을 통해 어디서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록도 나와 있어 방어 차원에서라도 꼭 확보해야 하는 게 포렌식 자료”라고 설명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이규철 대변인이 장시호 씨가 제출한 태블릿PC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자료가 핵심 증거로 활용되는 재판 트렌드는 최근 사건 흐름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7년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 당시 JTBC가 확보한 태블릿 PC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는데, 이 과정에서 최 씨는 “태블릿 PC는 증거능력이 없다. 나는 모르는 자료”라고 증거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디지털포렌식 과정에서 태블릿 PC의 사용자가 최 씨라는 것을 강조했다.
정준영 씨의 황금폰도 핵심 증거가 됐다. 정 씨는 포렌식 업체에 분석을 맡겼지만, 이 과정에서 적나라한 대화 내용과 함께 동영상 유포 과정이 고스란히 경찰 손에 넘겨졌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경찰에게 정 씨는 “유포한 게 사실”이라며 유죄를 인정하는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자료를 잘 확보하는 것이 수사를 얼마나 쉽게 끌고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케이스라는 얘기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선거법 위반 등 혐의가 유죄로 판단된 핵심 근거는 텔레그램 메시지였는데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구된 자료였고,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에서도 아버지(교사)와 딸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들은 역시 모두 삭제됐었지만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구됐다.
# 커지는 시장, 우려는 없나
시장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범죄 입증 증거(대화 및 자료 공유)가 디지털 기기를 통해 다뤄지는 비중이 늘면서, 포렌식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컨설팅 전문기관인 트랜스페런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 포렌식 글로벌시장은 2016년 28억 7000만 달러에서 매년 9.7%씩 성장하고 있다. 2025년에는 약 66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형 로펌 관계자들이 포렌식 시장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고 하는 이유다. 대형로펌 관계자는 “최근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상담이 끝나고 사건을 맡게 되면 관련된 자료를 포렌식에 보내서 분석 및 폐기를 하곤 한다”며 “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대부분 권하고 이를 통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변론에도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급한 사건의 경우 비용이 더 올라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로펌들마다 1~2곳 업체를 선정해 포렌식을 의뢰하는데, 최근 의뢰가 급증하면서 길게는 1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데이터 양이 많은데 급한 사건의 경우 2000만 원이 넘는 비용에도 의뢰를 보냈다”며 “의뢰인이 지불하다보니 포렌식 업체가 부르는 비용을 거의 깎지 않고 진행한다. 포렌식 업체들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급격히 커지는 시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과거 데이터만 취급하던 업체들이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를 다루게 됐고, 우후죽순 포렌식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포렌식 업계 관계자는 “정준영 씨 사건도 그렇고, 의뢰인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규정 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고객과의 약속으로 폐기 등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확실한 기준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