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게이트’로 시작된 이 사건은 ‘정준영 게이트’로 옮겨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을 조짐이다. SNS 상에서 유명인이었던 황하나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가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된 후 경찰의 수사망이 그가 SNS에서 친분을 과시했던 연예인들을 정조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준영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정준영이 미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연예 활동보다는 유흥으로 한데 묶인 승리 외에도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은 많았다. Mnet ‘슈퍼스타K’ 출신인 그와 함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가수 로이킴, 에디킴은 잇따라 경찰의 부름을 받았다. 이미 정준영의 절친으로 알려져 사건 초기부터 각종 ‘찌라시’를 통해 이름이 오르내렸던 그들은 비교적 늦게 음란물 유포 등의 혐의로 도마에 올랐다. 정준영과 함께 KBS 2TV ‘1박2일’에 출연하던 배우 차태현과 방송인 김준호 등은 정준영과 나눈 채팅방 속에서 내기골프를 즐긴 정황이 포착돼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정준영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가수 강인과 정진운 등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를 두고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게 된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반응과,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12년 데뷔한 그가 지난 7년간 숱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많은 연예인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까이 지내면 알게 되는 정준영의 그릇된 기운에 동조한 이들만 그의 곁에 남았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이 같은 오해가 제2의 피해자를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연예계의 특성상 대다수는 안면을 트고 지내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데 어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명이 모인 채팅방 안에서 누군가가 짓궂은 장난을 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이를 지적하고 만류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란 설명이다.
이번 사태는 방송가에서 단체 채팅방 개설을 꺼리는 분위기도 만들었다. 각자 다른 소속사에 몸담은 연예인들의 특성상 같은 프로그램에 섭외되면 단체 채팅방을 만들고 의견을 교류하고 친분을 쌓는다. 하지만 이 안에서 자신이 내뱉은 발언이 향후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뜻 ‘채팅방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어렵고, 채팅방이 만들어져도 지극히 공적인 정보 교류 외에 사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풍토가 조성됐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정준영의 휴대폰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며 이번 사태가 커졌듯, ‘나만 조심하면 된다’는 식의 방어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연예계의 시각”이라며 “아주 가까워지지 않으면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인간관계와 사적인 친분을 쌓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하나 게이트’ 과연 열릴까?
그동안 알음알음 이름이 오르내리던 승리와 정준영의 측근들이 모두 수면 위로 올라오며 대중의 관심은 이제 ‘황하나의 입’으로 쏠리고 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마약 투약 사실을 인정하며 “연예인 A가 마약을 강제 투약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아울러 A가 계속 마약을 권유했으며 마약을 구해오라고 했다는 폭로도 서슴지 않았다.
이미 여러 남자 연예인의 이름이 A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A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름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경찰 역시 이를 확인해주지 않는 분위기다.
마약 투약 의혹으로 체포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가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연예계가 황하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그가 실제로 많은 연예인들과 교류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과 교제하며 대중에도 익숙한 인물로 그동안 SNS 활동을 활발히 하며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 씨엔블루 이종현, 래퍼 쌈디, 소녀시대 효연 등과의 친분을 과시해왔다. 이 중 이번 사태 속에서 최종훈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입건됐으며 이종현 역시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황하나 발언의 신빙성 여부는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SNS라는 도구를 통해 대중들과 접점을 넓히며 자신의 의견을 널리 전파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활동할 수 있는 연예인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황하나의 행보는 연예 관계자들과 대중의 초미의 관심사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요즘 유명 블로거나 SNS 스타들은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다수 연예인과도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번 황하나 사태를 계기로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는 몇몇 SNS 스타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한 연예계의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