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등에서는 정권의 신임을 받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파격적으로 ‘검찰총장’이 될 가능성을 내놓지만, 검찰 내에서는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진단이 나온다. 기수를 파격적으로 건너뛰는 것도, 기존 고검장들을 다 내보내고 윤석열 지검장을 총장에 앉히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추측이다. 지난 2년 사이 문재인 정부와 교감하는 고검장들이 여럿 생긴 점도 변수다.
문무일 검찰총장. 임준선 기자
#문무일 “차기 총장이…” 발언에 검찰 ‘누구?’ 궁금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4월 9일 대검찰청 정례 대검찰청 월례간부회의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재수사 관련 “검찰이 제때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이를 다시 수사하게 된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공정성에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 그는 “검찰 개혁 과제의 진행 상황을 점검해 임기 내 완료할 것들은 좀 더 속도를 내고 장기 추진 과제들도 미리 검토해 차기 총장 취임 후 본격 진행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이 직접 자신의 임기에 대해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문무일 검찰총장의 후임자는 5월 중에는 윤곽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를 시인한 셈이다. 언론에서는 2개월의 조사위 활동시한이 끝나는 시기와 겹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되레 검찰 내에서는 “차기 총장은 누가 될 것 같냐”는 추측에 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능성 낮은 윤석열 ‘수원 고검장 갔으면 모를까’
검찰을 대표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초동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지만, 정작 검찰에서는 “가능성이 너무너무 낮은 시나리오”라고 지적한다. 다수의 검사들은 문무일 총장과 윤석열 지검장의 기수가 너무 많이 차이 나고, 윤석열 지검장이 고검장 승진에 실패한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 18기. 반면 윤석열 지검장은 23기다. 5기수나 차이가 난다. 윤석열 지검장을 앉힐 경우 검찰의 인사 라인업을 강제적으로 5년이나 내려가야 한다. 너무 파격적인 인사다. 고검장급도 한꺼번에 24~25기로 낮춰져야 한다.
윤석열 서울지검장. 이종현 기자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검찰 서열 2위’로 통하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검사를 앉혔다. 검사장으로 승진시킴과 동시에 기수를 파괴한 파격 인사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격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검사와도 같은 윤석열 지검장이지만 “되레 강직하고 기수 문화 등에는 보수적인 윤 지검장이기 때문에 이번 인사 때 절대 욕심을 내지 않을 사람”이라는 평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보탠다.
새로 문을 연 수원고검의 수장(고검장급 자리)에 윤석열 지검장도 후보로 거론됐지만, 정부는 이금로 대전고검장(사법연수원 20기)을 낙점했기 때문이다.
수원고검이 서울고검을 제치고 일약 전국 최대 규모 고등검찰청이 되기 때문에 수원고검장 인사는 올해 초 검찰의 가장 큰 관심이었다. 사건 수만 놓고 본다면 이미 수원지검이 서울중앙지검을 앞지르고 있는 데다, 안양·안산·성남·여주 등 소위 ‘지방검찰청급 지청’들을 대거 관할하는 게 수원고검이다.
당초 윤 지검장이 ‘초대 수원고검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금로 고검장을 대전에서 수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방식을 선택했다.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해 온 윤석열 지검장은 차기가 아닌, ‘차차기 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검찰 관계자는 “윤 지검장이 이번 2월 수원고검장 원포인트 인사 때 고검장(수원고검장)으로 승진을 했으면 차기 총장설이 무게가 실렸을 것이고 실제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그냥 지검장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냐”며 “처음 지검장에 올라올 때와는 다르다. 임기 중반을 지난 현 정부가 자신들의 사람으로 고검장을 세팅했기 때문에 또 다시 파격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윤 지검장은 차차기로 문재인 정권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총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점쳤다.
통상 검찰총장은 고검장 가운데 임명하기 때문에 이번 수원고검장 인사는 차기 검찰총장을 가늠하는 자리인데, 이미 고검장들 중 몇몇이 ‘청와대에 끈이 있다더라’는 설이 무성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고위직 관계자는 “벌써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특정 고검장의 경우 과거 대학 시절 인연 등을 통해 청와대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돈다”고 귀띔했다.
#누가 유력할까? 고검장들 동상이몽?
문무일 총장이 18기인 탓에, 관례대로라면 차기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 19∼21기 가운데 1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고검장급 인사 가운데 19기와 21기 사이에 있는 인사들이 모두 유력한 후보다.
현재 19기로는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 황철규 부산고검장, 조은석 법무연수원장이 있고, 20기에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금로 수원고검장, 박정식 서울고검장 등이 포진해 있다.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금로 수원고검장. 임준선 기자
이 가운데 유력하게 언급되는 것은 봉욱 차장이나, 황철규 고검장, 이금로 고검장 등이다. 앞선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역 안배를 하는 게 고려된다면 호남 출신이 다시 오르기는 부담스럽다”며 “서울 연고의 봉욱 차장이나 황철규 고검장, 충북 이금로 고검장이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오수 법무부 차관설도 적지 않다. 광주 출신이지만, 이미 정부에서 ‘신임한다’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받은 고검장이다.
김오수 차관은 법무연수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청와대로부터 금융감독원장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에서 김오수 차관에게 이를 제안했지만 김오수 당시 원장이 완곡하게 고사했는데,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청와대가 법조계 인사한테 제안할 정도면 얼마나 신뢰한다는 뜻이겠냐”며 “당시 이를 놓고 김오수 차관이 청와대로부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검찰총장 낙점 레이스는 소리 소문 없이 공식화된 셈”이라며 “통상 총장 임명 전까지 알려지지 않은 소문과 말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데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이제 검찰 내에서는 누가 총장이 되느냐에 따라 자기 인사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가늠하는 게 검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얘기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