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박중원 씨가 허위공시 혐의로 구속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측은 중원 씨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음에도 금방 갚을 수 있을 것처럼 속이고 돈을 빌려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원 씨는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외제차를 담보로 제시했는데 알고보니 리스차량이었다.
중원 씨는 공판기일에는 성실하게 출석해오다 막상 2018년 10월 25일 열린 선고기일에는 불출석했다. 피해자 측 관계자는 “선고기일 변경신청이나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되지 않았다. 증거가 너무나 명확했고, 동종범죄로 구속된 전력까지 있었다. 실형이 예상되니 구속을 피하기 위해 도주한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중원 씨는 2013년에도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당시 중원 씨는 피해자에게 자기 소유 빌라 유치권만 해결되면 돈을 갚겠다고 했지만 빌라 소유주는 다른 사람이었다. 중원 씨는 2012년 11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잠적한 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13년 3월경 검거됐다.
중원 씨가 도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재판부는 재차 선고기일을 잡았다. 중원 씨는 2018년 11월 29일, 2019년 1월 10일 등 3차례 열린 선고기일에 모두 불출석했다.
피해자 측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피해자 측은 “우리 쪽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보통 선고기일에 2차례만 불출석해도 바로 궐석재판으로 판결이 내려진다고 한다. 중원 씨는 3차례나 불출석했고 최초 선고기일로부터 반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중원 씨는 3번째 선고기일 다음 날이 돼서야 불출석 사유서를 처음으로 제출했다.
변환봉 법률사무소 변환봉 변호사는 “피고인이 3차례나 선고기일에 불출석했을 경우 궐석재판으로 먼저 선고를 내리고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초 선고기일에서 6개월이나 미뤄지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뒤늦게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3번이나 불출석하고도 구속이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본인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든가, 가족이 사망했다든가 하는 중대 사유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은 중원 씨가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재판부는 지난 1월 이후로는 추가 선고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가 지난 4월 3일 중원 씨가 동종혐의로 추가 기소되자 사건을 병합해 처리하기로 했다. 중원 씨에 대한 재판은 오는 4월 25일부터 다시 시작된다.
중원 씨는 이미 2018년 1월 2일과 2월 20일에 기소된 사건을 병합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중원 씨가 연루된 사기 사건은 총 4건으로 늘어났다.
변환봉 변호사는 선고를 내리지 않고 사건을 병합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변 변호사는 “피고인 이익을 위해 재판부가 사건을 병합할 수는 있지만 3번이나 선고기일에 불출석 했으면 별도로 선고를 하고 추가로 재판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검사 출신인 정준길 변호사도 “피고인이 선고기일에 3차례 불출석했다면 재판부가 주소보정을 명할 것이 아니라 구인영장도 함께 발부하고 선고일자를 정했어야 한다”면서 “재판부가 구인영장 발부 없이 기일을 연기하고, 그로부터 약 80일 후 별건 추가 기소 후에야 공판기일이 잡힌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 변호사는 “피고인이 계속 선고기일에 출석하지 않고 있고, 과거 동종범죄로 구속된 전력과 도주 이력까지 있다. 이런 경우 검찰은 추가 기소 사건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하지만 불구속 기소가 된 점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중원 씨는 최근 기존 법무법인과 계약을 해지하고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했다. 피해자 측은 “중원 씨는 고작 수천만 원을 갚지 못해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갑자기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했는지 모르겠다. 대형 법무법인은 수임료가 억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배후에 다른 가족의 지원 혹은 두산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두산 측은 “중원 씨 개인 송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드릴 말씀도 없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측은 “최근 법원 내 인사이동이 있어 담당 판사가 변경됐고, 4월에 사건이 병합되면서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 특혜는 아니다”라며 “법원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민감한 부분이 있어 공개할 수 없지만 불구속 피고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고 해명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박중원 씨 경제적 고통 까닭은? 아버지 세대 ‘형제의 난’ 후 두산가서 제명 박중원 씨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조카이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사촌이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3대 때부터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형제 경영’을 해왔다. 중원 씨의 아버지인 고 박용오 전 회장은 1997~2004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두산가 4세인 중원 씨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 박용오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3남인 박용성 당시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추대되자 강하게 반발하며 이른바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박용오 전 회장은 박용성 회장 추대를 앞두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오너 일가의 비리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동생들은 박용오 전 회장이 2700억 원대 분식회계를 했다며 맞불을 놨다. 진흙탕 싸움 끝에 박용오 전 회장과 오너 일가가 무더기로 처벌을 받았다. 형제들 간 법정다툼 후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두산가에서 완전히 제명됐다.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있던 중원 씨도 해임됐다. 이후 박용오 전 회장 일가는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성지건설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업이 위축되며 실적부진을 겪었다. 박용오 전 회장은 사업부진을 비관해 2009년 자살했다. 박용오 전 회장은 유서에서 ‘자신과 함께 두산가에서 배제됐던 두 아들을 다시 두산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박용오 전 회장이 유서를 통해 부탁한 만큼 두산가가 조카들을 보듬어주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후에도 두산가는 두 사람과 선을 긋고 있다. 김명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