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기혼 여성은 평균 2.23명(2016년 기준)의 아이를 낳는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그렇다면 왜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98명이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결혼의 현격한 감소에서 찾을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사회조사’ 결과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응답은 48%를 차지했다. 처음으로 50% 이하를 기록한 것이다. 결혼 건수도 197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28만여 건을 기록했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30대 직장인 A 씨는 “불안정한 고용, 높은 집 값, 보육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공무원이 아니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자식을 낳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하소연이 젊은 층으로부터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결혼은 소득, 즉 경제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통계청 경제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남성노동자 임금 상위 10%(10분위)의 기혼자 비율은 86.3%인데 반해 하위 10%(1분위)는 20.3%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난하면 결혼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08년 임금 하위 10%의 결혼율이 57%였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력이 결혼에 끼치는 영향이 극명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의 안이한 대책도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하면 육아용품을 주거나, 분만 시 병원비를 부담해주는 등의 출산 정책을 써왔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은 없었다. 3자녀 출산 시 수천만 원을 주겠다는 지자체의 정책도 결이 같다.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는 없이 출산만 늘리면, 인구수만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두면 된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근본 원인인 고용과 주거, 그리고 적정한 소득 없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건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신혼부부에게 집을 주고 공무원에 준하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득을 보전해주는 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낮은 임금으로 생활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수 있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정부 복지예산은 일자리 예산을 포함해 무려 162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에 비해 복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집행되거나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각종 복지 예산은 매년 기존 정책을 답습하며 반복되지만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 생활고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하방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송파 세모녀 사건이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의 현실을 고발한다. 차라리 조건 없이 그들에게 돈을 지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경기도는 지난 8일 ‘청년 기본소득’의 첫 신청을 받았다. 내용은 분기별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주는 것이다. 한 달에 6만 2500원꼴이다. 유럽에서 실험하고 있는 기본소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다. 핀란드는 매달 550유로(70만 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첫발을 뗐다는 점, 정부가 전면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조건 없이’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복지 예산을 편성해 특정 분야에 사용하게 했다. 그로 인해 해당 분야의 예산을 타내기 위해 국가가 정한 조건을 갖춘 사업체가 양산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이 같은 기형적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돈을 직접 줘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본소득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제안하는 이재명 경기지사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핵심정책’ 중 하나다. 한정된 예산과 광역단체장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청년’에 한정한 기본소득을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성남시장 시절부터 고집해온 기본소득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지난해 말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에게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의 당론 채택을 제안하며 “소액이라도 시작해보자”는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이달 말 열리는 기본소득 박람회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공론화와 공감대 형성에 나설 계획이다.
기본소득이 저출산을 완전히 해결할 거라는 근거는 없다. 현재까지 기본소득을 시도해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는 소득만이 아닌 일자리, 주거, 보육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와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률 감소가 경제적 불안정 때문이라는 것은 청년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돈 없으면 인간답게 살기 힘든 사회, 이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경기도의 기본소득이 첫발을 뗀 시점에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1차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참가자들은 기본소득 이후 행복감과 삶에 대한 만족을 느꼈다는 응답을 했다. 긍정적인 변화다. 이 같은 변화가 우리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