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디딜 틈도 없었다. 선고를 두 시간 앞둔 오후 12시.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길목엔 기동경찰 버스 10여대가 서 있었다. 해외 방송국 차량도 등장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으로 헌재 정문 앞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두 단체는 헌재 정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수십명의 경찰이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충돌을 막았다. 건물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경찰 사이를 뚫고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 앞 두 단체가 마주서 있다 사진=최희주 기자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쪽은 주로 종교단체였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기독여민회, 옳은가치시민연합 등 47개 단체는 ‘태아의 생명권’과 ‘생명 윤리 존중’을 이유로 낙태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단체는 현장에 커다란 스피커까지 동원해 목소리를 키웠다. 이들은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옳은가치시민연합 대표 김수진 씨는 “낙태죄가 간곡하게 합헌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 저쪽(낙태죄 폐지 찬성 측)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고 있다. 맞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리다. 그러나 자기 결정권을 위해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성교육을 강조했다. 이들은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음란물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성관계는 10대에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오후 1시 쯤 기자회견 및 릴레이 발언이 시작됐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단체의 목소리도 커졌다. 시민단체 모임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임신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미 암암리에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여성이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의료적 환경이 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엔 교수연구자단체와 장애인단체도 함께 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충돌하는 가운데 남성의 책임에 대해서만큼은 한 목소리가 나왔다. 네 살짜리아이와 함께 낙태죄 폐지 반대 측에 선 김 아무개 씨(47)는 “진짜 사나이는 자기 아이를 버리지 않는다. 사나이가 자기 여자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폐지를 촉구하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정 아무개 씨(23)은 “임신은 함께 하는 것인데 낙태 책임이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에게만 책임이 돌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낙태법은 66년 전 만들어진 전근대적인 법이다. 66년 전과 지금이 같나”고 주장했다.
한편 오늘 열리는 헌법재판에서 재판관 6명 이상이 낙태죄를 ‘단순 위헌’으로 결정할 경우 형법 269조와 270조의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된다. 이는 1953년 낙태죄가 규정된 지 66년만이다.
최희주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