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문제를 두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경영 정상화 계획을 공개했다. 박삼구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지 2주 만이다. 지난 9일 금호아시아나로부터 계획을 넘겨받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다음날인 10일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빚은 총 3조 431억 원. 이 가운데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만 1조 704억 원이다. 채권단은 그동안 금호아시아나 그룹 측에 올해 갚아야 하는 1조 원에 대한 구체적인 상환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해 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 금융당국과 채권단, 시장 반응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자구계획을 보면, 금호 측은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금호고속에 대한 박삼구 전 회장 일가의 지분을 전부 담보로 내놓겠다고 했다. 3년 안에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팔아도 좋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대신 현재 직면한 아시아나의 유동성 문제 해소를 위해 5000억 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총망라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계획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다. 일부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상식적’이라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내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진다. 금호 측 자구안에 따르면 박삼구 전 회장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 지분 전량을 내놓고 경영 정상화를 약속한 것이다. 박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금호고속의 총 지분은 55.5%에 달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현재로선 금호 측이 제공할 수 있는 담보 규모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박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 13만 3900주(4.8%)를 채권단에 새롭게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다. 이 지분의 시장가치도 약 140억 원으로, 부채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박 전 회장과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지분 42.7%가 남아 있지만 이 지분은 이미 채권단에 금호타이어 차입금에 대한 담보로 잡혀있다. 갚아야 할 돈은 갚지 않고 이미 내놨던 담보를 다시 내놓는 셈이다. 이는 금호 측의 제출한 계획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결정적 이유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박 전 회장과 박세창 사장의 지분은 다른 채무에 대한 담보인데다 공적자금도 들어가 있다. 금호 측은 채권단에게 이 담보를 먼저 해지 해주면 추가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실현 가능한 제안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제시한 ‘3년 유예’ 조건과 ‘긴급 자금 5000억 원 수혈’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재무 악화 이후 채권단은 줄곧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과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매각 이상의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금호 측의 3년 유예 방안과 긴급 자금 요청은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는 게 일부 채권단과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아시아나항공 채권은행 관계자는 “이 계획에 따르면 이미 채권단에 4050억 원이 있는데, 추가로 5000억 원을 더 지원해줘야 한다. 이 경우 차입금은 9050억 원이다”라며 “채권단이 박 전 회장 일가의 지분을 지켜주기 위해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돈을 추가로 더 빌려줘야 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냉정히 말해 채권단 입장에선 돈을 빌려주지 않고 당장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새롭게 내놓은 건 박삼구 전 회장 아내와 딸의 지분뿐이다. 3년이란 시간이든 5000억 원이든 금호 측이 제시한대로 이행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밖에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등의 매각에 대해선 구체적인 제시안도 필요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지난해 금호사옥과 CJ대한통운 지분을 매각해 현금화 했고, 현재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상장회사 지분은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뿐이다. 지분 가치는 시가 기준 각각 1000억 원 수준이다.
이같은 냉담한 채권단과 시장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힘을 실었다. 최 위원장은 11일 금호아시아나 자구계획에 대해 “다 내려놓고 퇴진하겠다며 3년 더 달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제출한 자구안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했는지, 박 전 회장의 아들이 경영한다고 하는데 지금하고 무엇이 다른지 등 시장 반응을 채권단이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한 관계자는 “산은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세부 계획이 더 있다”며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산은 등 채권단과 협의에 성심성의껏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이 내놓을 만한 마땅한 자구책이 없다는 점이 줄곧 지적돼 오면서 시장 일각에선 산은이 일단 금호아시아나그룹 측 제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11일 회의를 열고 “사재 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미흡하다”는 입장을 냈다.
채권단은 “이 자구계획에 따라 금호 측이 요청한 5000억 원을 채권단이 지원하더라도 시장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채권단 추가 자금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산은은 이같은 채권단 회의 결과를 금호 측에 통보했다. 또 9개 은행으로 구성된 채권단 협의를 통해 향후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은행권 차입금은 총 4050억 원이다. 이 중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1560억 원, 수출입은행이 720억 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중은행 차입금은 SC제일은행 1080억 원, NH농협은행 500억 원, 우리은행 120억 원, 광주은행 70억 원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