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서 마약밀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권 아무개 씨와 박원순 서울시장. 권 씨는 박원순 시장의 조카로 알려진 인물이다. 사진=일요신문
[일요신문] 중국에서 ‘마약 밀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권 아무개 씨는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한·중 수형자 이송 조약’에 따라 2016년 한국으로 돌아온 권 씨를 두고,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권 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카로 알려진 인물이다.
2019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키워드는 ‘마약’이다. 연초부터 버닝썬 물뽕 논란, 유시춘 EBS 이사장 아들의 마약복용 논란, 방송인 로버트 할리 필로폰 투약 적발,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의혹 등 굵직한 ‘마약 스캔들’이 여럿 터졌다. 이런 와중에 일부 매체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카인 권 아무개 씨의 마약범죄 경력을 조명했다.
#마약 1kg 밀반출 시도 혐의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카 권 씨는 2006년 7월 31일 중국 선양국제공항에서 마약 1kg 밀반출을 시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권 씨는 마약 1kg을 소지하고 김해국제공항으로 출발하는 CZ665편 항공기에 탑승하려다 중국 공안에 덜미를 잡혔다. 결국 권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권 씨는 중국 선양 제2감옥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권 씨가 수감된 지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2016년 8월 19일 아침. 권 씨는 ‘한·중 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라 국내로 이송됐다. 선양 제2감옥을 나온 권 씨는 선양에서 10시 15분에 출발하는 KE0832 항공편에 탑승했고, 오후 1시 5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국내 교도소로 이감됐다.
권 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2016년 8월은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한·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이런 외부 환경은 권 씨 국내 이송을 둘러싼 특혜 의혹에 불을 지핀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권 씨가 체포될 당시와 권 씨가 국내로 이송될 시점의 한·중관계 기류는 180도 달랐다. 10년 사이 한·중관계는 급변했다. 중국 소식통은 “권 씨가 체포된 2006년 당시 한·중은 밀월관계였다”고 귀띔했다.
2006년 11월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자국 ‘마약 밀수 실태’를 보도했다. 이 보도엔 2006년 7월 중국 공안에 체포된 권 씨가 등장했다. CCTV 갈무리.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중국 소식통 A 씨는 “중국인의 경우 마약을 300g 이상 소지했을 경우 사형을 선고받는다”면서 “권 씨가 중국인들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이면엔 2000년대 중반 한국과 중국의 밀월관계가 한몫했다. 당시 경제 성장에 국가역량을 집중했던 중국으로선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필요했다. 만약 권 씨가 현 시점에 마약사범으로 중국 당국의 재판을 받았다면 사형선고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권 씨가 한국으로 이송될 당시 한국과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배치 논란으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2016년 8월 19일 권 씨가 ‘한·중 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라 한국으로 이송되기 한 달여 전인 7월 8일, 국방부는 “사드배치에 대한 한·미간 합의가 완료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권 씨가 이송되기 8일 전인 8월 11일엔 중국 측의 일방 통보로 ‘한·중 청소년 교류 파견사업’이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4년부터 ‘연례행사’ 격으로 진행되던 프로그램의 연기를 일방 통보한 것이다. 사실상 ‘사드배치 공식 발표’에 대한 중국 측의 후속 조치였다. 외교적으로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한·중 청소년 교류 파견사업’의 경우 외교적 무게감이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단호한 대처를 서슴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주한미군 사드배치’에 얼마나 예민한 반응을 보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2016년 8월 한·중 관계는 ‘살얼음판’이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형국이었다.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권 씨는 2016년 5월 말 ‘이송 대상자 신체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체검사는 국내 이송 절차의 시작 단계로 전해졌다. 한·중 외교 관계가 급변한 건 권 씨의 이송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그간 중국 당국이 보인 ‘무원칙 행정’ 사례에 비추어볼 때, 권 씨의 국내 이송 성사 여부 역시 불투명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권 씨의 국내 이송 작업은 큰 차질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권 씨가 한국으로 이송된 뒤, 재중국 한국인 수형자의 국내 이송은 ‘사실상 중단’에 가까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일부 재중국 한국인 수형자 측근은 “권 씨가 사실상 중국 당국의 수형자 한국 이송의 막차를 탄 셈”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2016년 국외 수감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 사례 단 3명뿐
최근 5년간 국외 및 중국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 현황. 2016년 이후 국외 수형자의 국내 이송 사례는 눈에 띄게 줄었다. 자료=김종민 의원실, 일요신문
2018년 10월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외에 수감된 한국인 수형자는 총 1378명(2018년 8월 기준)이었다. 그 가운데 2014년부터 2018년 8월까지 국내로 이송된 수형자는 총 27명에 불과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자료엔 2014년부터 연도별로 국내로 이송된 수형자 수가 명시돼 있다. ‘2014년 12명→2015년 11명→2016년 3명→2017년 1명’. 최근 5년 동안 국외에서 국내로 이송된 한국인 수형자 수다.
수치를 살펴보면, 국외에 수감된 한국인의 수형자 국내 이송 사례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수치적 변화엔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 관계 악화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내로 이송되는 국외 한국인 수형자 가운데, 중국 내 한국인 수감자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2010년~2015년 중국 내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 현황’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으로부터 이송된 한국인 수형자는 총 18명이다. 2014년 7명, 2015년엔 5명의 재중국 한국인 수형자가 국내로 이송됐다. 2014~2015년 국내로 이송된 국외 한국인 수형자는 총 23명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수형자가 중국으로부터 이송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초. 주한미군 사드배치와 관련한 국내외적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중국 당국의 한국인 수형자 이송 사례는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소식통은 “2016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송된 한국인 수형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카 권 아무개 씨뿐일 것이다. 그 이후에도 중국에서 이송된 한국인 수형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재중국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이 급감하자, 국외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 사례 역시 눈에 띄게 감소했다.
4월 2일 ‘일요신문’은 해당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법무부에 “2016년 이후 재중 한국인 수형자 국내 이송 사례”를 질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4월 5일 서면 답변을 통해 “한·중 외교관계 등을 고려할 때 요청 자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재중 한국인 수형자의 측근 B 씨는 권 씨의 국내 이송을 두고, “충분히 특혜 의혹이 불거질 만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B 씨는 “지금까지 중국 측이 한국으로 이송한 마약사범 대다수는 중풍, 간경화, 암 등 질환을 앓는 중환자가 대부분이었다. 거동 자체가 불편한 수준이었다. 중국 당국은 이처럼 중환자에 해당하는 한국인 수감자를 대상으로만 국내 이송을 허락하는 경향이 있다. 약값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B 씨는 “중국 당국은 선양 제2교도소(권 씨가 수감돼 있던 교도소) 수형자 5000여 명의 약값에 대한 예산을 일괄적으로 책정한다. 5000여 명 약값으로 책정한 예산은 1달에 5만 위안(약 845만 원) 정도다. 평균을 내보면, 1인당 한 달간 제공받을 수 있는 약값이 10위안(1700원)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 중환자가 생길 경우 해당 수형자 개인 약값이 많이 들고, 중국 당국이 책정한 예산을 넘어서는 지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중국 당국이 중환자에 해당하는 한국인 수형자 위주로 국내 이송을 실시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B 씨는 “그렇기에 박원순 시장의 조카 권 아무개 씨의 국내 송환이 수상쩍은 것이다. 권 씨는 앞서 언급한 국내 이송 수형자들처럼 중증 질환을 앓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권 씨는 허리디스크 증상으로 국내 이송을 원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권 씨의 질환 정도는 기존 국내 이송을 진행한 다른 수형자들에 비해선 상당히 경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 씨의 국내 이송이 이뤄진 전후로 한·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젠 중증 질환을 앓는 한국인 수형자들의 국내 이송마저도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으로 이송된 뒤 어떻게 됐나
2016년 8월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권 아무개 씨. 사진=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일요신문’은 취재 중 권 씨와 함께 교정생활을 했던 C 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C 씨는 2016년 8월 19일 권 씨가 선양 제2감옥을 떠나기 전, 함께 생활하던 한국인 재소자들에게 남긴 ‘몇 마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C 씨는 “권 씨가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박원순 시장의 형제 중 한 명과 통화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국내 이송이 결정된 뒤 권 씨는 한국에서 자신이 사면·가석방 처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C 씨는 “권 씨가 법무부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내게 전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가석방이나 사면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C 씨가 법무부 관계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는 권 씨의 말과 조금 달랐다. C 씨는 2016년 당시 “법무부 관계자가 ‘한국에서 가석방 조치를 받는 것은 힘들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기억했다.
그렇다면, 권 씨의 사면이나 가석방은 원칙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2009년 8월 5일 발효된 ‘한·중 수형자 이송조약’에 따르면, 국내 이송 수형자의 사면이나 가석방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제가 있다. 한국 정부가 수형자의 사면·가석방·감형 등 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중국 당국에 해당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 무분별한 사면·가석방·감형 등 조치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외교적 절차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권 씨가 한국으로 이송된 뒤 사면이나 감형 처분을 받았는지 여부도 관심사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권 씨는 중국 수감생활 중에 감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이송 당시와 그 후, 권 씨의 남은 형량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소식통은 “한국에서 권 씨에 대한 사면 또는 감형이 이뤄졌는지 여부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권 씨 국내 이송과 관련된 특혜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 시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같은 내용을 서울시 언론대응 담당자에게 질의했지만 “확인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담당자는 “시정 관련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님에게 질문 내용을 전달하기 어렵다. 알아서 취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