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빗 사건’이 25년 만에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방영됐다. 남편의 학대와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홧김에 남편의 성기를 절단한 로레나 보빗.
지난 1993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보빗 사건’을 기억하는가. ‘보빗 사건’이란 버지니아주 머내서스에 거주하는 존 웨인과 로레나 보빗 부부의 스캔들을 일컫는 것으로, 당시 남편의 학대와 성폭행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홧김에 남편의 성기를 절단했던 끔찍한 사건을 말한다. 25년 전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지난 2월, 아마존 채널에서 사건 25주년을 맞아 4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방영하면서였다.
‘로레나’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는 영화 ‘겟아웃’으로 유명한 조던 필 감독이 기획을, 유명 다큐 감독인 조슈아 로페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는 25년 전 벌어졌던 사건을 되짚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절단된 성기’ ‘부엌칼’ ‘봉합 수술’ 등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으로만 다뤄져 왔던 사건을 로레나라는 여성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로레나 역시 인터뷰에서 “그동안 사람들은 선정적인 내용에만 집중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제는 가정폭력과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때는 1993년 6월 23일. 당시 24세였던 로레나는 그날도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해병대 출신의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편인 존이 성관계를 거부하는 아내를 상대로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것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편이 잠들자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간 로레나는 순간 부엌칼에 시선이 멈추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길이 20cm의 제법 큰 칼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로레나는 손에 칼을 집어들고 침실로 곧장 직진해 이불을 들추고는 잠든 남편의 성기를 절단했다.
잘린 성기를 한 손에 움켜쥐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로레나는 그 길로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한 손에 성기를 든 채 한참을 달리던 로레나는 자갈밭을 지나던 중 창문 밖으로 성기를 집어 던졌다. 왜 던졌냐는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로레나는 “운전을 해야 하는데 한 손에 성기를 들고 있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레나는 그렇다고 영영 도망칠 생각은 아니었다. 결국 차를 멈추고 911에 전화를 걸어 직접 신고를 한 로레나는 방금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잘린 성기를 어디에 버렸는지 자백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즉시 출동했고, 새벽 4시 30분이 넘은 시간 자갈밭에서 허리를 굽힌 채 수색한 끝에 어렵사리 피투성이로 내던져진 성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수거된 성기는 소독약으로 씻어낸 후 근처 편의점에서 급조한 핫도그 상자에 얼음과 함께 담겨 인근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야말로 긴박한 순간이었다. 봉합 수술은 9시간 30분가량 걸렸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당시 소변을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봉합됐던 자신의 성기에 대해 존은 훗날 “지금은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심지어 외과 수술을 통해 성기 사이즈를 확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사건 직후 경찰에 체포된 로레나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결혼 후 4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성폭행을 비롯한 온갖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도 당당했고, 낙태를 강요하기도 했다.”
법정에서도 로레나는 동일한 주장을 했다.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당했고, 종종 폭행을 당했다고도 말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수입이 일정치 않았던 남편이 자신의 월급을 훔쳐서 쓰고 다녔다고도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이혼을 하거나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서 로레나는 남편의 협박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로레나는 법정에서 남편이 “이혼을 하든 별거를 하든 나는 너를 반드시 찾아낼 거야. 그때는 내가 원할 때마다 섹스를 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1994년 보빗 사건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아내 로레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로레나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부부는 이혼했다.
당시 법정에서의 쟁점은 과연 로레나의 행동이 정당방위였는지, 혹은 일시적인 정신이상에 따른 우발적인 범행이었는지, 그리고 부부 간에 과연 성폭행이 성립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관해 로레나의 변호인단은 남편의 끊임없는 학대로 인해 로레나가 우울증에 시달려왔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로레나의 극단적인 행동은 자기방어의 일환이었으며, 반복된 폭력과 강간으로 인한 일시적인 정신이상 증상이 혼재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존은 성폭행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오히려 사건 당일 밤 성관계를 요구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아내였다고 주장했던 그는 너무 피곤해서 성관계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도 말했다. 또한 학대를 당한 것은 오히려 자신이라고 말했던 그는 “나는 이미 이혼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날 밤도 내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화가 나서 보복심으로 내 성기를 잘라 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4년 배심원단은 일곱 시간의 숙고 끝에 로레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시적인 정신이상 상태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였음이 인정된 것이다. 당시 무죄를 선고 받았던 로레나는 버지니아 주법에 따라 최고 45일간의 보호관찰 명령을 받았고, 둘은 1995년 결혼 6년 만에 이혼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워낙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였기에 온갖 패러디가 넘쳐났고, 남성 성기 모양의 초콜릿이나 사탕, 티셔츠 등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는가 하면, 언론들 역시 매일 재판 과정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가정폭력 반대 단체와 여성 단체는 매일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로레나를 응원하기도 했다. 또한 ‘남자의 성기를 절단하다’라는 뜻인 ‘보빗(bobbitt)’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으며, ‘로레나 보빗’이라는 고유명사는 ‘성기 절단’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새로 발견된 왕털갯지렁이의 일종인 동물에도 ‘보빗 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갯지렁이 가운데 하나인 ‘보빗 웜’은 암컷이 교미 뒤에 수컷의 생식기를 물어뜯는 잔인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가 하면 남편인 존의 편에 선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이들은 성기를 잘린 남성의 분노를 대변하면서 오히려 존이 희생자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명 방송 진행자인 하워드 스턴은 자신의 쇼프로그램에 존을 초대해서 성기 봉합 수술 비용으로 25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를 모금하기도 했다. 당시 스턴은 특히 “나는 존이 아내를 강간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 로레나가 그 정도로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후 가능한 조용히 살려고 노력했던 로레나는 결혼 전 성인 ‘갈로’를 이용해 ‘로레나 갈로’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언론 인터뷰는 몇 차례 가졌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제안해온 ‘플레이보이’ 화보 촬영도 단칼에 거절했다. 로레나는 “상당한 액수인 건 맞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 즉 부부 간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7년 ‘로레나의 레드 왜건’ 단체를 설립한 로레나는 현재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008년에는 CBS 뉴스 프로그램인 ‘어얼리쇼’에 출연해서 다른 남성을 만나 오래 교제하는 중이며, 둘 사이에 딸을 낳았다는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남편 존 웨인 보빗은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존의 경우는 달랐다. 오히려 자신의 유명세를 적극 활용한 그는 산처럼 쌓인 병원비와 소송비를 감당하기 위해 ‘절단된 부위’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두 편의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제목은 각각 ‘존 웨인 보빗: 언컷’과 ‘프랑켄페니스’였다.
1994년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댄서 여성을 비롯한 다른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두 차례 기소됐는가 하면, 1999년에는 절도죄로 체포돼 보호관찰을 받기도 했다. 재혼한 후에도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수시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바텐더, 리무진 운전기사, 이삿짐센터 직원, 피자 배달부, 견인트럭 운전사 등등을 전전했던 그는 지난 2009년에는 로레나와 함께 출연했던 ‘디 인사이더’ 쇼프로그램에서 “나는 여전히 로레나를 사랑한다. 매년 밸런타인데이 때마다 카드와 꽃다발을 보내고 있다”고 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사건 발생 후 25년이 흘렀고, 이름도 바꿨지만 로레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신은 ‘로레나 보빗’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선정적인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사건을 25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데 위안을 삼고 있다. 과거에 비해 높아진 여성들의 목소리와 더불어 근래 들어 활발해진 ‘미투 운동’ 덕분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아마존 채널의 다큐 시리즈 방영에 즈음해서 로레나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당신은 로레나 보빗의 스토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보빗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로레나 본인이 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로레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90년대 수많은 풍자의 대상이 됐었다.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의 고통에 왜 웃었을까?”라고 물었다. 남편의 성기를 절단했다는 사실 이전에 왜 자신이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말하는 로레나의 바람대로 과연 ‘보빗 사건’은 재조명받을 수 있을까.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