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3년 차에 접어든 김영란법에 대한 평가가 극명히 나뉘고 있다. 사진= 추석 기간 동안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한 택배. 박은숙 기자.
김영란법의 소관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9월 보도자료를 통해 인식도 조사, 신고처리 현황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부패예방 체감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각자 식대를 계산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또한, (언론사를 제외한) 공공기관에 접수된 신고처리 현황에서도 법 시행 이후부터 2017년 말까지 총 5599건이 신고되며 나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 속 김영란법에 대한 인식은 영 딴판이었다. 김영란법을 잘 지키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국회 관계자 A 씨는 “김영란법? 지키긴 뭘 지키냐. 방금 (점심약속)도 위반했는데. 김영란법 전혀 개의치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기자가 접촉한 대부분의 관계자들 모두 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법을 대놓고 어기거나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A 씨는 “모든 만남이 업무적인 만남일 수는 없다. 선후배,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지인 등 이러한 다양한 관계가 있는데,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관례상 이어져온 ‘이번엔 내가 사고 다음 번엔 네가 사고’ 등의 통례를 금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나”라며 “또한, 법이 있지만, 법에 의해 갑을 관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갑은 의례적으로 관례를 기대하고 을은 접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변칙의 속내가 있다”며 법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기업체에 근무 중인 B 씨는 직무 상 공무원들을 자주 만나고 때로는 접대성 식사 자리도 종종 마련한다. B 씨는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는 ‘꼼수’, 일종의 편법을 기자에게 소개했다. 그는 “밥 값이 5만 원이 넘을 때가 있지 않느냐. 그럴 때는 (회사에 보고할 때) 다수의 이름을 올린다”며 “공무원들의 이름을 넣기보다는 공무원이 아닌 다른 이들의 이름을 넣기도 하고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수를 늘려 객단가를 낮추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이어 “물론 친한 사람과의 식사자리에서는 3만 원 이하의 식사를 고르는 것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대상과 저녁 시간대에 만나면 이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한우로 각각 2인분씩 주문하고 소주까지 시키면 벌써 20만 원이다. 여기에 2차로 맥주까지 마시면 20만 원은 훌쩍 넘는다”며 “골프 치러 가는 것도 김영란법에 걸린다. 카드를 가져가면 결제가 불가하니, 이럴 때는 현금을 만들어 가서 골프를 친다. 그 금액을 참석자들이 ‘뿜빠이(분배)’하고, 이후에 우리 측에서 밥을 사는 방식으로 한다”고 했다.
아울러 “김영란법은 있으나 마나다. 초기에나 긴장했지, 지금은 몸을 사리지 않는 모양이다. 적은 액수로 그 기준을 초과하면 과태료만 조금 부과되는 정도던데”라며 “그리고 정부에서도 경기 위축 때문에 단속도 잘 안 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공무원 C 씨 또한 현실을 털어놨다. C 씨는 “기업체나 공기업 회장님 만나면서 자장면 한 그릇 시켜 먹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나. 3만 원 이내로 먹자면서 그 가격대에서 칼같이 끊는 것이 정말 어렵다. 어찌어찌하다보면 (식당) 주문이 하나 더 들어가면 가격이 넘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더치페이(각자부담)’해도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는 “얼마 전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부처 고위직이랑 식사 자리였는데, 그가 마치 진급을 해서 그런지 식사 후에 5만 원씩 걷어서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더라”라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더치페이를 하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나름 공무원들은 익숙하진 않지만 적응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더라”고 말했다.
D 씨는 기업체에 근무 중이지만 국회의 생리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는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효과에 주목했다. D 씨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는 보좌진들에게 선물이 엄청 많이 들어갔는데, 법 시행 후에는 선물이 확 줄긴 줄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더더욱 줄었다고 하더라”라며 “이제는 명절 때는 선물을 잘 안 하고 대신에 평상시에 회사 기념품을 꾸준히 주는 것 같더라. 우산이나 컴퓨터 마우스 등을 주며 관계를 유지한다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D 씨는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해) 선결제를 하는 방법도 있다더라. 예산 심사 등이 있을 때 정부기관은 (식당에) 선결제를 해두고, ‘야근할 때 드십시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기관마다 다르고 기업마다 다르다. 넉넉한 곳은 호텔 가서도 밥을 사준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감자탕만 사주는 곳도 있더라”라고 말했다.
법을 기만하는 행태보다 법 적용 대상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지문 한국청렴본부 대표는 “위반 건수 증가, 과태료 부과도 잘 되고 있으며 청탁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1만 원, 2만 원 등의 소액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정작 높은 사람들에 대해선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코이카 예산으로 해외를 다녀온 것은 엄밀히 따지면 국민권익위원회가 형사고발하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내용”이라며 “정말 힘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주고받는 것들을 잡아냈어야 했는데 너무 작은 것들에 대해서만 단속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