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파이어볼러’ 키움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조상우. 2019시즌 최고 파이어볼러 후보 중 한 명이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특급 투수가 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강속구와 제구력을 겸비하면 된다. 멀게는 해태 선동열과 롯데 최동원부터 가깝게는 LA 다저스 류현진과 콜로라도 오승환까지,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은 투수들은 모두 그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행운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구속’ 면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제구력은 훈련으로 어느 정도 나아질 수 있지만, 구속은 선천적인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게 정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시속 150㎞’는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스피드의 상징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시속 150㎞ 직구를 던지거나 향후 던질 가능성이 있는 고교 투수가 프로에 입단하지 못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일단 신이 내린 선물 하나를 한쪽 손에 쥐고 출발할 수 있어서다. 구속은 최고와 최저에 순위를 매기는 야구의 공식 기록이 아니지만, 상대 타자를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수의 빠른공은 숫자 이상의 마력을 지닌다. 수많은 야구팬이 여전히 빛처럼 빠르게 날아가 포수 미트에 묵직하게 꽂히는 강속구에 열광하는 이유다.
올 시즌에는 유독 전광판에 시속 150㎞를 찍는 투수들이 늘어나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새로 온 외국인 투수부터 해외리그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온 투수, 당차게 출발한 고졸 신인까지 면면도 다양하다. 한동안 제구력의 가치에 몰두하던 KBO 리그가 다시 강속구의 매력에 사로잡히는 모양새다. 아직 날이 채 풀리지 않은 4월인데도 연일 강속구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상황이라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는 5월부터는 더 뜨거운 강속구 대결을 예감케 한다.
# 2019시즌 최고의 파이어볼러는 누구일까
KT 새 외국인 투수 라울 알칸타라와 KIA 새 외국인 투수 제이콥 터너는 입단 전부터 ‘광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알칸타라는 2017년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에서 직구 최고 시속 158㎞를 찍은 파이어볼러다. 최고도 아닌 평균 구속이 시속 154㎞에 달했을 정도다. 터너는 2016년에 최고 시속 159㎞ 직구를 뿌린 적이 있고, 디트로이트에서 뛰던 지난해에도 직구 평균 시속 153㎞를 기록했다. 둘 다 KBO 리그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스피드를 자랑한다.
터너는 실전 등판에서도 빠른공의 위력을 발휘했다.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한 4월 5일 광주 키움전에서 최고 시속 153㎞ 직구를 앞세워 삼진 9개를 잡아냈다. 포크볼 구속이 웬만한 국내 투수 직구보다 빠른 시속 145㎞로 측정됐다. 알칸타라는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 개막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걸렀다. 아직 구속을 끌어 올리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던 스프링캠프에서 일찌감치 시속 153㎞를 찍는 능력을 보여줬다.
기존 외국인 투수 가운데 가장 구속이 빠른 선수는 SK 앙헬 산체스다. 지난 시즌 직구 평균 시속 151㎞로 10개 구단 투수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평균이 아닌 최고 구속 1위는 LG 소속이던 레다메스 리즈의 손끝에서 나왔다. 무려 시속 159㎞다. 리즈는 2012년 9월 24일 인천 SK전에서 1회 조동화를 상대로 시속 162㎞짜리 공을 던진 적도 있다. 2011년 투구 추적 시스템(PTS) 도입 이후 KBO 리그 역대 최고 구속이다. 하지만 리즈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최강자가 된 산체스와 터너, 알칸타라의 강속구 3파전도 기대를 모으는 요소다.
국내 투수들 가운데선 SK의 ‘서른살 신인’ 하재훈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16순위)에 지명된 하재훈은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일본 독립리그를 두루 거치는 동안 외야수와 투수 사이를 오갔다. SK는 하재훈의 강한 어깨에 주목해 투수로 정착시켰다.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최고 시속 155㎞를 기록했고, 개막 이후에도 불펜으로 등판해 최고 시속 151㎞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가 다시 투수로 돌아온 SK 강지광도 불펜에서 최고 시속 153㎞를 찍어 이름값을 했다. 특히 3월 24일 인천 KT전에서는 마운드에서 던진 직구 6개가 모두 시속 151㎞를 넘어 화제가 됐다.
키움 마무리 투수 조상우도 다시 특유의 파워 피칭으로 마운드를 달구고 있다. 2014년 데뷔한 조상우는 KBO 리그 대표 강속구 투수 계보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다. 대전고 시절에 이미 한 차례 시속 154㎞를 던진 경험이 있고, 데뷔 첫 해 SK와의 개막전에서 전광판에 시속 156㎞를 찍어 6년 만에 ‘155㎞의 벽’을 넘은 국내 투수로 기록됐다. 정통파와 사이드암의 사이인 스리쿼터 투구폼으로도 시속 150㎞를 쉽게 넘겨 더 화제였다. 그는 지난해 5월 불미스러운 일에 휩싸여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올해 초 무혐의 처분을 받고 출전정지 징계가 해제돼 다시 전열에 복귀했다. 그와 동시에 3월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시속 156㎞ 직구를 다시 뿌려 개막 첫 주 주간 구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완벽한 복귀 신고였다.
조상우의 팀 후배인 안우진도 4월 10일 고척 KT전에서 최고 시속 150㎞를 찍으면서 서서히 구속을 끌어 올리고 있다. 안우진은 SK 에이스 김광현처럼 KBO 리그에 흔치 않은 강속구 선발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유망주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가능성을 입증했고, 올해도 출발이 좋다.
올해 KIA에 입단한 왼손 신인 투수 김기훈도 그 뒤를 이을 기대주다.지난해 국내 투수 가운데 직구 평균 구속(시속 149㎞)이 가장 빨랐던 KIA 한승혁은 스프링캠프에서 허벅지 안쪽 근육을 다쳐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복귀하기만 하면 시속 150㎞대 중반까지 던질 수 있는 투수다. LG 고우석은 꾸준히 최고 시속 150㎞대 초반, 평균 시속 140㎞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LG는 고우석에게 필승조 역할을 맡겼다.
# 과거 대표적 강속구 투수로 이름 날린 인물은?
사실 시속 150㎞를 훌쩍 넘는 스피드로 이름을 널리 알린 투수들은 이전에도 존재했다.하지만 고질적인 부상이나 제구 불안으로 재능을 크게 꽃피우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삼성 한기주도 그랬다. 그는 2006년 KIA에 입단하면서 지금까지 신인 역대 최고액으로 남아 있는 계약금 10억 원을 받았다. 그만큼 초특급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다는 의미다. 그 이유가 한기주의 구속에 있다. 비록 비공인 기록이지만, 한기주는 KBO 리그에서 역대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한국인 투수로 남아 있다. 2008년 5월 8일 광주 삼성전과 같은 달 27일 인천 SK전에서 시속 159㎞에 달하는 강속구를 뿌린 덕분이다. 한 해 전인 2007년 5월 25일 인천 SK전에서는시속 158㎞를 던지기도 했다. 수 차례 발목을 잡은 어깨와 팔꿈치 부상이 없었다면, 새 역사를 만들 수도 있었던 투수다.
SK에서 은퇴한 엄정욱도 성적 대신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역대 최초로 공식 경기에서 전광판에 ‘158㎞’를 찍은 주인공이다. 그는 2003년 4월 27일 인천 한화전, 이듬해인 2004년 6월 29일 인천 KIA전에서 각각 시속 158㎞를 던졌다. 비공식 경기에서는 더 빠른 공을 던졌다는 증거도 있다.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엄정욱이 상무 야구단과의 연습경기에서 스피드건 기준 시속 163㎞를 기록한 장면을 방영했고, 구단 관계자들은 “엄정욱이 2003년 스프링캠프에서도 시속 160㎞를 찍었다”고 증언했다. 한동안 부상으로 고생하다 복귀했던 2010년 4월에도 최고 시속 151㎞를 기록해 다른 투수들의 부러움을 샀다.
두산 최대성도 롯데 소속이던 2007년 5월 10일 인천 SK전에서 시속 158㎞를 기록해 엄정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날 최대성의 직구가 모두 155∼158㎞ 사이에 형성됐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다만 늘 제구력과 경기 운영능력이 단점으로 지적돼 최고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프로 16번째 시즌에 접어든 올해 두산에서 강속구의 위력을 앞세워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두산의 또 다른 파이어볼러 이동원은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시속 150㎞대 후반에 이르는 파워를 자랑해 화제에 오르는 투수다. 그 역시 컨트롤이 들쭉날쭉해 좀처럼 2군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1군에서 안정적으로 활약하기만 한다면, 구속 관련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는 자원이다.
한국 야구 역사상 손꼽히는 강속구를 자랑했던 박찬호. 연합뉴스
물론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한국인 투수는 KBO리그 밖에서 나왔다. 구속이 하도 빨라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던 박찬호다. LA 다저스 시절이던 1996년 구단 스피드건에 시속 161㎞를 찍었다. 고교 시절부터 이미 강속구로 이름을 날렸고, 한양대 재학 시절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았다. 전성기 때는 직구 평균 시속이 150㎞를 훌쩍 넘을 정도로 대단한 파워 피처였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임창용도 일본 야쿠르트 시절이던 2009년에 전광판 기준 최고 시속 161㎞를 찍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역대 2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구단 스피드건(시속 158㎞) 속도와 달라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어느 쪽이든 엄청난 구속인 건 확실하다. 사이드암으로도 시속 155㎞까지 던졌던 임창용은 당시 팔각도를 스리쿼터로 바꾼 뒤 구속이 더 올라갔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왼손 채프먼과 오른손 힉스, 100마일의 사나이들 시속 100마일. KBO 리그에서 사용하는 단위로 환산하면 약 160㎞다. 그야말로 ‘강속구’를 넘어 ‘광속구’로 통하는 꿈의 구속이다. 최초로 100마일 고지에 등정한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놀란 라이언으로 기록돼 있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시절인 1974년 디트로이트전에서 시속 101마일(162㎞)짜리 공을 던져 당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라이언이 100마일의 벽을 넘어선 지 27년이 지난 후, 마침내 이보다 시속 10㎞나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탄생했다.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채프먼은 신시내티 소속이던 2010년 샌디에이고전에서 전광판에 무려 시속 106마일(171㎞)이라는 스피드를 찍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구속 측정시스템에도 시속 105마일(169㎞)이 나왔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이었다. 시속 170㎞는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구속의 한계점으로 여겨지던 스피드다. 그러나 채프먼은 2010년 9월 105마일까지 올라선 데 이어 마침내 106마일까지 구속을 끌어 올리면서 그 벽을 넘었다. 채프먼 이전에는 디트로이트 소속이던 조엘 주마야가 2007년 시속 104마일(167㎞)의 강속구를 뿌린 게 최고 구속이었다. 그러나 주마야는 몸에 무리가 가는 투구 폼 탓에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리다 잇단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12년 은퇴했다. 반면 채프먼은 꾸준히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계속 던졌다. 2014년에는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00마일로 측정돼, ‘최고’가 아닌 ‘평균’ 구속 100마일을 넘긴 최초의 투수로 기록됐다. 또 양키스로 이적한 뒤인 2015년 7월에는 한 경기 투구수 18개 가운데 15개가 100마일(161㎞)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들조차 어려움을 호소해야 하는 수준이다. 당시 채프먼의 공을 받은 양키스 포수 브라이언 매켄은 “일단 투수의 구속이 세 자릿수 마일이 되면, 공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포수는 일단 미트 안에 공이 들어오기만을 바라게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스탯 캐스트(타구와 투구 정보 기록 시스템)’ 최고 구속 순위에는 ‘채프먼 필터’라는 게 생겼다. 채프먼의 구속이 상위 50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채프먼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의 구속을 찾아보고 싶다면, 이 필터를 사용해 채프먼의 기록을 걸러내야 한다. 올해는 세인트루이스의 젊은 소방수 조던 힉스가 채프먼의 뒤를 이을 ‘역대급’ 파이어볼러로 인정받고 있다. 채프먼이 기록한 역대 빅리그 최고 구속에 도전할 만한 첫 번째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힉스는 변종 직구인 싱킹패스트볼(싱커) 구속이 100마일에 달할 정도로 구속이 빠르다. 올 시즌 최고 구속 1~3위에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지난 3월 필라델피아와 시범경기에서 최고 시속 105마일을 기록한 것은 물론, 한 이닝에 삼진 4개(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포함)를 잡아내는 진기록을 보태 화제를 모았다. 이날 던진 공 11개 가운데 11개가 100마일을 넘긴 것으로 측정됐다. 좌완인 채프먼과 달리 오른손 투수라 ‘우완 채프먼’으로 통한다. 4월 8일 샌디에이고전에서 매니 마차도에게 던진 싱커는 스피드건에 시속 102마일(164㎞)까지 찍었다. 체인지업 시속이 약 90마일(146㎞)에 달하고, 슬라이더도 89마일(144㎞)에 이르는 엄청난 파워 피처다. 과거에는 유일한 무기인 강속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투수였지만, 올해는 웬만한 투수의 직구보다 빠른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이용해 타이밍을 빼앗기 시작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다 갑자기 몸쪽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탓에 왼손 타자들은 연신 무릎을 꿇으며 헛스윙을 하기 일쑤다. 사실 10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대부분 보직이 채프먼이나 힉스와 같은 불펜투수다. 100개가 넘는 공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는 체력 안배를 위해 공 하나마다 전력을 다하기 어려워서다. 선발투수로 활약하면서도 102마일(164㎞)의 광속구를 뿌린 랜디 존슨이 ‘괴물’로 불렸던 이유다. 로저 클레멘스, 바톨로 콜론, C.C. 사바시아, 케리 우드 등도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졌던 선발투수들이다. 100마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리는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는 현역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가운데 가장 공이 빠른 투수로 꼽힌다. 신더가드가 등장했을 때 ESPN은 “마치 비디오 게임의 괴물투수가 현실에 등장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