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는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고성준 기자
대한항공은 고 조양호 회장이 이날 새벽 0시 1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측은 “조 회장이 폐질환으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대한항공 주총에서의 사내이사직 박탈 결과 이후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요양 목적으로 LA에 머물러왔다.
조 회장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이 그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이사장과 차녀 조 전 전무는 미국에서 병간호 중이었고, 조원태 사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주말에 급히 연락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에 한진그룹 삼남매의 후계구도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곳은 한진칼이다. 조 회장은 한진칼 최대주주로 지분 17.84%(1055만 3258주)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조현아 전 사장은 2.34%, 조원태 사장 2.31%, 조현민 전 전무 2.30%로 삼남매의 지분율은 엇비슷하다. 그러나 삼남매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2대주주인 KCGI(강성부펀드) 지분 13.47%에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조 회장의 지분 승계 향방에 따라 후계구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의 입장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직원들은 조양호 회장의 병세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조양호 회장의 지분 상속비율 등 유언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장례가 끝나야 나오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장남인 조원태 대표가 대한항공 등기이사 대표직에 있으니 그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재계에서도 한진그룹이 향후 조 회장의 외아들인 조원태 사장 체제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현재 조 사장만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는 ‘땅콩회항’과 ‘물컵갑질’, ‘밀수입’ 혐의 등이 논란이 돼 사내 모든 직함에서 물러났다.
회사 경영에 먼저 참여하고 두각을 나타냈던 이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다.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하며 처음 그룹에 발을 들였고, 2006년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본부장(상무)을 맡으며 3년 만에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직을 달았다.
조원태 사장이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한 것은 2003년으로 누나인 조 전 부사장보다 4년 늦다. 조 사장은 2007년에야 그룹 IT 계열사인 유니컨버스의 대표로 선임되면서 경영책임을 맡기 시작했고, 이듬해 한진 등기이사에 올랐다.
당초 한진그룹 승계구도는 조원태 사장이 한진그룹 일부와 대한항공을, 조현아 전 부사장이 호텔사업을, 조현민 전 전무가 진에어를 맡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다. 그럼에도 재계 한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과거부터 한진그룹 경영에 대한 의욕을 숨기지 않았던 만큼 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에 따른 경영승계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내부적인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경영권을 두고 남매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앞서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장자·아들 승계를 원칙으로 삼았다. 조중훈 회장은 조양호·남호·수호·정호 4형제를 뒀다. 그럼에도 한진그룹은 과거 조양호 회장이 취임하는 과정에서 4형제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특히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선친의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을,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로 계열분리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여러 추정이 나오고 있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사장 체제로 승계되는 것을 동의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12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는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고성준 기자
이 관계자는 또 “조현아 전 부사장이나 조현민 전 전무는 현재 여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당분간 국민정서상 경영 전면에 나서기 어려우며 상속지분이 있는 이명희 전 이사장이 아들 조 사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며 “따라서 조원태 사장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진가 삼남매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임원은 “앞서 한진 2세 경영 때 분쟁뿐 아니라 현대·두산·금호 등 다른 대기업들도 형제 간 계열분리를 하고도 분쟁이 있었다”며 “그룹 경영에 대한 욕심과 갈등의 씨앗이 커져 다툼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시신은 대한항공 KE012편을 통해 지난 12일 새벽 5시 5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조원태 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 역시 이날 오전 5시쯤 검은색 상복을 입고 제2터미널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조 사장은 ‘조 회장의 유언’을 묻는 기자들에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의 유언처럼 한진그룹 일가가 외부의 여러 도전 속에 힘을 모아 그룹 경영 안정화를 이끌 수 있을지 ‘포스트 조양호’ 시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행동주의’ 강성부펀드 어떤 곳 현재 한진칼의 2대 주주는 그레이스홀딩스로 지분율 13.47%(804만 2835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국내 행동주의펀드를 표방하는 KCGI(강성부펀드) 산하 투자목적회사다. KCGI가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과 대한항공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KCGI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 1세대로 평가받는 크레딧 애널리스트 출신 강성부 대표가 지난해 7월 설립했다. 저평가된 기업의 기업가치를 올려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KCGI는 첫 타깃으로 한진칼을 선택했다. 실제 KCGI는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면서 “장래에 회사 업무 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하면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와 방법에 따라 회사 경영목적에 부합하도록 관련 행위들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지난 3월 29일 열린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KCGI는 2대주주로서 사측이 내놓은 ‘석태수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 등에 반대의사를 표하면서 경영활동에 개입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한진칼 1대주주인 조양호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 자녀들의 지분 승계 문제, 상속세 등의 문제로 KCGI가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동주의펀드 KCGI가 어떤 역할을 할지 향후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