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진행한 서울역 인근 개발 프로젝트가 이래저래 문제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서울로 7017과 서울역 일대 활성화 계획 결과가 좋지 않은 까닭이다. 2017년 문을 연 ‘서울로 7017’은 서울역을 기준으로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을 잇는 연결고리다. 차가 다니던 고가도로가 그 전신이다. 이 고가도로가 수명을 다하는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가도로를 재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신 보행로와 정원을 합친 공중정원을 만들었다. 2014년 지방 선거 당시 박 시장의 당선 공약이기도 했다.
서울로가 표시가 붙은 담장. 최희주 기자
서울로 개장 이후 중림로와 청파로 일대의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됐다. 서울시는 같은해 ‘중림동 활성계획’을 발표했다. 시 자체 비용만 178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이른바 서부 대개발이다. 박 시장은 서부 대개발 사업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중림동 등 서울역 서부지역이 동부지역에 비해 낙후된 까닭이다. 중림동 활성 계획 발표 이후 중림동은 ‘중리단길’로 불리며 도시재생사업의 기대주가 됐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상권인 ‘경리단길’에서 따온 별칭이었다.
# 서울로 7017 방문객 지난해 절반 수준
박 시장은 서울역 개발 사업을 ‘서부 대개발’이라고 불렀다. 도심의 활력이 미치지 못했던 서부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역 전체가 어마어마한 변화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변화는 없었다. 원주민이 운영했던 가게 일부가 프랜차이즈 상점으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중림로 상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동네 터줏대감들이 임대료 압박에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후 임대료는 날이 갈수록 오르는데 손님이라고는 인근 회사원들이 전부라고 한다. 상권 부활을 기대했던 토종 상인들은 떠나고 개발 호황에 밀려들어온 프랜차이즈 식당들만 줄지어 입점해있다.
동네 상인 A 씨는 “뒷골목에서 장사해서 망정이지 큰 길에 있었다간 짐 싸서 나갈 뻔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임대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뚝딱뚝딱’ 거리더니 고깃집이며 카페며 죄다 프랜차이즈가 들어왔다. 동네 특색은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서울시가 기대한 것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한 상권 부활이었지만 중림동을 찾는 발길은 오히려 줄었다. 서울로 7017의 방문객 숫자가 눈에 띄게 줄면서부터다.
2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서울로 7017 방문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일 평균 방문객은 1만 6010명으로 2017년 3만 2954명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그쳤다. 서울로 방문객은 2017년 5월 개장 당시 7만 7498명, 6월 4만 9506명이라는 반짝 기록을 올린 뒤 2만 명 안팎을 맴돌았다. 개장효과가 두 달도 넘기지 못한 셈이다.
문을 닫은 가게들. 최희주 기자
4월 16일 찾은 중림로 길목에는 새 간판을 달고 ‘임대’ 딱지를 붙인 가게가 여럿이었다. 그나마 영업 중인 가게도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주말 손님보다 평일 손님이 더 많은 까닭이다.
임대 딱지를 붙인 가게 옆에 새롭게 가게를 낸 B 씨는 “옆 가게는 빈 지 꽤 됐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전부터 비어 있었다. 임대료 때문인 것 같다.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여기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더라”고 했다.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대폭 오르고 이를 버티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하나둘 가게문을 닫고 그 자리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의 입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경리단길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대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에 따른 임대료 상승에 대한 대책은 세워두지 않았다. 서울시 공공재생계획팀 관계자는 “중림동 임대료 상승과 관련해 시 차원에서 따로 대비책을 마련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기자가 ‘임대료 상승에 대한 민원이 있다’고 하자 “임대료 상승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역 발전의 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볼 수준은 아니지만 추후 건물주와의 상생협약 등을 고려해보겠다. 아직까지 임대료가 그렇게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로 조성 이후 2017년 11월까지 임대료 및 땅값이 가장 크게 상승한 지역은 중림동이다.
그런데 중림동은 일반적인 젠트리피케이션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상권 자체가 활성화되지도 못한 채 젠트리피테이션이 발생한 것. 서울시의 대대적인 개발계획이 임대료 상승만 이끌어 냈을 뿐 상권은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인근 아파트만 호황
상가 임대료만 오른 게 아니다. 아파트 값도 대폭 상승했다. 2017년 중림동 일대가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중림동 인근의 S 아파트의 경우 최근 몇 년 새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매매가는 2016년 전용면적 84.93㎡ 기준 5억 중후반이었다. 서울시 개발 사업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5억 원대를 웃돌던 아파트 가격은 2017년 6억 원 후반대로 뛰더니 2018년에는 9억 원대를 찍었다. 가장 최근 거래가는 10억 1000만 원. 올 1월에 나온 매물이다.
중림동 C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서울역 주변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집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 집값이 전반적으로 오르긴 했지만 대개 새 아파트 한정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19년 된 헌 아파트도 올랐다. 강남도 아니고 강북에서 헌 아파트가 10억 원을 넘는 게 확실히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한 대비책 대신 앞으로의 도시재생사업 계획만 늘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젊은 층 거주자가 많은 아파트, 오피스텔 거주민들이 도시재생사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9년에는 골목길 프로젝트를 통해 특색 있는 골목길을 만들어 문화 역사적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