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서울 금호아시아나그룹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임준선 기자
지난 15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 매각 의사를 전달하며 이를 포함한 수정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수정 자구계획의 핵심은 아시아나항공의 즉각적인 매각이다. 매각 대상은 금호산업 등이 보유한 지분 33.49%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구주매각 및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로 이뤄진다. 자회사의 별도 매각은 금지되며, 구주에 대한 동반매각요청(Drag-along) 권리, 아시아나항공 상표권 확보가 부대조건으로 붙었다.
채권단은 이날 오후 개최한 회의에서 금호아시아나가 제출한 수정 자구계획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방안을 함께 모색하자”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전 회장은 지난 16일 사내게시판을 통해 “이 결정으로 임직원 여러분께서 받을 충격과 혼란을 생각하면, 그간 그룹을 이끌어왔던 저로서는 참으로 면목 없고 민망한 마음”이라며 “이 결정이 지금 회사가 처한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의 동의와 혜량을 구한다”고 전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자 재계와 인수합병(M&A)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국내 2위 항공사를 어느 기업이 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계와 시장에서는 SK와 한화, CJ, 애경 등이 인수전에 참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린동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SK그룹은 가장 유력한 아시아나항공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SK그룹은 인수 검토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일요신문DB
하지만 시장에서는 SK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SK는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수펙스추구협의회 글로벌사업개발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항공업 진출을 위한 준비 단계 아니냐고 보고 있다.
SK그룹의 자금력은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정유, 물류, 호텔, 통신 등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항공업 진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화그룹도 유력한 인수 후보군에 올랐다. 한화는 지난해 신규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에 재무적투자자로 잠깐 참여하는 등 항공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2015년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을 인수해 항공기 엔진 부품 등을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설립한 후 지난해 10월 한화 기계부문 항공사업을 인수했다. 한화 항공사업은 항공기 구동·유압·연료 분야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 중 착륙장치 분야 등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LCC업계 1위 제주항공을 운영하는 애경그룹과 물류업을 하고 있는 CJ그룹, 면세점·유통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7년 티웨이항공 인수를 추진하다가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 역시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주가가 급등하자 금호의 매각 지분의 현재 시장 가치는 단숨에 5000억 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계열사 지분과 경영권 프리미엄이 추가된다. 재계와 금융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최소 1조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비록 표면적인 인수 가격과 조건은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받지만 기업들이 외면하는 까닭은 아시아나항공을 품기에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7조 979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649%에 달한다. 총 차입금이 3조 4400억 원이고,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도 1조 3200억 원이다.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를 인식한 듯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실제 부채는 약 3조 7000억 원 수준이며, 모든 부채를 다 갚아야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채를 인수해 신주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로 자금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매년 2조 원이 넘는 항공기 리스 비용 등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져 기업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를 리스해서 이용하는데 이 비용이 모두 부채로 잡히다보니 부채비율이 더 높아진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기업은 이 때문에 부채비율이 상승할 것이고 그럼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도 있고, 다른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미워도 형제?” 아시아나항공, 금호석화 박찬구에게 갈까 재계 일각에서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인수전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2009년 이른바 ‘금호가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후 두 사람은 전혀 교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형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재계 한 관계자는 “제사 때도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피할 정도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박삼구 전 회장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다른 기업보다 친동생에게 넘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현재 아시아나항공 지분 11.98%(2459만 3400주)를 보유해 금호산업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라 있는 것도 금호석유화학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금호석유화학이 지난해 매출 5조 5849억 원, 영업이익 5546억 원을 기록하는 등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한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지도, 계획하지도 않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박 회장은 박 전 회장과 상반되게 평소 내실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을 보여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형제의 난도 박 회장이 박 전 회장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무리수라며 반대하다 불거졌다. 박 회장의 부인에도 재계에서는 인수 후보 기업들이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에 전략적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금호석화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기업들이 손을 내미는 것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무리를 하면서까지 다른 기업을 도울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매각할 생각이 없고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