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K리그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순주 아나운서. 고성준 기자
[일요신문] 시즌이 한창 진행중인 하나원큐 K리그 2019는 지난해와 비교해 다소 변화가 있었다. 그중 일부는 지난 시즌 중계를 도맡던 방송사 채널이 사라져 또 다른 채널이 중계방송에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팬들은 새로운 얼굴들을 맞이하게 됐다. 캐스터, 해설자 등 새로운 인물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하지만 한 명만은 4년째 매 라운드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중계방송사가 바뀌었음에도 K리그 현장에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정순주 아나운서다.
# 스포츠 아나운서계 ‘저니맨’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순주 아나운서는 스스로를 ‘스포츠 아나운서계의 저니맨’이라고 소개했다. 저니맨은 스포츠에서 다수의 소속팀을 옮겨 다닌 선수를 뜻한다. 2012년 XTM에서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데뷔한 정순주는 SBS SPORTS, MBC SPORTS+, JTBC3 FOX SPORTS 등 다수의 스포츠 채널에 얼굴을 비쳤다. 그는 “이번 ‘이적’을 많은 분들이 주목해 주셨지만 저에게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스스로를 ‘아나운서계 저니맨’이라고 소개했다. 고성준 기자
‘축구 이미지가 강하다’는 방송가의 이야기처럼 그는 4시즌 째 K리그 현장에 나서고 있다. 스포츠 아나운서의 신분으로 K리그에서 4년간의 활동 기간이면 ‘최장기’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 과정 속에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제작하는 프리뷰쇼를 진행하기도 했고, K리그 웹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는 K리그를 ‘터닝 포인트’라고 말했다.
“쑥스러운 말이지만 어느 순간 K리그 현장에 ‘정순주’라는 브랜드가 작게나마 생긴 것 같다(웃음). 나에겐 K리그가 블루오션이었다. TV 채널에서 약간은 소외받는 종목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인정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만족감도 들었고, 이제는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는 K리그와의 만남을 ‘운명 같았다’고 표현했다. “MBC 시절 축구를 담당하던 피디님이 갑작스레 나를 찍으셨다. 가리는 것 없고 좀 나서는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 정말 연기도 시키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놀듯이 즐겁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야외에서 뛰어다니는 나를 ‘불쌍하다’고도 하지만...”이라며 웃었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다른 것 보다 스포츠 아나운서들을 그 직업 자체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진=정순주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정순주는 방송 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3월 그는 외모를 지적하는 동시에 ‘여자는 병풍’이라 주장하는 악플을 SNS에 공개하며 “내용으로 더 노력하는 모습 보이겠다. 어떻게든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 최선을 다하는 아나운서들의 노력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는 “8년간 마음속으로만 되뇌다 한 번 쯤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다”면서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을 줄 몰랐다(웃음). 기사화되기도 했고, 한 방송에서는 그걸 주제로 출연 섭외도 왔다”고 말했다.
단순히 외모를 비하하고 지적하는 댓글이었다면 쉽게 지나쳤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 활동기간에 ‘단단해진 마음‘을 자랑하면서도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많은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같은 마음이다. 방송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할 때가 많다. 단순히 ‘병풍’으로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들 ‘알맹이’를 발전시키려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그 직업 자체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예쁘다’는 말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크게 웃었다.
그렇다면 정 아나운서는 스스로 알맹이를 얼마나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채우고 싶은 부분으로 ‘전술’을 꼽았다. 그는 “축구를 맡고 있기에 지금은 축구의 전술적 부분에 대해 내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선수의 히스토리를 이끌어 내고 소개하는 역할에 집중해 왔다. 그런 부분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전술에 대해 짚어내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 그리고 아직 해외축구 분야도 부족하다”라며 스스로를 지적했다.
# ‘방송인 정순주’의 미래
정 아나운서는 “중계석에서 캐스터 역할을 제안 받은 적도 있다”면서 “조금 부담이 따르지만 공부하고 노력하면 캐스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자연스레 ‘방송인 정순주’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해 왔다. 중계권, 계약 등의 문제로 계획적인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그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이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다. 진행자 역할을 맡아야 할지, 스포츠 전문가로 나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올 시즌이 그런 부분을 결정할 시기가 될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지만 보시는 분들이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을 용납해 주실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K리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성준 기자
한편으론 극적인 변화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재도 때로는 해외축구, 기타 스포츠를 다루는 방송을 진행하고 경제 전문 채널에도 출연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방송을 할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듯이 당장 몇 개월 뒤를 알 수 없는 환경이 이제는 익숙해 졌다. 쉬는 날이 생기면 여행을 훌쩍 떠나기도 한다. 극단 적인 예시지만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웃음). 단, 결혼해도 일을 할 수 있으면 계속 하고 싶다. 특히 K리그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끝까지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정순주가 인천 유망주 이정빈과 함께 눈물을 흘린 이유 스포츠 현장을 누비는 정순주 아나운서가 맡은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경기를 전후로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미드필더 이정빈과 정순주 아나운서가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인터뷰 장면. 사진=K리그 유튜브 채널 캡처 지난해 11월 강원 FC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는 후반 막판 결승골을 기록한 이정빈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함께 눈물을 쏟아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는 “그 때 주책이라는 생각도 했다”고 웃으며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시즌이 끝나가면서 느끼는 가슴 벅참과 함께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하던 순간이었다. 이정빈 선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다음 시즌 중계권 문제가 있어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감정이 올라간 상황에서 선수가 눈물을 흘리니까 나도 울컥했다”고 회상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이제 활동한지 8년차가 됐다. 많은 선수들을 곁에서 지켜 봤다. 물론 설렁설렁하는 선수도 있지만 정말 90%에 가까운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을 한다. 하루 일과가 온통 운동하고 머릿속에도 그 생각뿐이다. 특히 신인 선수들은 출전 한 번이 더 절실하다. 어떤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하는 장면이 꿈에도 나온다고 하더라.” 절실함을 갖고 뛰는 선수들을 볼 때면 때론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심정이 떠오르곤 한다. 그는 “선수가 경기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듯이 아나운서들도 생방송에서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1~2년차 신인 아나운서들에게 더욱 혹독하다. 실제 초년생 때 함께 방송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