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의 운명을 가를 시한폭탄이 거대 양당을 옥죄고 있다. 시한폭탄의 양대 축은 부산·울산·경남(PK)과 수도권이다. 전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자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이 독배를 마다하지 않고 깃발을 꽂는 자만이 최후 승자가 된다. 여당의 작전명은 ‘PK 본색을 통한 영남 보수 허물기’다. 야당의 작전명은 ‘중도층 확장 통한 수도권 거점 확보’다. 실패 땐 플랜B는 없다. 지는 쪽은 정계개편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PK는 민주당 핵심 요충지다. 이곳은 영·호남의 민주화 세력을 잇는 남부민주벨트의 마지막 관문이다. 또한 영남 보수의 분열을 꾀하는 전진기지다.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민주당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문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까지 당선시키면서 그야말로 파죽지세를 보였다. 그러나 김 지사가 드루킹 댓글공모 의혹으로 법정구속, PK 지지선이 무너졌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 ‘조국 띄우기’에 나선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경수 위기가 조국 등판론’에 불을 지핀 셈이다. 여권 한 관계자도 “21대 총선의 최대 승부처는 PK”라고 말했다.
여권 승리 방정식의 키워드는 ‘PK 10석’이다. 2016년 4·13 총선 기준으로 PK 의석수는 40석(부산 18·경남 16석·울산 6석)이다. 민주당의 PK 점유율 ‘25% 달성’ 여부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해찬 체제의 운명이 갈린다는 얘기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21대 총선 PK 목표치를 과반(부산 10석·경남 8석·울산 3석) 확보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4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원외 지역위원장 협의회 총회에서 “240석 (승리를) 목표로 해서 내년 총선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두 번의 총선에서 PK 의석 점유율과 여권 총선 승리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입증됐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PK에서 6석(부산 4석·경남 2석)을 차지했다. 애초 기대했던 두 자릿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이 얻었던 PK 3석(부산 2·경남 1)과 비교하면 두 배 증가했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152석)에 참패했던 민주통합당(127석)은 4년 뒤 제1당(민주당 123석 vs 새누리당 122석)으로 올라섰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PK 지역 득표율도 울산을 제외하면 40% 선에 근접했다. 민주당은 부산 38.4%, 경남 31.5%, 울산 16.5% 등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새누리당은 세 지역에서 차례로 47.8%, 48.5%, 38.5%를 올렸다.
눈에 띄는 것은 민주당의 부산·경남 득표율 상승 추세다. 민주당은 19대 총선 당시 부산 31.8%, 경남 25.6%에 그쳤다. 두 지역에서 6∼7%포인트가량 상승한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이 약진한 울산에서만 8.7%포인트(25.2%→16.5%) 감소했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당시 세 지역에서 51.3%, 53.8%, 49.5%의 득표율을 올렸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1년여 앞둔 민주당의 현 상황은 ‘잿빛’이다. 영남권은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 하락을 이끈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 중 한 곳이다. ‘김경수 구속’ 이후 치른 4·3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빈손’으로 전락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여당의 영남권 민심이 무너졌다는 것을 확인해준 선거”라고 잘라 말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매월 조사하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조사에서 오거돈 부산시장과 송철호 울산시장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여권 내부에선 ‘PK 험지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PK 위기론에 시달리는 여권이 꺼내든 카드는 ‘조국 차출론’이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관계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대통령)·문재인(민정수석)’과 판박이다. 이는 2인자가 없는 친문계가 ‘김경수 법정구속’ 이후 대체재로 조국 카드를 택했다는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조국 차출론을 공식화한 이는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다. 전 의원은 ‘조국 카드’와 관련해 “공식·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및 당 지도부에 뜻을 전달하고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본인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같은 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경쟁력 있는 인사들이 나오는 것은 당으로서 환영할 일”이라며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조국 차출론이 현실화할지는 물음표다. 그간 조 수석은 그간 민정수석 임기 종료 후 학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총선 출마에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사견을 전제로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당 승부처는 수도권이다. 2016년 기준으로 수도권은 122석(서울 49석·경기 60석·인천 13석)이다. 전체 지역구 254석 중 절반에 육박한다. 수도권 저지선 형성 없이는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당의 현실적인 수도권 저지선은 ‘40+알파(α)’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수도권 의석수는 35석(서울 12석·경기 19석·인천 4석)에 불과했다. 의석 점유율은 28.7%에 불과했다.
한국당 한 의원은 “옥새 파동까지 일으킨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의 갈등이 부메랑으로 다가오면서 참패했다”고 말했다. 총선 패배는 ‘국정농단 게이트→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보수진영은 궤멸 상태에 빠졌다. 반면 민주당은 당시 수도권에서 82석(서울 35석·경기 40석·인천 7석)을 거머쥐었다. 의석 점유율은 67%에 달했다.
2012년 4·11 총선 땐 새누리당이 43석(서울 16석·경기 21석·인천 6석)을 차지했다. 20대 총선보다 8석이 많았다. 의석 점유율은 35.2%였다. 민주당은 65석(서울 30석·경기 29석·인천 6석)에 불과, 20대 총선보다 17석이 적었다. 의석수 점유율은 53.3%로 집계됐다. 한국당 총선 승리 셈법의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당의 수도권 점유율을 30% 중반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당 점유율을 50%대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한다면, 한국당도 한 번 해볼 만한 승부라는 얘기다.
한국당 차기와 차차기 주자들도 총선 출마 채비를 갖추면서 ‘별들의 전쟁’을 예고했다.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는 황교안 대표의 출마가 유력할 전망이다. 보수진영 대권 잠룡 1순위인 황 대표가 ’선당후사‘ 자세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차기 대권에도 청신호가 켜진다.
한국당 ‘자객 공천 1호’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 광진을에 출격, ‘추미애(민주당 의원) 잡기’에 나설 예정이다. 서울 중구성동을에는 김용태 의원의 출마설이 돈다. 문재인 정부 신주류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곳에 공천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맞짱 승부를 펼치겠다는 의도다. 당 비상대책위원회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12월 당협위원장직을 벗어버리는 ‘셀프 청산’을 한 바 있다. ‘선당후사’ 명분으로 21대 총선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임 전 실장이 서울 종로 대신 중구성동을로 턴한다면, 정치 1번지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격 출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당의 고민은 ‘강경 보수 기득권’이다. 한국당 전·현직 의원들은 세월호 5주기인 4월 1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막말을 올리면서 후폭풍을 맞았다. 차명진 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정진석 의원은 “이제 징글징글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서둘러 당 징계 논의에 들어갔다. 예전과는 다른 한국당의 모습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당은 복당파인 김세연 의원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했다. 향후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필두로 한 보수대통합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된다.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에는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과 이태용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을 각각 임명했다. 당 외연을 확장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보수대통합이나 혁신에 버금가는 공천개혁, 새 인물 영입 등이 없이는 총선 승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도 “(차기 총선에서) 한국당이 중도층을 포섭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 절하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