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미지급했다며 낸 소송의 첫 재판이 열렸다. 이날 가입자 측은 ‘약관의 범위’를 두고 삼성생명 측과 공방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이날 보험 가입자 56명이 삼성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5억 2150여 만 원의 보험금 소송 1차 변론을 진행했다.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시작부터 곤경에 처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본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삼성생명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한 A 씨 등은 매달 받는 연금 수령액이 당초 계약보다 적다며 이 소송을 제기했다. 즉시연금이란 보험을 가입할 때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납입하면 그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을 말한다. A 씨 등에게 지급된 보험금이 적었던 이유는 삼성생명이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내용을 근거로 사업비 등을 떼고 연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에 A 씨 등은 실제로 받은 약관에는 사업비 등 일정 금액을 떼고 지급한다는 내용이 없었다고 맞섰다. 삼성생명 측이 근거로 내세운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는 약관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반면 삼성생명 측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 역시 약관에 포함된다며 지급한 보험금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가입자들의 주장에 다소 힘을 싣는 듯한 모습이다. 재판부는 “1차적으로 삼성생명 측이 약관 등을 정할 때 명확한 계산식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인 것 같다”며 “매월 지급하는 연금 계산식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생명 측 대리인은 “이 사건은 만기형 보험상품인 상속 종신형으로 가입에 필요한 배경·위험 부담 등을 빼고 나머지에 대해 공시이율에 따라 지급하게 돼 있다”면서 “최초에 보험 가입자들한테도 매월 어느 정도의 보험금이 나간다고 설명했고, 공시이율이 낮아져도 이 정도는 보장된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금 계산식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여러 수식이 있어서 그걸 약관에 고스란히 다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며 “일반적으로 다른 보험에서도 산출방법을 넣는 약관은 제가 알기로 없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일반적 공제는 인정하지만 이 사건에서의 공제는 계약 당사자가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약관에 나타나야 하는데 계약 당사자들이 알 수 없었다”며 “보험에 가입할 때 내가 얼마나 보험료를 내면 언제,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는지는 중요한 것인데 명시 자체가 안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애초 상품을 만들고 판매를 시작할 때 얼마든지 약관을 보험계약자가 알 수 있게 했어야 한다”면서 “현재 이와 관련된 10건의 소송을 준비 중인데 이게 첫 번째 소송이다. 일부 보험사에서는 지급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우군인 줄 알았던 한화생명의 ‘배신’도 삼성생명에는 아픈 대목이다. 지난 17일에는 2번타자인 한화생명 즉시연금 재판이 열렸는데, 이날 재판에서 한화생명은 “약관과 상품이 보험사별로 다른 만큼 재판부가 회사별로 별도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삼성생명과 우리는 다른 사안”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한화생명은 “현재 여러 보험사별로 즉시연금에 관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보험사마다 다 똑같게 보는 것은 이 사건을 파악하는 데 있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보험사마다 약관내용, 상품이 달라 차이가 있는 만큼 이 사건을 판단할 때 보험사 차이를 고려해 판단과 심리를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화생명은 특히 삼성생명의 경우 환급형 단독상품만 있는 반면 한화생명은 환급형 이외에도 종신형 등으로 상품이 나눠져 있고 약관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품 차이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한화생명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금융권은 재판부가 자칫 사건을 병합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에 ‘미운털’이 박힌 삼성과 한배를 타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 겉으로 드러난 소송 당사자는 소비자들이지만 사실상 금융당국과 법정대결로 봐야 한다”면서 “삼성생명의 경우 업계 1위인 데다 금액도 가장 많고, 이번 사건을 대표한다는 상징성까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