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이 종료됐다. 하지만 석방되지는 못했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국정농단 사건과는 별개로 2016년 새누리당 공천 과정 개입 혐의로 지난해 11월, 징역 2년형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 징역 2년의 기결수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신분이 바뀐 첫날인 17일,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에 ‘형 집행정지’, 한마디로 석방을 신청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며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제 신청서는 검찰 손에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은 조만간 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의 형 집행정지 사유가 합당한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석방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16년 서울 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당시의 유영하 변호사. 고성준 기자
유영하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지난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래 경추 및 요추의 디스크 증세 및 경추부 척수관 협착으로 인해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수회에 걸쳐 통증 완화 치료를 받았으나 전혀 호전이 되지 않았다”며 “지난 2018년 8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경추부 척수관 협착 진단을 받은 후, 보석청구 등의 신청을 하겠다고 건의 드렸으나 박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다”고 적었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
현행 형사소송법 471조에 따르면 수형자 집행정지 사유는 ▼형 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때 ▼연령이 70세 이상인 때 ▼임신 후 6개월 이상인 때 ▼출산 후 60일을 경과하지 않은 때 ▼직계존속이 연령 70세 이상 또는 중병이나 장애인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직계비속이 유년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기준을 놓고 검찰(서울중앙지검)은 위원장 1명을 비롯해 5~10명 규모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형 집행정지 요건 부합 여부를 판단한다.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공판부를 관할하는 박찬호 2차장 검사가 맡고, 위원들은 학계와 법조계, 의료계,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위원회 심의 결과를 토대로 서울중앙지검장인 윤석열 검사장이 형 집행정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 검찰 반응은? “건강만 놓고 다투기 어려워”
검사들의 예상은 어떨까. ‘언젠가 석방되기는 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첫 반응이다. 정치적인 사건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석방으로 국민적 갈등 해소를 얻어내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박 전 대통령 측의 요구 사항인 ‘건강상태’도 형 집행정지 기준에 해당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보통 법조계에서는 이 요건이 암 말기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정상적인 수형 생활이 불가능할 때 적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2013년 ‘이대생 청부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영남제분 회장의 전 부인 윤 아무개 씨가 유방암 등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받고 호화 병실생활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은 뒤 그 기준은 더 강화됐다.
지난 2016년 형 집행정지를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그는 신경근육계 유전성 희귀 질환 등으로 3개월의 형 집행정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의 병세를 감안하면 형 집행 시 현저히 건강을 해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재벌 봐주기’ 논란이 나올까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나와 귀가할 당시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 사진공동취재단
검찰 관계자는 “형 집행정지는 정치적 대사면과 완전 다른 문제”라며 “결정 주체가 검찰이지 않냐. 검찰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면해주는 것은 법이라는 대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건강상태는 보통 급한 수술이 필요하거나 ‘죽을 정도’가 아니면 형 집행정지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그렇다면 왜 ‘석방’ 얘기 나올까
하지만 검사들은 ‘향후 사면될 가능성은 높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보석이 결정돼 풀려나오자 박근혜 전 대통령도 풀려나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 정당과 매체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는 평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차장검사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이슈로 시작된 사건이기 때문에 마지막도 정치적으로 푸는 게 자연스럽고 맞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을 수사하면서도 사면해줬듯, 이번 정권 안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사면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법조인도 “정권 출범할 때부터 정권 3~4년 차쯤에, 국민 대통합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해 줄 것이라는 전망이 돌지 않았냐”며 “지금 검찰 손으로 풀어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 문재인 정부의 손으로 풀어줘야 한다, 통합의 제스처는 정권의 몫이다. 지금은 정권 만 2년이지 않냐. 형 집행정지보다는 사면에 무게가 쏠리지만 지금은 이르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