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전경. 고성준 기자
사정기관은 정보 수집 및 생산 등을 위해 ‘IO (Intelligence Officer·정보담당관)’ 조직을 운영한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정보경찰이라고 부른다. 정보경찰이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해 1월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다. 다스 실소유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이 청계재단에 기부한 영포빌딩 지하를 압수수색했는데, 여기서 정보경찰의 불법행위들이 다수 포착됐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꾸린 진상조사단은 경찰청 정보국이 만든 130여 개 문건에 대해 불법사찰 및 정치관여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중 60여 건은 이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광우병 촛불시위, 좌파성향 단체 관련 등이 주를 이뤘다. 경찰은 조사단을 꾸려 정식 수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11월 이명박 정부 시절 정보업무를 맡았던 경찰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해 11월과 12월 경찰 핵심조직인 정보국을 두 차례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때도 정보경찰의 불법행위가 이뤄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4월 9일 정보국에 대해 세 번째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물증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불법으로 수집된 정보가 누구에 의해 작성됐는지, 또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윗선을 밝혀내는 게 검찰 수사의 종착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정당국 및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 정보경찰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동향보고 및 불법사찰, 2016년 총선 판세 보고 등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무성 유승민 등 당시 여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던 정치인들에 대한 보고서도 포함됐다. 앞서의 중앙지검 관계자는 “김무성 유승민뿐 아니라 여야 주요 정치인에 대한 내용이 문건으로 확인됐다. 국회 출입 IO뿐 아니라 일선 경찰들도 정치 보고서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게 수사팀 판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패닉’ 상태다. 조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정보국이 연일 털렸기 때문이다. 4월 18일엔 김학의 동영상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까지 정보국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내에선 “정보국이 동네북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파다하다. 일각에선 검찰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린다. 한 정보경찰은 “경찰 망신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수사권 조정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검찰이 과도하게 수사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에선 검찰이 정보국 압수수색으로 또 다른 효과를 얻으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한 경찰 고위 인사는 사석에서 “정보국이 초토화됐다. 온갖 정보들이 검찰로 넘어갔다. 현 정권 들어 경찰이 국내 정보를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검찰이 우리가 모은 고급 자료들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최근 몇 년간 정보경찰들이 검사들 비리를 캐고 다녔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혹시 이런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들은 과연 검찰도 떳떳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정보경찰은 “정보라는 게 권력자 입맛에 맞는 걸 수집해 보고하기 마련이다. 권력자가 싫어하는 정보를 누가 보고하겠느냐”라면서 “경찰뿐 아니라 검찰 국정원도 비슷한 유형의 정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건 상식”이라고 했다. 앞서의 경찰 고위 인사는 “검찰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국내 정보를 만들었다가 여러 번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검찰 정보 조직이 보고한 문건도 다 확인을 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검경 갈등으로 번질 기미를 보이는 정보경찰 수사를 두고 여권에선 그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과 검찰의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했다. 복수로 이뤄지던 인사 검증은 경찰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정보경찰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졌다. 현 정권 들어 정보경찰 입지는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는 평가다. 야권에서 문재인 정부도 정보경찰의 ‘일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정보경찰은 과거 국정원이 하던 업무를 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검증이나 각계의 동향 파악 등이다. 법적으로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나중에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라는 게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정책 마련에 도움을 받기 위해 수집한 자료라고 하더라도 정치 관련이나 개인 불법 사찰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직 특감반원 김태우 폭로 때도 그런 내용이 있지 않았느냐. 정보경찰 수사가 확대되면 문재인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여권 의원들 우려는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한 친문 의원은 “국정원 국내 파트를 폐지해놓고 그 역할을 정보경찰에 맡긴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면서 “정보경찰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 중 다소 위험해 보이는 정치 동향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도 “경찰에서 청와대로 올라온 보고 중 야권 정치인 내용도 있다. 비리 수사 때문이었지만 자칫 정치인 사찰로도 비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 “우릴 건드리면 청와대가 다친다” “검찰이 정권 아킬레스건을 쥐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정치권과 사정당국에선 보다 은밀한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문재인 정권 실세들과 일부 정보경찰 간 부적절한 거래가 그 골자다. 시기는 지난 2017년 대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후보 당선이 유력했던 때다. 친문 실세로 꼽히는 한 정치권 인사는 복수의 정보경찰로부터 여러 차례 정치권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 경쟁 후보 진영의 비리 자료와 같은 것들이었다. 경찰이 유력 대선 후보에게 정보보고를 한 셈이다. 거론된 친문 실세의 최측근은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 친분으로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고위 인사는 “공식적으론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면서 “만약 그랬다면 개인적으로 대선 후보 측과 인연이 닿았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선 때 권력기관 관계자들이 특정 후보 측과 줄을 대려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정권이 바뀐 후 승승장구하는 인사 중엔 대선 때 일찌감치 ‘실적’을 쌓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몇몇 경찰을 두고 비슷한 소문이 나돌았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문 후보 승리가 거의 확실시됐었기 때문에 여러 통로를 통해 돕겠다는 제안이 쏟아졌다. 국정원 검찰 경찰 모두 마찬가지였다. 우리 캠프 쪽 사람들과 일부 정보경찰 사이에 ‘핫라인’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