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4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구속전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그보다 앞서 2007년 윤 씨는 자신의 회사 중천산업개발이 분양시행했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한방천하 포스빌 관련 소송으로 검찰과 인연을 맺는다. 한방천하는 제기동과 용두동에 이르는 경동약령시장의 현대화, 전문화, 지역상권 활성화 등을 위해 사업 추진된 한방타운을 포함한 주상복합건물이다. 지하6층, 지상18층 규모의 대단위 테마쇼핑몰로 주변 롯데불로장생, 동의보감타워 등과 함께 포스코건설의 시공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한방천하는 강북의 새로운 랜드마크라는 기대감과 달리 자금난과 시장성악화 등 난관에 봉착한다. 윤 씨는 분양자들의 개발비 70여억 원 중 상당액을 한방천하와 무관한 사업과 사적인 용도로 썼다는 의혹을 받아 분양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윤 씨는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한방천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모두 6차례에 이르는 소송에 연루된다. 2002년 지인 소개로 한방천하 사업에 뛰어든 윤 씨는 자신의 부인인 김 아무개 씨 명의로 되어있던 중천산업개발 대표를 이 아무개 씨(현재 (주)한방천하 대표)로 바꾸고 본격적인 분양사업을 펼친다. 2003년부터 공사 인허가와 시공사 선정 등의 이유로 윤 씨와 회사는 관할인 동대문구청과 시공사 포스코건설에게 접대와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로비 자금의 상당 부분이 한방천하 개발비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예금거래내역과 장부 등에 경찰 고위 관계자의 이름을 비롯해 포스코건설, 동대문구청, 심지어 반포세무서 등이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윤 씨 및 한방천하 관련 소송은 6차례로 2007년 11월 서울북부지검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5건(2008년 9월, 2011년 12월, 2013년 6월, 2014년 9월과 11월)인데, 모두 불기소 등 무혐의 처분되었다.
최초 검찰은 윤 씨를 불기소 처분하며 상가 개발비가 분양 수수료 등으로 쓰여 횡령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2008년 12월 고소인들의 제보에 따른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윤 씨가 상가 개발비 가운데 17억 원(대부분 현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인들은 국세청 회신을 근거로 2010년 5월 대검찰청에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윤 씨를 같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재고소한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답변은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무혐의 처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일요신문’이 단독 확인한 2011년 윤 씨에 대한 수사 과정부터 살펴본다. 2011년 윤 씨 사건 담당 중앙지검 A 수사관은 윤 씨를 검찰에 출석시켜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윤 씨는 개발비를 쓴 것은 맞지만 개발비 용도는 몰랐다고 횡령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수사는 꽤 진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관에 대한 첫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등이 이뤄졌으며 피고인들도 적극적으로 소환했다. 과거 수사와 다른 검찰의 행보에 피해자들도 큰 기대감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윤 씨는 2011년 7월 한 장의 진정서를 제출한다. 수신은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A 수사관이 편파적이라 신뢰할 수 없다며 일반 수사관이 아닌 담당 검사 B 씨가 직접 조사하도록 지시해 달라는 진정이었다.
윤중천 씨가 과거 검찰 수사 당시 중앙지검 검사장에게 보낸 진정서.
진정서에서 윤 씨는 같이 고소된 계열사 관계의 회사 사장인 이 씨와 A 수사관의 관계가 미심쩍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를 이유로 수사관이 아닌 검사의 직접 조사를 요청한 것. 결국 A 수사관은 이 사건에서 배제됐고 사건 자체가 B 검사에서 C 검사로 재배당됐다. 그리고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됐다. 정확한 재배당 이유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은 이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은 대검 진상조사단이 지난 1월 윤 씨 소환 당시 “한상대 전 검찰총장에게 후원 차원에서 수천만 원을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언론 매체의 보도를 주목하고 있다. 당시 진정서를 받은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한 전 검찰총장이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A 씨는 현재 검찰을 떠난 상태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윤 씨 관련 검찰 윗선 수사 무마 등 외압은 없었냐는 질문에 “외압은 없었다. (윤 씨가) 어려우니 꾀를 쓴 것이다.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궁지 몰리니까. 추측일 뿐이지. 윤 씨가 당시 진정서를 내고 검사도 알았을 것 아니냐 검사가 의견 없이 보내라고 해서 보낸 걸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윤 씨의 진정서에서 언급된 이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A 씨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했는데, 윤 씨의 사무실에선 자료 같은 건 아무 것도 없었고 역삼세무서 자료에 자금 흐름이 있어서, 개발비란 게 결국 투자에 나선 서민들을 건드린 것이어서 더 적극적으로 수사했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수사 당시 윤 씨를 대면한 상황을 이렇게 얘기했다. 피해자 D 씨는 “윤 씨가 너무 여유로웠고 당당해 놀랐다”며 “심지어 수사 중간에 피해자들에게 이번 건 넘어가면 더 좋은 일, 돈 버는 일이 많다며,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가 제공한 녹취록에서 윤 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소송해봤자 소용없다”는 발언이 담겨있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윤 씨는 이후 3번의 검찰 수사에서도 모두 불기소됐다. 한 피해자는 “한방천하 윤 씨가 검찰에선 ‘윤 씨 천하’ 같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지난 4월 초 대검찰청에 다시 한 번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학의 전 차관과 윤 씨에 대한 재수사에 한방천하 수사도 다시 검토해달라는 취지였다.
18일 구속 수사단은 지난 17일 오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공갈 등 혐의로 윤 씨를 체포했다. 앞서 수사단은 지난 4일 윤 씨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하고 윤 씨 주변인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사단이 윤 씨에 대한 무리한 꼼수수사와 여론을 의식한 강제수사로 구속불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란 비난도 제기된다. 수사단은 윤 씨가 관여한 사업 등을 통해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판단되는 별건 개인비리를 파헤쳐 윤 씨와 김 전 차관 사이에 오간 뇌물과 사건청탁 여부 등을 함께 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씨 측 변호인은 “관련 사건이 아닌 개인 별건으로 윤 씨 신병을 확보해 자백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며 윤 씨가 억울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수사를 개시한 시기와 경위, 영장청구서에 기재된 범죄 혐의의 내용과 성격,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 정도에 비춰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윤 씨의 검찰 수사 불패 신화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