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완성한 뒤 포효하는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투수 덱 맥과이어. 사진=삼성
[일요신문] 미운 오리는 백조가 될 수 있을까. 시즌 초 KBO 리그에서 ‘미운 오리’ 소릴 듣던 외국인 투수가 백조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4월 21일 KBO 리그 역사상 14번째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된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투수 덱 맥과이어의 이야기다.
맥과이어는 삼성 유니폼을 입을 당시부터 야구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맥과이어가 ‘2010 MLB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1번으로 지명받은 ‘특급 유망주’ 출신이었던 까닭이다. 당시 맥과이어는 미국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 크리스 세일(현 보스턴 레드삭스, 2010 드래프트 1라운드 13번 지명)보다 앞선 순번에서 지명될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은 투수였다.
하지만 KBO 리그에 상륙한 맥과이어의 투구 내용은 이름값에 한참 모자랐다. 시즌 개막 이후 5차례 선발 등판에서 맥과이어는 2패 평균자책 6.56의 초라한 성적을 냈다. 야구계에선 “2019시즌 KBO 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 가운데 맥과이어가 교체 대상 1순위”란 이야기까지 흘러 나왔다.
그러던 4월 2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한화 이글스의 경기. 맥과이어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맥과이어는 이전과 다른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차곡차곡 아웃카운트를 적립해 갔다. 한화 타자들은 맥과이어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
노히트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맥과이어의 투구를 지켜보는 팬들이 ‘설마’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경기는 어느새 9회 말 투아웃에 다다랐다.
맥과이어는 한화 최진행을 상대로 스트라이크 두 개를 선점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 128구째를 던졌다. 149km/h 묵직한 강속구였다. 속구엔 힘이 있었다. 묵직한 속구에 최진행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심판은 삼진아웃을 선언했다. 노히트노런을 현실로 마주한 순간, 맥과이어는 포효했다.
맥과이어의 노히트노런은 KBO 리그 역사상 14번째이자, 2016년 마이클 보우덴 이후 3년 만에 등장한 대기록이다. ‘교체 대상 1순위’ 소릴 듣던 맥과이어의 반전 드라마였다.
그렇다면 맥과이어가 반전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은 맥과이어의 주무기 슬라이더에 있었다.
# “스치기도 힘든, 스치면 아웃” 마구 슬라이더가 대기록 이끌다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 덱 맥과이어는 13탈삼진 중 9탈삼진을 슬라이더로 솎아냈다.
탈삼진은 마운드 위 ‘투수의 힘’을 가늠할 만한 가장 믿음직스런 지표다. 투수가 야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아웃카운트를 생산하는 유일한 수단인 까닭이다.
4월 21일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맥과이어는 13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만큼 맥과이어의 구위는 압도적이었다. 그의 화끈한 투구에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는 춤을 췄다. 그 가운데 맥과이어의 ‘결정구’ 슬라이더는 단연 돋보였다.
맥과이어가 뺏어낸 13개 삼진 가운데 9개의 결정구는 슬라이더였다. 맥과이어가 타자를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낸 슬라이더 9구의 평균 구속은 133.2km/h였다. 말 그대로 ‘파워 슬라이더’였다.
슬라이더는 ‘브레이킹 볼(Breaking Ball, 공이 잠시 멈췄다 들어오는 듯해 붙여진 이름)’ 계열 변화구 가운데 구속이 가장 빠르다. 슬라이더 구속이 빠를수록 타자들은 구종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다. 슬라이더가 꺾이기 전까지 공 궤적이 속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일 맥과이어가 던진 슬라이더는 한화 타자들의 머릿속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결정구’였던 셈이다.
올 시즌 맥과이어의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130.6km/h이다. 그러나 21일 맥과이어가 던진 슬라이더 44구의 평균 구속은 132.8km/h였다. 평소보다 2km/h 이상 빨랐던 맥과이어의 슬라이더는 타자들을 현혹하기 충분했다.
맥과이어의 슬라이더가 특별했던 이유는 이뿐 아니다. 맥과이어의 ‘슬라이더 콘택트 비율(던진 공을 타자가 방망이에 맞힌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그만큼 공의 움직임이 좋았다. 한화 타자들은 맥과이어의 슬라이더를 방망이에 스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공이 방망이에 맞는다 하더라도,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이전 등판 5경기에서 맥과이어의 슬라이더 콘택트 비율이 모두 80%를 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4월 10일 LG 트윈스 타선은 맥과이어가 던진 모든 슬라이더를 방망이에 맞추며, 슬라이더 콘택트 비율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만큼 21일 한화 타선을 상대로 던진 맥과이어의 슬라이더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맥과이어가 던진 슬라이더와 전혀 다른 구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슬라이더에 힘이 실리자, 맥과이어는 전혀 다른 투수가 돼 있었다.
# 백조의 날갯짓 시작한 맥과이어, ‘삼성 막강 외국인 원투펀치’ 염원 이룰 신호탄 될까
덱 맥과이어와 저스틴 헤일리는 삼성의 ‘외국인 원투펀치 완성’이란 염원을 이뤄줄 수 있을까. 사진=삼성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부진했는데도, 믿어준 삼성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에게 감사하다. 부진한 가운데서도 많은 구단 관계자들이 도움을 줬다. 그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기쁜 마음은 월요일까지다. 화요일부터는 다시 차분하게 선발 등판을 준비하겠다.”
4월 21일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작성한 맥과이어의 소감이다. 맥과이어는 KBO리그 데뷔 6경기 만에 ‘MLB 드래프트 1라운더’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선보였다. 이제 팬들의 시선은 맥과이어의 다음 행보에 쏠린다.
삼성의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저스틴 헤일리는 ‘에이스급 활약’을 펼치며 KBO리그에 연착륙 중이다. 헤일리는 5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31이닝을 소화했다. 성적은 1승 2패 2.61이다. 승운이 없었지만, 5차례 등판 중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4번일 정도로 투구 내용이 안정적이다.
삼성은 시즌 전 ‘맥과이어-헤일리’로 이어지는 막강 원투펀치를 구상했다. 최근 몇 시즌 간 외국인투수 덕을 보지 못했던 삼성으로선 ‘외국인 원투펀치 완성’에 대한 염원이 컸다. 그러나 시즌 초 맥과이어가 부진한 투구를 연이어 선보였다. 삼성의 계획은 틀어지는 듯 보였다. 삼성은 맥과이어를 두고 수심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4월 21일, 삼성의 수심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맥과이어가 놀라운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외국인 원투펀치 완성’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났다.
‘외국인 원투펀치’가 기대만큼의 기량을 발휘한다면, 시즌 초반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삼성에 반전의 흐름이 찾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흐름 반전 성패 여부는 ‘맥과이어 어깨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록을 작성한 맥과이어가 앞으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사자군단의 반등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