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던 ‘마블 팬’이라면 3시간 57초의 장대한 러닝 타임을 넘어서 스태프 롤의 마지막까지 보고 나서도 좌석에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두 개의 쿠키영상 뒤에 볼 수 있었던 “어벤저스는 다시 돌아온다”는 문구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어벤저스’로 행복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10년은 또 다른 영웅들의 서사로 채워질 것이다. 마지막에서, 다시 시작으로 이어진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관전 포인트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면서 짚어봤다.
#단 1초도 놓칠 장면이 없다. 단 1초도.
3시간 57초라는 장대한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놓고 감독인 루소 형제는 “절대로 음료수를 마시지 마라.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도 될 만한 씬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조금이라도 자리를 떴다간 그 다음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고 당황할 수 있다. 이번 ‘엔드게임’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특성상 어느 한 지점을 건너뛰고 다음 지점을 상상할 수 없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굳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초반부의 약 15분 내에 한해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트레일러로 공개된 부분이 대부분 초반부에 치중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여운까지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아예 음료수를 들고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티슈를 지참할 것. 영화 도중이 됐든, 스태프 롤이 올라간 뒤가 됐든 간에 펑펑 울게 될 것이다.
#예상을 뒤엎는 롤러코스터 전개, 그리고 MCU 올스타즈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은 조금도 안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연히 “히어로가 이기겠지”라는 빈약한 상상만으론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충분히 안심이 되지 않는다. 타노스라는 무시무시한 적을 앞에 두고, 결말을 알고 있거나 ‘캡틴 마블’을 믿는 관객들마저 “과연 이길 수 있을까”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전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특히 중반부에 펼쳐지는 ‘살아남은 어벤저스 멤버들의 여정’에서 롤러코스터는 급상승과 급강하를 반복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라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부분은 비틀기와 뒤집기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다. 이는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예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관객들을 이끄는 영화는 ‘곡성’ 이후로 오랜만이다.
여기에 더해 MCU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본 ‘마블 덕후’들이라면 반가운 얼굴들을 한 자리에 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MCU 올스타즈’가 모인 셈이다. 여기에 어벤저스 생존 멤버들의 깨알 같은 상황극이 더해지면서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웃음이 오래가지 않는 것도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이끄는 롤러코스터 전개 가운데 하나다. 웃으면서도 의심하자.
#결국 마지막은, ‘부성애’로 이어진다
우주를 넘나들며 공사가 다망해서 그런지 ‘어벤저스’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가족 복이 없는 편이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파탄과 그럭저럭 중간 사이를 간신히 줄타기한다. 간판 히어로 가운데 하나인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의 이런 부자 관계는 또 다른 간판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와 아이언맨의 갈등과도 연관이 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처럼 앞서 ‘어벤저스’와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암시돼 왔던 ‘부자간 해묵은 감정’은 ‘엔드게임’에서 그 시작과 끝이 연결된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아이언맨(토니 스타크)과 그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 캡틴 아메리카 사이의 과거와 현재를 봤던 관객들이라면 가장 감격에 겨울 순간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아이언맨이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과의 씬도 인상적이다. 하워드 스타크에서 토니 스타크로, 그리고 짧지만 피터 파커(스파이더맨)로도 이어지는 부성애는 몇 안 되는 중반부의 흐뭇한 씬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사랑해 온 토니 스타크가 이를 통해 결코 풀 수 없었던 부자간의 응어리를 녹이는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더 이상 ‘사이드킥’으로 머물지 않는 여성 히어로
‘엔드게임’에서 관객들의 가슴을 가장 벅차오르게 하는 것을 꼽으라면 역시 마지막의 대규모 전투 씬일 것이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를 필두로 ‘어벤저스 원년 멤버’들이 선봉장에 선 마지막 결전은 모든 MCU 영화 가운데서도 단연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리고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바로 여성 히어로들의 단체 전투씬이다. ‘블랙팬서’의 도라 밀라제나 ‘토르: 라그나로크’의 발키리와 같은 여성 엘리트 전투 부대의 단체전이 아닌, 말 그대로 여성 히어로 개개인이 모여 공동의 적과 맞서는 모습이 그려진다. 솔로 액션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앞서 한국을 방문했던 마블 스튜디오의 프로듀서 트린 트랜은 “마블은 무엇보다 여성 히어로를 서포트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여성 히어로가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캡틴 마블은 물론, 앞으로 새로운 어벤저스와 MCU의 빈자리를 채울 히어로에 ‘여성 히어로’의 존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