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엠파이어’ 출연 당시의 저시 스몰렛
저시 스몰렛은 1987년 다섯 살 때부터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는 30대 초반에 출연한 TV 시리즈 ‘엠파이어’였다. 2014년 그는 이 시리즈에서 자말 리온이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흑인 게이를 긍정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캐릭터였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뮤지션인 자말 리온 역할은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 주었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에 캐스팅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실제로 게이임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화제의 중심이 된다. 2015년 ‘엘렌 쇼’에 출연해 커밍아웃을 한 것. 이후 한 인터뷰에서 “굳이 규정하자면 나는 게이 남성이지만 젠더보다는 사랑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며 “사랑에 빠진다면 그 대상이 여성이라 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드라마 ‘엠파이어’에서도 자말 리온이 여성 캐릭터와 밀회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설정은 작가이자 역시 동성애자인 리 대니얼스와 상의한 것. 게이 커뮤니티의 성적 유동성을 드러내고 싶은 의도였다.
사건은 2019년, 그러니까 올해 1월 22일에 일어났다. ‘엠파이어’를 촬영 중이던 폭스 스튜디오에 저시 스몰렛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거기엔 여기저기서 오려 붙인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넌 죽게 될 거야. 이 깜둥이 호모 새끼야!”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사람을 총으로 겨누는, 조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서명은 ‘MAGA’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였다. 편지엔 정체를 알 수 없는(감식 결과 타이레놀로 밝혀진)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범죄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본격적인 사건은 일주일 뒤에 일어났다. 저시 스몰렛은 자신이 사는 시카고의 이스트 로워 노스 워터 스트리트에서 새벽 2시에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복면을 쓴 두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 인종주의적이며 동성애 혐오적인 욕설을 내뱉으며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을 퍼부었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씌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긴 MAGA의 나라야!(This is MAGA country)”라고 소리 친 후 사라졌다는 게 스몰렛의 주장이었다. 이후 그는 인근의 노스웨스턴 병원 응급실로 갔고, 심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후 아침에 퇴원했다. 스몰렛은 자신이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해서 이런 일을 당한 것 같다며, 일주일 전에 배달된 편지와 관련 있는 일 같다고 추정했다.
2월 4일, 시카고 경찰은 첫 공식 리포트를 했다. 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스몰렛의 친구였으며, 당시 스몰렛은 신고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 2시 30분경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스몰렛의 목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으며 CCTV 분석 결과 스몰렛을 공격한 두 사람은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경찰은 원한 관계 등을 조사하기 위해 스몰렛에게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스몰렛은 통화 기록 상당 부분을 삭제한 뒤 제출했다. 이에 경찰은 난감함과 함께 모종의 의문점을 제기했다.
열흘 후인 2월 14일, 스몰렛은 ABC 방송사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그는 경찰을 비롯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통화 기록을 삭제한 건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신고를 원치 않았던 이유도 밝혔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게이 남성이 연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약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게이 청년들이 제가 힘차게 맞서 싸웠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렬하게 저항했다. “내가 만약 무슬림이나 멕시코인 혹은 이성애자 흑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날 덜 의심했을 거다. 화가 난다. 어떻게 이걸 믿지 않을 수 있는가. 내 말은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시카고 경찰이 스몰렛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낸 것. 그러면서 이 일은 의외로 거대한 사회적 문제가 돼 버린다. (2편에 계속)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