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92시즌 역사상 마지막 EFL 디비전1 우승팀으로 남은 ‘백장미 군단’ 리즈 유나이티드. 사진=Leeds United
[일요신문]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리즈 시절’이란 신조어가 자주 쓰인다. 찬란했던 과거를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다. 이 말 뜻의 어원은 잉글랜드의 한 프로축구단 역사로부터 유래했다. 바로 ‘백장미 군단’ 리즈 유나이티드 FC(리즈)다.
리즈의 과거는 찬란했다. 특히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리즈는 황금기를 보냈다. 당시 리즈는 리버풀과 함께 잉글랜드 풋볼리그 디비전1(이하 디비전1, 현 프리미어리그)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꼽혔다. ‘리즈 신화’는 리즈가 1963-64시즌 디비전 2(현 EFL 챔피언쉽)를 재패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돈 레비 감독이 이끌었던 리즈는 디비전 1에 안착하자마자,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1968-69시즌에 리즈는 마침내 사상 첫 디비전1 우승컵을 거머 쥐었다. 독보적인 전력을 자랑하던 리버풀을 제치고 일궈낸 우승이었다. 리즈는 5년 뒤인 1973-74시즌 두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야말로 구단의 최고 전성기였다.
이 기간 리즈는 두 차례(1968, 1971)에 걸쳐 인터시티페어스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1971-72시즌엔 잉글랜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토너먼트 컵대회인 FA컵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잘나가던 리즈에 암흑기가 도래한 건 1974년이다. ‘첫 번째 리즈시절’을 이끈 주인공 돈 레비 감독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리즈의 성적은 서서히 떨어졌다. 결국 리즈는 1981-82시즌 디비전2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0년대 디비전1에서 더 이상 리즈를 볼 일은 없었다.
# ‘잉글랜드 풋볼리그 디비전1’ 마지막 우승팀, 전설의 ‘백장미 군단’
리즈 유나이티드의 상징은 ‘백장미’다. 이는 1455년부터 30년간 벌어진 ‘장미전쟁’ 당시 요크셔 가문이 쓰던 상징이기도 하다. 사진=Leeds United
1982년 EFL 디비전2로 강등된 리즈의 암흑기는 짧지 않았다. 리즈는 1989-90시즌 디비전2에서 우승하며, 8년 만에 디비전1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리즈는 두 번째 ‘리즈 시절’을 맞이한다.
리즈는 디비전1 승격 이후 2년 만에 이변의 주인공이 된다. 1991-92시즌 ‘숙명의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따돌리고, 리그 왕좌에 오른 것(맨유는 ‘빨간 장미 군단’이라고도 불린다. 리즈와 맨유의 경기가 ‘장미전쟁’이라 불리는 이유다. ‘장미전쟁’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열광적인 라이벌 매치로 꼽힌다). 1991-92시즌을 마친 뒤 FA는 현행 ‘프리미어리그-EFL 챔피언쉽’ 체재로 리그 시스템 개편을 단행했다.
리그가 개편되면서, 리즈는 ‘잉글랜드 풋볼리그 디비전1’ 마지막 우승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에도 리즈의 전력은 탄탄했다. 성적의 기복은 있었지만, 리즈는 간간히 리그의 ‘다크호스’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1992-93시즌부터 2001-02시즌까지 10시즌 동안 리즈는 ‘리그 TOP 5’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렸다.
2000년엔 박지성의 맨유 시절 동료로 익숙한 리오 퍼디난드와 앨런 스미스가 리즈 유니폼을 입었다. 같은 시기 로비 킨, 조나단 우드게이트 등 유망주들도 리즈로 이적했다. 리즈는 젊은 패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리그 왕좌를 넘보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공격적인 선수 영입은 구단의 재정부실로 이어졌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마주한 리즈는 주축 선수들을 팔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리즈의 스쿼드(선수층)는 얇아져 갔다. 결국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19위로 추락한 리즈는 ‘리즈 시절’의 종말을 고했다. 이 시즌을 마치고 EFL 챔피언쉽으로 강등된 리즈는 아직까지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지 못했다.
이 당시 리즈의 상황을 살펴보면, ‘프리미어리그 컴백’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번번이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실패하던 리즈의 전력은 더욱 약해졌다. 2006-07시즌 리즈는 EFL 챔피언쉽 22위로 미끄러지며, 리그1(잉글랜드 3부리그)으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봤다.
악재는 이뿐 아니었다. 2007년 리즈는 3500만 파운드(약 520억 원 규모) 부채를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리즈의 어두운 터널엔 끝이 보이지 않았다.
# 마침내 찾아온 프리미어리그 승격 기회, ‘세 번째 리즈 시절’은 찾아올까
리즈는 15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컴백을 노린다. 사진=Leeds United
나락까지 떨어졌던 리즈는 2009-10시즌을 마친 뒤 리그1에서 EFL 챔피언쉽으로 승격했다. 그야말로 와신상담 끝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 그로부터 8년이 흐른 2018-19시즌. 리즈는 15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리즈는 올 시즌 중반까지 EFL 챔피언쉽 1위를 달리며, 승격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시즌 막판에 접어들며 리즈의 추진력은 다소 약해졌다. 44라운드까지 진행된 EFL 챔피언쉽에서 리즈는 25승 7무 12패를 기록하며, 승점 82점으로 3위를 기록 중이다. EFL 챔피언쉽 일정이 두 경기 남은 상황에서 리즈가 ‘자동 승격’ 커트라인인 리그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1위 노리치시티가 승점 88점, 2위 셰필드 유나이티드는 승점 85점을 적립했다. 남은 두 경기에서 리즈가 승리를 거둔다면, 1-2위 팀들 경기 결과에 따라 리즈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3위에 머물거나 더 낮은 순위를 차지한다고 해도, ‘승격 플레이오프’를 통과한다면 리즈는 프리미어리그로 컴백할 수 있다.
리즈의 프리미어리그 승격 여부는 해외 축구팬들에게도 큰 관심사다. 굴곡진 역사를 지닌 리즈가 다시 한번 프리미어리그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큰 까닭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사에서 리즈는 ‘깜짝 이변의 주인공’이란 이미지가 강한 구단이다. 찬란했던 신데렐라 스토리를 자랑했던 리즈. 과연 리즈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을 증명할 수 있을까. 언제쯤 다시 찾아올지 모를 ‘제3의 리즈시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