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문조서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신문한 뒤 피의자로부터 진술을 듣고 작성한 문건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은 뒤, 질문과 피의자의 답변 형식으로 조서를 꾸미는데, 이때 작성은 검사 등 수사기관이 맡는다.
여야 4당은 합의를 통해 이 부분에 변화를 예고했다. 검사가 작성한 피신 조서에 대해 ‘증거능력을 제한한다’는 문항을 넣은 것. 합의안을 본 검사들은 “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피신 조서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검사한테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 원내대표가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처리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피신 조서가 뭐길래, “노무현 때부터 추진 사안”
피의자 신문조서가 대체 무엇이길래 검사들은 이를 문제 삼을까. 피의자 신문조서가 가진 힘 때문이다. 법정에서 엄청난 ‘증거’로 활용된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설명이다.
경찰도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할 수 있다. 다만 경찰의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 하지만 검찰 신문조서는 다르다. 당사자가 부인해도 믿을 수 있는 상태에서 진술이 이뤄졌다면 법원이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판사의 재량권인데, 폭력이나 압력 등 부당한 상황에서 이뤄진 진술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검찰 신문조서는 증거로 채택된다.
나름 피의자의 방어권을 고려했기 때문에 더더욱 증거 채택 확률은 높다. 검사 등이 피의자에게 조사 후 작성된 조서를 열람하게 하거나 읽어서 들려줘야 하는데, 피의자는 조서에 ‘잘못된 게 없다’는 의미로 지장이나 서명을 한다. 본인 동의가 한 차례 있었기 법원에서 핵심 증거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사가 작성 과정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단어 등을 활용해 조서를 작성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 때문에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 신문조서 검토에만 3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고,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도 각각 조사 시간의 절반 수준인 7시간과 6시간을 조서 열람에 할애했다. 문제가 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끊임없이 얘기해 조서를 수정한 것이다.
검찰 출신 법조인은 “가끔 대형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의 재판을 보면 검찰 때 진술 내용을 부인하는 전략으로 조서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기도 하지만, 통상 일반인들의 경우 검찰 때 진술 내용을 뒤집으려고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며 “조서는 검찰 수사의 핵심 증거이자 재판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설명했다.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되는 피의자 신문조서.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전두환의 반란수괴죄 재판 당시의 피의자 신문조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개혁 대상이 됐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검찰이 가지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며 사법개혁을 추진했고 이때 피신 조서를 문제 삼았다. 일본과 한국만이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하는데 이런 문화가 잘못됐다는 판단이었다.
실제 미국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 조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 독일은 피고인 또는 증인을 공판정 내에서 직접 신문해야 하는데, 공판정 외에서 신문한 내용이 담긴 조서나 기타 서면을 낭독하는 것으로 직접 신문을 대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공판직접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05년 꾸려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당시 형소법 개정안 초안을 통해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에 대한 증거 능력 부인 ▲검사의 법정 내 피고인 신문권 폐지 등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이 반발했고 결국 무산됐는데 14년이 지난 지금 이 사안이 도마에 오른 셈이다.
앞선 검찰 출신 법조인은 “이번 합의안에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고, 오래전부터 ‘검찰의 밀실 수사’를 문제 삼아온 운동권 등에서 주장했던 내용이 증거 능력 부인”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이를 추진해서 검찰이 강하게 반발했었는데 지금 다시 추진한다고 해서 새삼 놀라울 일도 없다. 만일 이대로 법안이 올라간다면 앞으로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신’을 부인한 순간 조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굳이 검찰이 피의자를 소환해 조사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검사들이 문제 삼는 다른 내용은? “검찰 죽이기 위해 공수처 만드나” 공수처 합의안에 대해 검사들은 “아직 큰 그림의 합의라 조심스럽다”면서도 다양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에 불만을 삼는다. 또 판사, 검사 등 수사당국에 대해서만 공수처가 수사를 하고, 처음 거론됐을 때와 달리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등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찰을 죽이기 위해 만드는 ‘옥상옥’ 같은 기구라는 비난이다. 기소권을 제외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에 재정신청이 가능하게 한 점도, 공수처를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간부 검찰 관계자는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이대로 될 리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구체적으로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합의문대로 가면 재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힘을 받는다. 피고인이 검찰 때 진술 조서를 부인하면,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조서 내용을 법정에서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시간과 인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여야4당의 선거제 개편안 및 공수처 설치법안 등 신속처리안건 합의에 항의하며 철야농성을 벌인 자유한국당이 24일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상의원총회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때문에 바른미래당은 피신 조서 증거 능력 제한에 대해 ‘법원 등의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이 사안이 실제 합의문에 명시됐다. 향후 법원 의견 수렴 과정에서 법원이 어떤 의견을 내느냐에 따라 내용이 다소 수정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검찰의 적극적인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바른미래당뿐 아니라, 패스트트랙 합의안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도 검사들이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앞선 검찰 출신 법조인은 “공수처를 막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보다 훨씬 정치적인 공수처를 정치인들조차도 믿지는 않을 것”이라며 “문제가 많은 합의안이라는 걸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황교안 전 총리 등 법조인이 많은 자유한국당 등이 반대하고 있고 바른미래당도 오신환 의원 반대 등 잡음이 나고 있으니, 지금 합의안 그대로 입법까지 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