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대성리 MT마을
신입생, 경춘선, 통기타, 대성리. 80~90년대 대성리는 대학생들의 MT 성지였다. 학과 전체가 들어가는 큰방에서 정체불명의 찌개와 설익은 밥을 먹어도 마냥 즐거웠다. 밤이 되면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MT 촌은 한낮처럼 밝았고 자연스레 모여 노래를 불렀다. 가끔은 옆 민박의 다른 학교와 때 아닌 응원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설경구가 주연한 영화 박하사탕이 떠오르는 시절이다. 지금은 대성리역 맞은편 구운천 주변에 대형 민박과 펜션들이 MT 촌을 지키고 있다. 깔끔한 건물에 인조잔디 운동장을 갖춘 생경한 풍경이다.
화성 제부도
경기도 북부에 대성리가 있다면 남부의 MT성지는 단연 제부도다. 먹거리를 잔뜩 들고 수원에서 제부도까지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제부도의 시원한 풍광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도착해서 짐을 풀면 꼭 몇몇은 양동이 가득 조개를 잡아 오겠노라며 호기롭게 갯벌로 향했지만 어수룩한 도시학생에게 순순히 잡혀줄 조개는 없었다. 덕분에 메뉴는 조개탕 대신 늘 라면이었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던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제부도는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일명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을 따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최근 제부도를 브랜드화하면서 화성 실크로드가 조성됐고 곳곳에 예쁜 포토스팟도 만들어져 산책은 물론 SNS용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제부도의 상징인 빨간 등대에서 제비꼬리길이 시작되는데 완만한 코스로 전망대와 해안 산책로 모두를 즐길 수 있다.
하남 미사리
한강을 따라 올림픽대로를 달려 도심을 벗어나면 만날 수 있던 곳, 미사리.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카페에선 라이브공연이 열렸다. 출연 가수와 공연시간이 크게 적힌 간판이 길가에 잔뜩 늘어서 발길을 붙잡았다. 미사리에선 맛과 분위기보다는 출연진이 카페 선택의 기준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아무래도 불편했던지라 주류보다 음료가 대세였다. 다른 지역 카페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음료 한 잔에 연주와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웬만한 곳은 초저녁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지금은 미사강변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을 즐기며 한강을 따라 걷고 자전거를 타기에는 여전히 좋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천주교 신도들의 손으로 지켜낸 구산성지 또한 미사리의 상징이다.
장흥
장흥은 90년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교외선 증기기관차가 하루 세 번 장흥역에 도착할 때마다 젊은 연인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장흥 주변은 경관이 좋아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였다. 특히 송추에서 이어지는 소머리고개, 기산저수지 방향으로 넘어가는 말머리고개는 구불구불 멋지게 휘어지는 운치가 있었다. 일영이나 벽제에서 점심으로 갈비를 먹고 장흥에 와서 조각공원을 산책하며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당시 최고의 럭셔리 데이트였다. 지금의 장흥은 그때에 비하면 한적한 느낌이다. 역전다방은 추억으로 남았고, 토탈미술관은 가나아트파크로 새롭게 변모했다. 두리랜드는 한참 새롭게 단장 중이며, 오는 6월 오픈을 앞두고 있다.
김장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