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 찾아가는 방송가
버닝썬 게이트와 연루된 연예인들이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정준영이 고정 출연하던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은 3년 전 그의 성추문이 발생했을 때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게다가 정준영의 단체 대화방에서 ‘1박2일’에 함께 출연하던 배우 차태현과 방송인 김준호가 내기 골프를 쳤다는 정황이 포착되며 그들 역시 방송 활동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KBS가 ‘1박2일’의 무기한 제작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지난 설 연휴 때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됐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해당 시간대에 편성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해피선데이’로 편입되지 않는다. ‘해피선데이’의 코너였던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독립 코너로 별도 편성된다. 그러나 KBS는 “‘해피선데이’의 폐지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긴 시간 일요일 오후 시간대 KBS의 효자 역할을 해왔던 ‘해피선데이’, 특히 ‘1박2일’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1박2일’이 재개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멤버 교체는 불가피하고, ‘1박2일’의 새 출발을 알리는 과정에서 과거 불거졌던 일들이 다시금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홈페이지는 살아 있다. ‘1박2일’ 출연진에서 정준영은 삭제됐고 김준호와 차태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정준영 논란의 여파에 휘말린 케이블채널 tvN 예능 프로그램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도 베일을 벗었다. 정준영은 LA 녹화에 참여하다가 이번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촬영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한 바 있다. 결국 그의 모습은 ‘통편집’돼 완전히 사라졌다. 제작진은 제작발표회에서 “편집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불편함 없이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MBC ‘라디오스타’ 역시 보조 MC였던 차태현의 하차로 생긴 공백을 특별 MC를 순차적으로 앉히며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라디오스타’는 과거 게스트로 참여한 가수 지코가 처음으로 정준영이 가진 ‘황금폰’의 존재를 언급해 이번 사태가 시작된 후 내내 입방아에 올렸다. 출연진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검증이 없이 내보내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차태현까지 하차하는 아픔을 겪으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군 입대와 함께 ‘라디오스타’ MC 자리에서 내려왔던 슈퍼주니어 규현이 다음 달 군복무를 마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가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러 생채기를 입은 ‘라디오스타’ 입장에서는 대중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MBC ‘나 혼자 산다’는 그동안 승리에게 성공적인 사업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준 것 때문에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이번 사태는 제작진이 출연진의 연예인으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알린 계기였다”며 “출연진 한 명으로 인해 프로그램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인성 검증은 더욱 철저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여전히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연예인들의 모습은 이제 TV 뉴스 속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는 완전히 퇴출됐고, 그들이 출연했던 일부 프로그램의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까지 중단됐다. 승리, 최종훈, 정준영, 박유천 모두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더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흔적은 남아 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들의 이름을 딴 지역 명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들의 인기가 절정에 이를 때 팬들과 지자체의 협심으로 조성된 몇몇 장소가 이제는 애물단지가 됐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앞 ‘K-스타 로드’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팀 소개와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곰 형상 아트토이인 ‘강남돌’(강남+아이돌)이 있다. 그 중 FT아일랜드 강남돌에는 최종훈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조형물은 강남구가 지난 2014∼2015년 도시 브랜딩 프로젝트로 세워졌으나, 이번 사태로 최종훈이 FT아일랜드에서 퇴출되고 비난을 받자 강남구가 서둘러 그 흔적을 지웠다.
로이킴 나무. 사진 출처 = 로이킴 페이스북
강남구청은 지난 17일에는 달터근린공원에 있는 ‘로이킴숲’의 정자 명패와 빨간 우체통을 철거했다. 이 숲은 그가 지난 2013년 케이블채널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서 우승한 뒤 첫 정규음반을 낼 당시 팬들이 나무를 심은 것을 기념해 조성됐다. 하지만 강남구청이 팬들의 동의 없이 이를 철거한 것에 대한 팬들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인천시 계양구 서부간선수로 살라리로 2번길에는 ‘박유천 벚꽃길’이 있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팬클럽이 지난 2013년 인천 계양 봉사단을 통해 서부천 생태하천 만들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봉사와 기부 활동을 전개하며 조성됐는데, 박유천의 모습이 담긴 벽화를 비롯해 그의 자작곡 가사와 드라마 대사가 적힌 석판 등도 설치돼 있다. 그렇지만 이곳을 관리해온 인천 계양구 봉사단은 박유천 팬클럽 ‘블레싱유천’과 합의해 4월 28일 철거하기로 했다.
또한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과 함께 단체 대화방 멤버로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구설에 오른 후 최근 군입대한 가수 용준형 역시 인천 서구 매립지 드림파크에 ‘용준형숲’이 조성돼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K-팝을 좋아하는 해외 팬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유명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붙인 명소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유지하려 한다”며 “하지만 그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 오히려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