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넬리(1994)>의 명장면 중 하나다. 이 영화는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카스트라토라토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단번에 각인시켰다. 카스트라토는 영화처럼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 거세를 통해 보이 소프라노 시절에 가진 여성 음역대의 목소리를 평생 유지한 성악가들이다.
영화 파리넬리 포스터.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라는 긴 본명을 가진 파리넬리는 1705년 이탈리아 아드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아버지의 결정으로 12세에 거세돼 카스트라토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본명보다 그의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따 만든 예명 파리넬리를 통해 지금까지 카스트라토의 황제로 각인돼 있다.
거세 후 파리넬리는 체계적이고 혹독한 수련을 거쳐 1724년 빈을 시작으로 1750년대 후반까지 목소리 하나로 엄청난 인기와 거만의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는 1782년 전 재산을 환원하고 77세에 영면했다.
영화에서 파리넬리가 부르는 아름다운 곡들은 카운터테너와 여성소프라노 가수가 동시에 같은 노래를 부르고 이를 컴퓨터로 합성해 미를 극대화시킨 음원이다. 카운터테너는 가성(팔세토)으로 여성 음역을 내는 남성 성악가로 진성으로 소리를 내는 카스트라토들과 구분된다. 이 영화 제작진은 중성화 된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자 진성의 소프라노 목소리와 합성을 통해 카운터테너 가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시도했고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파리넬리 생전 목소리가 영화에서 창조된 것과 유사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비인도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카스트로를 만들기 위한 거세를 금지시켰고 1903년 로마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를 금지하면서 카스트라토의 훈련법, 발성법이 모두 소실돼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22년 타계하면서 음원까지 남긴 알레산드로 모레스키는 질병 치료를 위해 거세한 후 노래를 하면서 인류 최후의 카스트라토라는 일각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통한 카스트라토 창법을 구사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카스트라토는 왜 등장했을까. 로마 교황청은 고린도전서 14장 34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을 이유로 여성의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출연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오페라 등에 남성들만의 얘기를 담을 수도 없어 여성 역할을 맡을 남성 가수가 필요해지면서 카스트라토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유럽 각국과 대도시들에 대형 극장들이 앞 다퉈 지어지면서 소프라노에 비해 같은 음역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큰 체구의 울림통으로 성량 면에서 월등했던 카스트라토들의 가슴 후련한 목소리를 선호하는 경향도 더해져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파리넬리에서 울게 하소서 열창. 사진=영화 스틸 컷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신체구조상 멜리스마(성악곡에서 가사의 1음절에 많은 음표가 주어지는 장식 선율)를 소화하는데 단점이 있다. 하지만 카스트라토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바로크 음악 시대의 성악곡들은 멜리스마를 소화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이를 혹독한 훈련으로 극복하려 했었고 대성공한 일부가 현재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파리넬리와 당대의 라이벌인 세네지노, 카파렐리 외에도 19세기 크레쉔티니 등 부와 인기를 동시에 거머쥔 이탈리아 카스트라토들이 대표적이다. 거세로 중성화 된 이유였을까. 이들은 모두 당대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긴 70세 이상을 살았고 특히 크레쉔티니는 84세에 타계하는 등 장수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세는 당사자에게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워 사회적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일이다.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선 카스타라토의 전성기인 18세기에 매해 수천 명의 소년들이 이 길을 가기 위해 거세를 당했다고 한다. 주로 가난한 집안의 아버지들이 파리넬리 등의 성공에 고무돼 노래 잘하는 아들을 카스트라토가 되게 했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카스트라토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과학적으로 거세를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했고 카스트라토들은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는 등 평범한 남성의 삶을 이어가기 불가능했다. 또한 실패한 카스트라토들은 궁핍하게 살거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대다수였다. 이들은 남성 호르몬 결핍으로 일반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완력으로 인해 육체노동을 요하는 시장에서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지 못한 카스트라토들은 한 마디로 루저였던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카스트라토들은 거세로 인한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성장 판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카스트라토 중에서 비정상적으로 거인이 되는 사례도 흔했다. 당시 오페라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면 여장을 한 카스트라토가 오히려 남자 가수보다 훨씬 큰 기괴한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상에 살아 숨 쉬었던 파리넬리의 실제 광채를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시대의 변화로 이제 인위적 거세를 통한 카스트라토의 존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카스트라토들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탄생한 기괴한 산물이었다. 인감 존엄성과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카스트라토는 인류 역사에 출연하지 말었어야 마땅할 대상이리라.
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