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으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은 베일에 가려진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에 앞서 위트 있게 포문을 열었다. 기존 한국영화와 달리, 이야기나 캐릭터가 철저하리만큼 비밀에 부쳐진 탓에 관객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상황을 그 역시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4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박정훈 기자
‘기생충’의 얼굴로 나선 배우 송강호 역시 기대에 차 있다. 명실상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의 자리에 올라있지만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으로 상당한 자극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좀처럼 꺼내지 않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발견하게 될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5월 말 개봉에 앞서 최근 서울 소공로 한 호텔에서 열린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2006년 ‘괴물’과 2013년 ‘설국열차’를 거쳐 6년 만에 재회했다. 통산 네 번째 호흡이자, 이번 작품을 통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 봉준호 “최근작이 최고작이 되길…”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 이어 2017년 내놓은 ‘옥자’까지 연이어 글로벌 프로젝트를 소화해왔다. 우리말로 만드는 순수 한국영화는 2009년 김혜자·원빈 주연의 ‘마더’ 이후 꼭 10년 만이다. 지금까지 내놓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전폭적인 호평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내놓을 때 국적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면서 “어떻게든 이전 작품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되길 바라고, 최근작이 최고작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린다”고 했다.
“최고작이길 바란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으면서 내놓은 ‘기생충’은 가족 구성원이 전부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이야기다. 생활력은 없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가장 기택을 중심으로 억척스러운 아내 충숙(장혜진 분)과 아들 기우(최우식 분), 딸 기정(박소담 분)이 극의 중심이다. 어느날 아들 기우가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해 글로벌 IT기업의 젊은 CEO 박사장(이선균 분) 딸의 고액과외 교사 면접을 보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직 영화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기생충’이 어떤 작품으로 완성됐을지 추측할 뿐이다. 다만 최근 글로벌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감독은 상생과 공생의 키워드를 통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봉준호 감독은 “너무나 다른 환경에 놓인, 이상에서는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은 두 가족이 독특한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야기”라며 “아주 추운 2013년 겨울 처음 구상했고 당시 제목은 ‘데칼코마니’였다”고 돌이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 ‘님의 침묵’을 빗댄 감독은 “그 시를 익히면서 대체 ‘시’가 뜻하는 게 뭘까 궁금해 참고서를 찾아보는 것처럼 이 영화도 보고나서 ‘기생충’이 뜻하는 게 뭘까, 추측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4월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배우 송강호. 박정훈 기자
그런 봉준호 감독에게 배우 송강호는 ‘페르소나’와 같다. 벌써 네 번째 협업을 이어가서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만날 때면 늘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도전이 이뤄졌다. 때문에 송강호는 이번 ‘기생충’을 함께하자는 제안에 망설임 없이 응했다. “매번 놀라운 상상력과 통찰적인 작품에 꾸준히 도전해온 감독”이라고 칭한 송강호는 “개인적으로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낌과 이번이 비슷하다”고 돌이켰다. 그만큼 새롭게 자신을 자극시켰다는 의미다. “‘기생충’은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간 봉준호 감독의 놀라운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를 발견하게 될 영화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며 “감독이 가진 예술적인 경지에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도 말했다.
봉준호 감독도 송강호의 호흡은 각별한 경험이라고 의미를 더했다. ‘살인의 추억’을 촬영하는 2002년 처음 만나 햇수로 17년째 인연을 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감독은 “단지 시나리오를 주고 캐스팅하는 개념이 아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되는 존재”라고 송강호를 짚었다. 이어 감독은 “왠지 강호 선배와 있으면 영화를 찍으면서 더 과감해지고 더 어려운 시도도 할 수 있게 된다”며 “축구로 비유해본다면 메시와 호날두가 작은 몸짓 작은 동작 하나로 경기 흐름과 수준을 다르게 하듯 배우로서 송강호는 그런 존재다. 많은 배우들의 앙상블 가운데 영화 흐름을 규정해 버리는 배우”라고 지칭했다.
감독은 그만의 기준으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기택의 아내 충숙 역의 장혜진은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배우이고, 박 사장의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 역시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처음이라 뜻밖의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에서 신선함을 더한다는 평가도 따른다. 이들 배우는 이구동성으로 봉준호 감독과 작업에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는 설명과 함께 “시나리오에 각 인물의 동선까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 촬영하기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모든 인물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핵융합을 이루듯 화학작용을 만들어냈다”며 “부드럽고 유연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도 만족해했다.
영화 ‘기생충’ 홍보 스틸 컷.
# 칸 수상 가능성 “현실적으로 낮다”
‘기생충’은 5월 15일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개막하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올해 한국영화로는 유일하다. 이로써 봉준호 감독은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작품 18편과 더불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놓고 겨룬다.
물론 봉준호 감독도, 송강호도 첫 진출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앞서 ‘괴물’과 ‘마더’ 등으로 칸을 경험했고 ‘옥자’를 통해 경쟁부문 초청을 받기도 했다. 송강호도 두 차례 경쟁부문을 통해 주연작을 선보였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박찬욱 감독의 ‘박쥐’다. 이들은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곳에서 신작을 처음 선보이니까 그 자체로 아주 기쁘다”고 했다.
그렇지만 봉준호 감독은 수상 가능성을 두고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칸에 모인 영화인들은 ‘기생충’을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운을 뗀 그는 “워낙 한국적인 영화이고 뉘앙스가 강한 작품이라 한국관객이 봐야 이해할 것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고 짚었다. 다만 배우들 가운데 누군가 수상할 가능성을 두고는 “아주 높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에 송강호는 그간 겪은 ‘기분 좋은 징크스’를 덧붙였다. 자신이 주연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할 때마다 어김없이 수상 결과를 얻었다는 ‘기록’을 내놨다. 실제로 2007년 ‘밀양’ 때는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9년 ‘박쥐’ 때는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송강호는 “수상을 해온 전통이 이번에도 이어지길 바란다”면서 웃어 보였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