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 등 손해보험회사들이 최근 보험개발원에 자동차보험 기본 보험료율 검증을 의뢰했다. 보험료 인상에 앞서 자체적으로 산정한 자동차 보험료 인상률이 적정한지 보험개발원에 검증을 요청한 것이다. 인상 폭은 1.5∼2.0% 수준으로 알려졌다. 보험개발원은 일부 손보사의 요율 검증을 마치고 결과를 회신했으며 나머지 업체에 대해선 검증을 진행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해 5월 초부터 시행할 예정인데 손보업체들은 이 시기에 맞춰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손보업계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정년) 연장, 교통사고 시 중고차 가격 하락분에 대한 보상 기간 확대 등으로 인해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툭하면 오르는 자동차보험료에 시민들이 불만은 쌓여만 간다. 사진은 한 시민단체가 ‘자동차보험료 부당인상요인 홍보 및 사전예방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이 생각하는 자동차보험료인상 요인에 대해 조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대법원은 사망하거나 노동력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보험개발원은 이 결정이 자동차 보험료 1.2% 인상 요인이 된다고 추정했다. 자동차보험의 배상항목 중 상실수익(사망·후유장해로 피해자가 얻지 못하게 된 미래수익)을 계산할 때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기준으로 삼는데, 노동 가동연한을 올리면 보험금 지출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통사고가 난 차량의 중고가격 하락에 대한 보상 기간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보험은 사고가 났을 때 수리비 외에 나중에 이 차를 팔 때 가격이 내려가는 부분도 보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출고 후 2년 이하’인 사고 피해차량에 대해 시세 하락분을 보상했는데, 이달부터 그 기간이 ‘출고 후 5년 이하’로 확대됐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지급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손해율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1분기(가마감) 주요 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악화됐다. 삼성화재는 81.5%에서 85.3%로, 현대해상은 80.4%에서 85.0%, DB손해보험은 85.5%에서 86.1%로 높아졌다. 통상 업계에서 적정하다고 보는 77∼78%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문제는 지난 1월에 이미 자동차 보험료를 3∼4% 인상했다는 점이다. 이례적으로 1년에 두 차례나 보험료를 올리는 것으로,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손보업계의 보험료 인상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험료 인상요인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반대 이유다.
지난 24일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공동으로 ‘소비자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금융당국은 인상 요인뿐 아니라 인하 요인도 있으니 자보료 인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자동차에 경미한 손상이 발생할 경우 부품 교체 비용 대신 복원수리비 지급 대상을 현재 범퍼에서 7개 외장부품으로 확대하는 만큼 보험료 인하 요인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자동차보험 적자의 많은 부분은 보험사기 등으로 인한 보험금 과잉 지급 등에서 나온다는 지적이 많았다. 손해보험협회와 보험연구원 등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인해 누수되는 보험금만 연간 4조 5000억 원에 달하며, 1가구당 23만 원의 누수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0년 새 3.6배나 늘어난 보험사기 금액은 지난해에만 8000억 원에 육박하는 등 심각한 양상을 띠었다.
금융당국은 이 부분의 누수를 줄이면 자동차보험의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손해보험협회는 올해 보험업 관련 종사자의 보험사기 처벌 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자동차보험의 한방과잉진료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추진에도 나서겠다고 전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수가 대비 기준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과도한 보험금 지급이 발생했다”며 개선을 예고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자동차 보험료는 원칙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될 사항”이라면서도 “다만 모든 요인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업비 절감 등 자구노력을 선행해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금융당국과 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지자 보험업계는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종합검사가 부활한 상황에서 앞장서서 보험료 인상에 나섰다가 눈 밖에 나면 곤란해진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업계 1위인 삼성화재가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떠밀기식 논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인상 요인도 있고 인하 요인도 있지만, 올리지 마라’는 모호한 논리는 펴는 배경에는 ‘물가’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동차보험료는 소비자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는데, 보험료가 올라 물가지수 상승 요인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국민적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니만큼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면서 “보험사들도 이런저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손을 드느냐를 놓고 또 다른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