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에 제한이 없는 법관들은 이미 상당량의 주식 투자를 통해 재산을 증식시키고 있다. 사진은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모니터에 띄워진 그의 주식 보유현황 자료를 확인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 3월 28일 ‘김명수 대법원장 외 165명 재산변동사항’을 공개했다. 부동산, 토지, 채무, 예금, 회원권 등 여러 재산 목록 가운데, 일요신문은 이들의 ‘증권’에 주목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경우 단순히 주식을 대량 보유해 문제된 건 아니다. 법관인 그와 변호사인 배우자가 주식을 보유하는 과정에서 내부 미공개 정보를 미리 알고 이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쟁점이 됐다.
고위 법관 166명의 재산 변동사항에 따르면, 주식을 보유 중인 법관은 모두 64명이다. 약 3명 중 1명꼴로 주식을 가진 셈이다. 이 중 상장주식만 가진 법관은 42명, 비상장주식은 7명, 상장‧비상장 종목을 모두 가진 법관은 12명이다(나머지는 채권만 보유). 법관 가족 중에서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서경환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의 배우자다. 서 수석부장판사 배우자는 비상장사인 (주)한결의 주식 15만 주를 보유 중이다. 그 뒤는 엠벤처투자 11만 주를 보유한 윤승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배우자다.
4월 18일 종가 기준으로 단순 계산한 바에 따르면 주식으로 10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법관은 심담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로 평가액은 34억 9457만 3650원에 달했다. 심담 부장판사 본인과 배우자‧장녀‧장남‧차남은 호텔신라 주식을 각각 1만 279주‧9863주‧1183주‧726주‧158주를 보유 중이며, 파라다이스 주식도 각각 5만 2146주‧1만 2377주‧99주‧48주‧51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신고됐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에 휘말린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주식가치(35억 원 상당)와 비슷한 규모다.
10억 이하 1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법관은 7명이었다. 정선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7억 3637만 5000원), 조용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7억 2424만 6500원), 윤승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5억 815만 410원), 김필곤 대전지방법원장(3억 292만 700원), 권혁중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2억 508만 375원), 김주호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1억 1340만 원), 강현중 사법정책연구원장(1억 875만 원) 등의 순이었다.
조용현 부장판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제가 가진 주식은 단 한 종목이다. 10년 전에 샀고 그때 산 수량에서 변동 사항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조용현 부장판사와 그의 배우자는 삼성카드만 각각 9458주와 1만 1088주를 보유했다. 그는 이어 “주식을 되팔아서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도 낮다. (저처럼) 장기적인 투자는 배당수익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선재 부장판사는 특이하게도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맥쿼리인프라 주식만 보유하고 있었다. 본인이 2만 5000주, 배우자가 2만 주, 장녀가 2만 3500주였다. 윤승은 부장판사는 KODEX레버리지와 KODEX인버스 주식을 9713주‧2000주를 보유 중이었다. 특이한 것은 배우자가 외국 주식을 상당수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Ping An Ins(1만 3000주)‧Iflytek(1만 2400주)‧BYD(9600주)‧SoftBank Group(900주) 등이 그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이다. 이 외에도 KT(6428주) 맵스리얼티1(2만 1199주) 한국패러랠(2만 6440주)의 주주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윤승은 부장판사의 배우자가 외국 주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메리츠종금 한상현 차장은 “우리나라 주식은 하루에도 큰 폭으로 움직이지만, 외국 주식은 변동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어서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주식 전문가 A 대표도 “한때는 외국주식을 사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최근 5년 동안 외국 주식이 많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때 돈 번 사람들이 나오며 너도나도 사고 있는 모습이다. 대세는 외국주식인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윤승은 부장판사의 배우자는 2016년 이전부터 외국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필곤 법원장은 세방 1만 9400주를, 배우자는 삼성생명보험 114주를 보유 중이다. 이 부부는 디에이피 종목도 각각 1300주‧1270주를 보유 중이다. 권혁중 부장판사는 현대약품(4614주)‧시노펙스(2300주)‧디에이치피코리아(900주)‧포스코ICT(3050주)‧삼천당제약(1002주)‧오리엔트바이오(7000주)‧한솔홈데코(5800주)‧CJ씨푸드(4920주) 등을 보유 중이고, 그의 장녀도 권혁중 부장판사와 보유 종목이 비슷했다. CJ씨푸드(2330주)‧현대EP(1660주)‧한전산업(1550주)‧서희건설(2000주)‧시노펙스(1379주)‧에이프로젠제약(583주)‧한국전력(153주) 등이다.
김주호 부장판사의 배우자는 POSCO 420주를, 강현중 연구원장은 신라젠 1210주‧한국항공우주 3000주를 신고했다.
법관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진 종목은 무엇일까. 단순히 보유량만 따져보면 카지노사업을 주로 하는 ‘파라다이스’ 주식이었다. 김승표 수원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배우자(2134주), 심담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와 그의 가족들, 심상철 수원지방법원 원로법관(매각) 등이 상당한 주식을 보유 중이다. 이에 대해 한상현 차장은 “파라다이스를 그렇게 산 것은 아마 그 종목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 그런 것 같고 호텔신라는 아마도 삼성전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그리고 이 또한 한 번에 많이 사는 것이 아니라 시기를 나눠서 샀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 번에 다 샀다면 초짜거나 정보를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익명의 주식 전문가 A 대표도 “호텔신라와 파라다이스는 ‘가치주’라고 불린다. 나름대로 그 가치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라며 “중국의 사드 여파 때 주가가 많이 빠졌으니 주로 그때 샀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POSCO와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도 인기가 있었다. POSCO 주식 보유자는 김주호 부장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배우자(420주), 성백현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의 배우자(7주),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7주), 임용모 법원공무원교육원장(5주), 김용대 서울가정법원장의 배우자(1주), 이승훈 춘천지방법원장의 장남(매각) 등이고, 삼성전자주 보유자는 김우진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원의 장녀(250주), 조영철 대구고등법원장의 배우자(200주), 안철상 대법원 대법관의 배우자(150주), 강경구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 부장판사의 배우자(50주), 배준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장남(37주), 고의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장녀(1주) 등이다.
POSCO와 삼성전자는 조용현 부장판사처럼 배당금을 위해 매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한상현 차장은 “POSCO와 삼성전자는 ‘국민주’로 불린다. 장기간 오랫동안 갖고 있을 수 있다. 짧게 사고 파는 성격이 아니라 장기간 성장성을 보고 가는 주식”이라며 “삼성전자는 ‘이거 망하면 한국도 위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아니겠나. POSCO도 최근 조금 악화되긴 했지만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 다음으로는 맥쿼리인프라(5명)가 뒤를 이었다. 맥쿼리인프라는 ‘주알못(주식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낯선 종목이지만, 주식을 하는 이들에게는 인기 종목으로 알려졌다. 주식 전문가 B 상무는 “맥쿼리인프라는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두는 종목이다. 꼬박꼬박 배당을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투자자들 대부분 배당소득을 목표로 투자하는 편”이라며 “(맥쿼리인프라는) 기초자산이 일정하며 과거 정부의 인프라사업에 투자를 많이 해왔다”고 했다.
한상현 차장도 “맥쿼리인프라는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많이 하고 특히 수도권 지하철 9호선과 인천공항과 관련된 교통 등에 투자하는 회사다. 배당을 목적으로 (주식을) 사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의 종목은 1년에 한 번 배당이 나오는데, 이곳은 1년에 두 번 나오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실제로 맥쿼리인프라는 국내 유료도로와 교량, 터널과 같은 인프라자산에 투자해 얻은 수익금을 주주에게 반기마다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맥쿼리인프라에 이어 LG전자‧SK텔레콤‧녹십자셀‧한국전력(4명), 동경흥업‧성림유화(주)‧시노펙스‧파수닷컴‧한국항공우주‧현대중공업(3명) 순서로 인기가 많았다.
공개된 재산변동사항 내용 중에 눈길이 쏠리는 부분은 19명에 달하는 재판관과 그의 가족들이 비상장 종목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이에 한상현 차장은 “비상장을 매수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로 볼 수 없다. 유동성도 문제지만, 잘못하면 종잇조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현금화하는 데에 있어선 비상장보다 상장주식이 더 빠르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B 상무도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며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상장 주식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에 관심이 많다고도 볼 수 있다. 비상장 종목을 우연히 알게 됐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A 대표는 “비상장 주식 투자는 일반적이진 않지만, 한때 유행하긴 했다”라며 “이에 관한 정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해 증권사에서도 많이 제공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