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오는 5월 대기업집단 및 총수(동일인)을 지정하고 발표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일요신문DB.
한국 재벌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는 공정위가 지정해 발표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과 5조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이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기업집단들을 실제로 지배하는 총수(동일인)도 함께 지정한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지정해 발표하는데, 올해 지표는 일부 그룹의 자료 제출이 늦어져 이르면 오는 5월 8일, 늦어도 중순께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업집단 현황 및 총수 지정 발표는 예년 보다 변수가 많다. 재벌의 상징’ ‘제왕적 권력’으로 불리는 그룹 총수들 사이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최근 주요 그룹들이 잇따라 자회사 독립경영과 이사회 중심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선단식 경영에서 탈피하는 한편, 사망‧건강악화‧은퇴 등의 사유로 기존 총수 퇴진이 이어지고 있어 정부가 지정하는 그룹 총수 명단에 새 이름들이 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룹 총수가 바뀌면 그룹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긴다.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의 계열사 지분과 소속 비영리법인 등을 다시 따져보는 만큼 기업집단의 범위가 바뀔 가능성이 커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동일인(총수)이 지배하는 회사들을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는다. 총수 변경으로 사익편취 규제나 대규모 내부거래공시 등 각종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계열사가 새롭게 공정위 감시망에 들어가게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이번 대기업집단 및 총수 지정을 위해 4월 중순 국내 그룹들로부터 각종 자료를 제출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린 건 총수 변경 신청서다. 지난해 공정위는 삼성과 롯데로부터 신청서를 받아 총수(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를 변경하는데 그쳤지만, 올해는 그 수가 더 늘어났다.
LG와 두산이 일찌감치 신청서를 냈다. 지난 1년 사이 세상을 떠난 구본무 회장과 박용곤 명예회장 대신 각각 구광모 회장과 박정원 회장을 총수로 교체해 달라고 신청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올해 공정위로부터 공식 총수 지정이 되면, 삼성-현대차-SK-LG 등 ‘일명 4대그룹’에서 최초로 탄생한 4세 총수가 된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지난 8일 조양호 회장의 별세로 총수 변경 사유가 생겼다. 다만 갑작스러운 사안인데다, 장례 및 회장 선임 절차 등으로 시간이 촉박했다. 한진그룹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한 뒤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미리 한진 측으로부터 자료 제출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필요한 자료는 받았고 검증 작업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총수 변경 사유가 있어도 교체되지 않는 그룹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건강악화로 인해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총수 교체 신청이 유력했지만, 그룹 내부 사정으로 올해는 건너뛸 가능성도 나온다. 한 현대차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인사와 경영 전반을 맡고 있지만, 현재로선 교체를 서두를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효성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총수 교체를 신청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공정위와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인 조현준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공정위는 ‘총수의 역할’이 조 회장에게 완전히 승계됐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경영퇴진 선언으로 총수 교체 사유가 있지만, 정리해야할 절차가 산적해 있다. 아시아나항공(자회사 포함)이 매각되면 자산이 5조 원 이하가 되면서 중견 기업으로 내려가게 돼 총수 변경 신청을 할 필요가 없지만, 매각 완료는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인 만큼 올해는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밖에 지난 4월 16일 창립 50주년에 자리에서 물러난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 지난해 말 경영퇴진을 선언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자리에 신규 총수가 이름을 올릴지도 재계 관심사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집단 및 총수 지정 등의 변동사항이 많지 않았다. 그룹 순위가 바뀌는 일도 그리 흔치 않았고, 총수는 더욱 변화가 없었다”며 “일찌감치 총수 변경을 준비했던 그룹들은 준비를 해왔겠지만, 그렇지 못한 그룹들은 규제 및 의무사항 등을 검토하고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